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길을 채운 노란 손수건은 ‘MBC의 귀환’을 알렸다.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 사실상 첫 공식 업무였던 해직자 복직 행사에서 잃어버린 MBC의 시간을 매듭지은 상징이었다. MBC 최초로 시민 앞에서 정책설명회를 갖고, ‘해직 언론인’에서 사장으로 복직한 최 사장은 그 자체로 MBC 재건에 대한 가능성과 기대로 평가됐다. MBC 구성원들에게 “실패할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최 사장의 약속은 MBC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최 사장 취임 이후 6개월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MBC ‘뉴스데스크’는 새 출발을 알리자마자 ‘왜곡 보도’ 및 ‘지인 인터뷰’ 논란이 불거졌다. MBC가 새로 시도한 프로그램들이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전지적 참견 시점’은 세월호 참사를 희화화한 장면을 사용해 진상조사위를 꾸리기에 이르렀다. ‘최승호의 MBC’라는 이름은 기대만큼이나 높은 잣대로 질책을 받아내야 할 대상이 됐다. 전임 경영진이 남기고 간 MBC의 상흔은 조직 내 갈등과 막대한 적자로 남아있다.

최 사장 역시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면서도 새롭게 찾은 희망 또한 있다고 자부했다. 반복되는 실수 속에서도 새로움을 향한 도전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취임 6개월을 맞은 최 사장을 지난 14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장실에서 만났다.

▲ 지난 15일 최승호 사장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14일 최승호 사장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취임 후 첫 공채를 진행했다. 소감이 어떤가.

“총 60명 정도 뽑았고 드라마·예능 등과 관련해 특채도 14명 있다. 그동안 MBC에서 계약직, 파견직 혹은 프리랜서 등으로 일했던 분들을 특채로 채용했다. 기존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채용한 첫 사례다.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MBC를 만들어갈 친구들이다. 그동안 MBC 내부에서 있었던 갈등이나 아픔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방송만을 위해 달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MBC를 많이 살려놓을 것이라 생각한다.”

-채용 과정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나.

“지상파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거나 만들고 싶다고 지원한 분들 중에 TV로 지상파 프로그램을 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아직은 ‘지상파 프로그램’이라는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는 알지만 보는 수단 자체가 휴대 전화로 완전히 바뀌었더라. 경영 측면에서 지금 수준의 대비책만으로는 상당히 어렵겠다고 느꼈다.”

-취임 후 6개월을 자평해본다면.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어려운 가운데 희망을 발견한 부분도 있지만 MBC가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7~8년 정도 주력 부대들이 배제됐던 상황에서 다시 방송을 시작했고, 뉴스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일도 있었다.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모욕하는 표현이 방송된 일도 시민 여러분이 상당히 실망하실 일이다. 조만간 조사가 마무리될 것이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간베스트’ 성향 직원이 모욕을 목적으로 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이 오히려 MBC 입장에서 더 곤혹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다. 차라리 문제적 성향의 인물이 고의적인 행위를 했다면 징계를 하고 관련 일을 못하게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일상적인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안이하게 생각했고, 여러 사람이 분업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확인이나 점검이 되지 않고 지나갔다. 시스템을 바꿔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대안을 마련할지 고민 중이다. 이런 저런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좋은 방송을 해야 하고, 하고 싶다는 MBC 구성원들의 의지와 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바깥에서 본 MBC와 경영 책임자가 된 뒤 들여다본 MBC 현실은 어떻게 달랐나.

“사장으로서 제일 놀란 점은 그동안 방송 수익이다. 지상파 방송사 광고 점유율이 상당히 많이 떨어졌다. 특히 MBC가 급전직하(急轉直下)로 떨어졌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비교적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종편 및 유료 방송과의 비대칭 규제이다. 종편 및 유료방송은 중간광고가 완전히 허용되지만 지상파에는 허용되지 않는 등 여러 규제가 많다. 지상파의 경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구조인 데다 재방송을 많이 할 수 없다. 반면 유료방송은 얼마든지 재방송을 해도 되는 구조다. 수익만을 생각한다면 핵심 시간대에 광고가 많이 들어오는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지상파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제작비는 많이 들어가고 광고는 안 들어오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여러 가지를 촉구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가는 가운데 모바일 시대에 대한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대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자연히 광고가 따라올 것이라 밝히지 않았나.

“기본적으로는 맞는 말이고,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들면 수익은 해결될 거다. 그러나 광고 같은 경우 여러 측면에서의 비대칭 규제가 해소돼야 시장 가치 대로 수익이 환원될 수 있고 또다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광고주들조차 중간광고를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광고 시장 구조 자체가 굉장히 왜곡돼 있다.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한국 지상파가 좋은 프로그램을 재생산하고 국민이 좋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 지난 15일 최승호 사장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14일 최승호 사장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해직 기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프로그램 제작 등에 관여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 구성원들과 어떻게 소통하나.

