트럼프 대통령이 달려졌다. 과도한 액션과 위협적 언어는 그의 대표적인 스타일이지만 북미 정상회담에선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껄끄러운 질문에도 절제되고 신중한 답변을 내놨다.

북미정상회담의 최대 쟁점이었던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합의 문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정리됐다. 그동안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표현을 합의문에 명시하길 원했는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합의 문구는 미국 입장에선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은 회견에서도 CVID를 집중 캐물었고, 정상회담의 성과를 저평가하는 요지의 질문이 쏟아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협상의 과정과 회담에서 나온 대화를 소개하며 북미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했다. CVID 명기가 본질이 아니라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질의응답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70년 전 혈전이 있었다. 한반도가 한국전쟁으로 참혹하게 변했다. 과거가 미래를 정의할 필요는 없다. 어제의 갈등이 내일의 전쟁이 되란 법 없다. 역사는 이 사실을 증명해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비핵화 검증 방법을 논의했냐’는 질문에 “우리는 신뢰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전한 비핵화를 이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합의해놓고 기만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 공세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제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멀리 와본 적이 없었다. 이런 확신이라든가 자신감을 얻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몇 달 전까지 미사일 시험이 계속됐고 핵실험도 했다. 그 사실을 상기해 보길 바란다”며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묻는 질문을 정면돌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다는 뜻도 밝혔다. 회담장을 박차고 나갈 수도 있다던 전형적 협상가의 모습을 떠올리면 극적인 변신이다. 그는 “새로운 제재를 논의한 바도 있습니다마는 사실 회담이 준비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제재를 추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군사적인 조치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 부분은 말하기 좀 어렵다. 저는 위협적 언사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말만 하고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듭된 질문에도 “사실 그 부분은 누구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북한이 합의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저는 그걸 알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전 트럼프 대통령 스타일대로라면 어떤 식으로든 극단의 언어를 사용해 답변할 주제였지만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억류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죽음을 언급하며 회담에서 어떻게 김정은 위원장의 재능을 칭찬하느냐는 NBC 기자의 질문에도 “오토 웜비어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고 평생 기억할 것“이라며 “그의 희생으로부터 이것이 시작됐다. 아주 잔인하고 비극이었지만 그 일 때문에 이런 대화의 노력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오토 웜비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국내 문제와 민감하게 얽힌 문제인데도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와 연결해 공세를 피해가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 모습.
▲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에도 이해도가 높았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남북은 같은 언어와 관습, 전통, 역사,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위대한 운명을 공유하려면 이제 핵의 위협으로부터 구해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 굉장히 많은 인구가 살고 DMZ 바로 옆에 있다. 뉴욕보다도 훨씬 큰 곳인데 바로 그렇게 북한 가까이에 붙어 있다. 만약에 군사 충돌이 일어나면 수백만, 수천만 명이 희생된다”고 했다.

성공회대 최진봉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캐릭터가 변했다기보다 북미정상회담의 성과를 알려야 하는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태세 변환한 것”이며 “한반도 비핵화 이슈는 들이박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정교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고, 회담을 준비하면서 한반도의 특수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이해가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