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재벌대기업의 ‘갑질’ 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광고 등을 이유로 재벌대기업을 건들지 못했던 언론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언론은 바뀌지 않은 것일까.

재벌대기업에 비판적 정치활동을 벌여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기업 비판기사가 온라인에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일은 여전하다며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다양한 언론사가 삼성 등에 깊이 있는 비판기사를 이전보다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바뀌었다”고도 말했다.

최근 쏟아지는 재벌 갑질 비판기사에 박 의원은 단순히 재벌 개개인의 갑질 비판에서 멈추지 않고, 재벌대기업의 지배구조를 드러내는 기사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됐다.

▲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여전히 삼성이나 재벌에 대한 비판 기사가 사라진다. 깜짝 놀랐다. 아직도 이러는구나 싶어서. 기자는 출고를 했는데 온라인에 기사가 떴다가 사라지는 거지.”

그의 지적처럼 언론사에서 재벌이나 기업에 대한 비판 기사가 올라왔다 사라지는 일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이와 관련해 한 경제부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여전히 기업 흠집 내기 기사로 광고를 따는데, 위에서 특정 기업 좌표를 찍어주고, 취재 지시를 하기도 한다”면서 “광고 안주면 그만, 광고 준다고 하면 바로 기사가 내려간다”고 현실을 전했다. 이 경제부 기자는 “광고가 들어온 후 기사가 내려가면 사기도 저하되고 차라리 직접 광고영업을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면서 “큰 이슈가 있어도 광고를 주는 기업은 한 줄도 못쓴다. 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더욱 힘들다”고 설명했다.

박용진 의원 역시 재벌의 언론통제로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2017년 4월24일 중앙일보 인터넷판에 “박용진 ‘국민 안전 등한시 현대차 봐줄 수 없어’ 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된지 1시간 후 사라졌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는 국민권익위원회가 현대차 공익제보자 김광호 부장의 복직을 권고한 것을 현대차가 거부하자, 박 의원이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을 인용보도한 것이다.

“충격이 컸어요. 뭐 기자들이 발제를 해도 보도가 안되고 심지어 기사가 올라갔는데도 1시간 있다가 내려가는 상황이니까.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내가 부끄러워.”

▲ "박용진 '국민 안전 등한시 현대차 봐줄 수 없어' 기사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기사를 내보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만 포털과 중앙일보 내에서 검색하면 기사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 현재 "박용진 '국민 안전 등한시 현대차 봐줄 수 없어" 기사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중앙일보의 '조인스 스파이더' 기록을 통해 기사를 내보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만 포털과 중앙일보 내에서 검색하면 기사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기업광고는 기업이 언론을 통제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이외에도 기업이 언론통제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이유를, 박 의원은 언론사 간부들이 대기업 홍보팀 등으로 이직하는 일에서 찾았다.

박 의원은 “메이저 언론사의 부장하던 사람들 어디 가는지 찾아보면 된다”며 “전반전에 심판을 보던 사람이, 후반전에 상대팀 옷 입고 나오는 격”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감시하고 기업을 감시하던 기자들이 갑자기 홍보맨으로 나타나는 게 정상인가. 만약에 그런 문화를 용인할 거면 언론은 검사들이랑 부장 판사들이 대형로펌 뒤봐주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감독하다가 사기업 사외이사로 가는 사례를 욕해선 안 된다.”

박용진 의원은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탄압보다 경제권력에 의한 언론탄압이 훨씬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사 편집국장, 정치부장 되는 사람들 자존심 좀 센가. 전두환이나 노태우 때도 잡아간다고 하면 들고 일어서던 사람들이 기자들이다. 그런 기자들이 자기 사수였던 사람이 전화 와서 ‘나 좀 봐줘. 형도 먹고 살아야지’ 이러면 꼼짝 못하는 거다. 반론 실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사를 삭제해버린다니까.”

박 의원은 그래도 일부 언론은 대기업 비판에 조금 더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대표적 보도로 SBS가 지난 3월 ‘삼성 경영권 승계와 에버랜드 땅값’ 연속 보도를 한 사례를 꼽았다.

“3~4일 동안 여러 꼭지에서 거의 20분 동안을 통으로 보도하는 데 정말 놀라웠다. SBS가 삼성과 맞장 뜬 보도인데, 스스로 용기를 가지면서 다른 언론에도 용기를 준 좋은 사례다. 이후 SBS의 보도를 여러 언론이 받아쓰고, 경쟁적으로 삼성 비판 보도를 했다. 사실 이런 문제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던 것인데, 못 보던 보도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SBS의 삼성 경영권 승계와 애버랜드 땅값 연속보도.
▲ SBS의 삼성 경영권 승계와 애버랜드 땅값 연속보도.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정권이 바뀐 영향이라고 본다. 사람이라고 하는 건 환경으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촛불 이후에 경제권력 지배에 대해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기자들도 용기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다시는 촛불 이전으로 못 돌아간다.”

다만 박 의원은 최근 연이어 터지는 ‘재벌갑질’ 비판 기사 등 고발성 기사에서 재벌 체제의 개혁을 앞당길 수 있는, 구조적 지적을 하는 기사가 풍성해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땅콩회항’이나 ‘물컵 갑질’ 등 문제점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 아니라 특정한 행위에 대한 분노로 사람들을 소진하게 만드는 보도가 많다고 본다. 뼈 빠지게 일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 사람들이 땅(기업) 주인이 아니라서 빼앗기잖나. 그런데 주인이 성격이 나쁘다는 것에 더 큰 분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착한 땅주인이라고해서 모순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한국재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질 없는 사람들이 가족 DNA만 가지고 기업을 운영한다는 거다. 이 일을 가장 전형적으로 해온 게 삼성이고, 다른 기업들도 다 삼성을 따라하기 때문에 삼성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다.”

그는 ‘갑질 청산’이라는 문화적 해결보다 국회에서 제도적 해결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지금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가 안 된다. 경제 민주화를 만들 수 있는 정당과 정치인에 힘을 실어줄 때”라며 “기업이 잘못한 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는 국회의원들을 국민들이 지켜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관련기사: “정치권력 언론장악 불가능”vs“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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