“너무 아무 얘길 안 해서 ‘사장이 관심 없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뉴스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아이템 얘기는 하지 않지만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는 할 때가 있다. 전제는 ‘내 이야기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이다. 내 의견대로 하지 않았을 때 프로그램이 더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웃음)”

-드라마의 경우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드라마는 한 번 준비하려면 보통 1년 전에 라인업을 꾸려야 한다. 그러나 거센 파업을 하는 과정에서 라인업 자체가 상당히 무너져버린 측면이 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월화 드라마 방송이 어려워 과거 드라마를 재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제야 겨우 파업 이후 급하게나마 기획한 ‘검법남녀’, ‘이리와 안아줘’ 등이 방송된다.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반면 시사·교양은 나름대로 빨리 복원되고 있다. ‘PD수첩’이나 ‘스트레이트’ 등 여러 프로그램들이 호응을 얻고 있다. ‘할머니네 똥강아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실화탐사대’, ‘판결의 온도’ 등 새 프로그램들도 많이 선보였다.”

-7월부터 주 68시간 노동 시간을 지켜야 한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 분야에 우려가 많은데 대책이 있나.

“여러 대안을 한 번에 많이 적용해야 한다. 인력을 늘려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에서 비효율적 부분을 효율화해야 한다. 특히 드라마 같은 경우 방송 3사가 협의해 드라마 시간을 줄이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방송 3사가 노력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7월부터는 드라마 시간을 줄일 것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외주 제작사와 상생 문제는.

“원본 저작권을 제작사에 주기로 결정하는 등 개선한 부분들이 있다. 막내 작가 임금을 올렸고 외주 제작비도 일부 올렸다. 다른 방송사들이 불편해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원래 방송협회라는 조직을 통해 공동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특수한 경우다. 그럼에도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다. 당연한 얘기다. 현재 방송사가, 특히 MBC가 겪고 있는 여러 경영상의 문제점과 한계들이 더 적극적인 조치를 하는 데 여러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경영 상황이 개선되면 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상위원회 조사 대상 등의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된 인사들도 있는데.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정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여러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거 같다. 아직 과거 많은 일들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희롱 의혹이 제기된 연기자는 프로그램에서 바로 하차시킨다. 그 사람이 계속 노출되도록 할 수 없다. 이처럼 (조사 대상을) 드러나는 역할에서 배제한 상태에서 한시적으로 조사를 진행한다. 이런 부분들이 완료되면 9월 정도에는 징계할 부분은 징계하고, 징계 대상이 아닌 인사의 경우 대화를 통해 많은 이해를 해나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할 것이다. 흔히 말하는 ‘유휴 인력’이 없도록 회사로서 잘 풀어 가야 할 과제다.”

-구성원 간 갈등이나 반감이 우려되진 않나.

“당장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같은 MBC 구성원으로서 새 미래를 향해 같이 가야 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당연한 일이다. 다만 정리할 건 정리해야 한다. 노동 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도 인력을 잘 운용하는 일이 필요하다.”

▲ 지난 15일 최승호 사장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14일 최승호 사장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정상화위원회 활동은 어떤 식으로 보고 받나.

“안건 별 조사가 마무리 되면 임원회의에서 보고가 이뤄진다. 관여를 하지도 물어보지도 않는다. 9월쯤 1차적으로 정리될 것이다. 가급적 빨리 마무리했으면 한다. 이런 조사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과도기적인 MBC 상황을 보여준다. 일단락 돼야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MBC만의 강점은 무엇이어야 하나.

“자율성이다. MBC는 ‘주인 없는 회사’라는 특징이 있다. 이 표현에는 사실 폄하 의미가 들어 있다. 주인이 없기 때문에 ‘개판’이라는 것이다. 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했던 생각은 주인이 있을 경우 ‘노예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MBC는 현재 구성원들이 거의 모든 것들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빨리 시스템을 정비해 구성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경영진들은 굉장히 열심히 일해야 할 시기다. 경영진으로서 책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다.”

-취임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1년 이내에 국민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생각도 여전한가.

“지금도 충분하진 않지만 과거에 비해 많은 신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참시 같은 얼토당토않은 사건들이 있어서 그렇지, PD수첩이나 스트레이트, MBC 뉴스가 보도하는 것들이 신뢰를 잃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충분히 신뢰받고 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민에게 필요한 방송을 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 6월 이후에는 상당히 복원된 MBC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정립하자는 차원에서 ‘새로움을 탐험하다’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걸고 방송할 것이다.”

-6월 이후 새로 선보일 것들이 있나.

“개편은 상시적으로 하고 있다. 가장 기대되는 프로그램은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연출했던 박진경, 이재석 PD가 준비하고 있다. 권성민 PD도 참여한다. ‘무한도전’ 김태호 PD도 새 기획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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