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공영방송이 외압만 받은 게 아니다. 외압에 호응해 동료들 등에 칼을 꽂고 과실을 차지하고, 뉴스를 정치에 이용한 구성원들이 있다. MBC가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정리할 수밖에 없다.”(최승호 MBC 사장)

“과거 10년을 포함한 문제를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근현대사를 통해 보다시피 통합도 되지 않을 것이고, 도약도 할 수 없다.”(양승동 KBS 사장)

19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사회변화와 미디어 진실성’ 대담에서 공영방송 사장들의 입장은 단호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승호 MBC 사장, 양승동 KBS 사장, 장해랑 EBS 사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양승동 사장은 KBS 이사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적폐청산기구인 ‘진실과 미래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MBC는 이전 정부 때 벌어진 문제에 관한 진상조사로 지난 대선 때 사실과 다른 ‘안철수 논문 표절’을 보도한 기자와 동료들에 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직원들을 해고했다.

▲ 19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사회변화와 미디어 진실성’ 대담에 참석한 장해랑 EBS 사장, 양승동 KBS 사장, 김현주 광운대 교수, 최승호 MBC 사장. 사진=금준경 기자.
▲ 19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사회변화와 미디어 진실성’ 대담에 참석한 장해랑 EBS 사장, 양승동 KBS 사장, 김현주 광운대 교수, 최승호 MBC 사장. 사진=금준경 기자.

최승호 MBC사장은 정권이 다시 바뀌더라도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이 문제가 계속 반복된다. 정치권의 개입을 놔둔다면 구성원들의 정치화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위기는 단순히 ‘뉴스’ 신뢰도 추락만이 문제가 아니다. JTBC, CJ계열 채널이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끄는 반면 지상파의 채널 경쟁력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최승호 사장은 “종편, CJ계열 채널들이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만들고, 막강한 자본력을 동원하면서 젊은층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장이 되기 전 즐겨보던 타사 프로그램을 묻자 양승동 사장은 JTBC ‘뉴스룸’을, 장해랑 사장은 JTBC ‘썰전’을 꼽았다.

뉴스 신뢰도 추락과 예능·드라마 등 콘텐츠 전반의 경쟁력 하락이 별개가 아니라는 게 최승호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 정부 때 PD들이 많이 유출됐는데, 단순히 돈 때문에 나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없었던 게 문제다. 결국 공영방송의 자유를 억압한 결과 프로그램 전반의 경쟁률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을 위협하는 또 하나는 뉴미디어 중심의 미디어 소비패턴 변화다. 양승동 사장은 “스마트미디어 환경으로 전환됐다. 전통적 접근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최승호 사장은 “이번에 신입사원을 뽑았다. 그들에게 미디어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물었더니 TV를 통해 방송을 본다고 말한 친구가 거의 없었다. 굉장히 놀랐다. TV수상기 앞에서 방송을 본다고 전제하고 콘텐츠 전략을 짜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최승호·양승동 사장은 기술적 변화를 고민하면서도 ‘공영방송으로서 원칙’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양승동 사장은 “과거 KBS가 신뢰도 1위였지만 지금은 모 종편에 밀린다. 신뢰도와 영향력 1위였던 정연주 사장 때는 제작자율성이 보장되는 환경이었다. 시대가 변해도 고품질 콘텐츠는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승호 사장도 “완벽한 자율성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게 한면 오래 지나지 않아 과거의 영향력을 다시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해랑 사장은 디지털 시대에 맞게 EBS 조직과 콘텐츠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NHK는 자살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면서 단순히 TV방송만 하지 않고 다양한 플랫폼으로 내보내고, 사회적인 캠페인으로 전개했다. 우리도 이와 같은 크로스미디어 참여형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측면에서 장해랑 사장은 “인공지능이 백업하는 디지털 혁신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라며 “EBS의 궁극적 지향점은 미디어나 방송사가 아닌 최고 공영교육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 19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사회변화와 미디어 진실성’ 대담에 참석한 장해랑 EBS 사장, 양승동 KBS 사장, 김현주 광운대 교수, 최승호 MBC 사장. 사진=금준경 기자.
▲ 19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사회변화와 미디어 진실성’ 대담에 참석한 장해랑 EBS 사장, 양승동 KBS 사장, 김현주 광운대 교수, 최승호 MBC 사장. 사진=금준경 기자.

세 사장은 조직 내부엔 지난 10년 동안의 적폐 청산을 뛰어넘는 과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양승동 사장은 “조직내 성평등이 과제다. 남녀 평등이 이뤄져야 하고 독립제작사를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 등도 개선돼야 한다. 이 같은 내용 전반을 ‘진실과 미래 위원회’에서 논의할 계획이다. 그렇게 돼야 내부 역량이 극대화된다”고 강조했다.

최승호 사장은 “최근 독립제작사가 아닌 MBC가 저작권을 독점하는 문제를 개선하고 임금체계를 개편했지만 충분치 않다. 방송사의 재원구조를 개선하면서 계속 독립제작, 비정규직 문제 개선에도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해랑 사장은 과거 EBS에서 ‘외주관리’라고 쓰던 말을 ‘외주협력’으로 바꿨다며 “지난해 독립PD 두 분이 목숨을 잃으셨다. 갈길이 멀다는 걸 안다. 최근 독립제작사 관계자들을 만나 큰 방향에서 상생해야 한다는 데는 적극 동의한다고 했다. 다만, 조금씩 마음을 맞춰서 나가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최승호, 장해랑 사장은 독립제작, 방송 비정규직 문제 개선에 동의하면서도 재원이 열악한 현실적 문제를 들며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행사 주최측인 이민규 한국언론학회장은 인사말에서 “시대 흐름에 따라 우리 언론이 많은 변화 요구받고 있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 공영방송의 길을 두 어깨에 짊어진 신임 대표들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