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들어온 소식인데요. 학생들은 전원이 구조가 됐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학생이 324명이었고요, 선생님들이 14명이었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 같습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11시3분58초 YTN 보도였다. 이 치명적인 오보가 아니었다면 1분1초가 아쉬운 그 급박한 순간에 좀 더 적극적으로 구조 작업이 이뤄졌을 것이고 304명의 희생자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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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YTN 보도의 출처는 MBN 보도였다. “방금 들어온 소식”이라는 게 결국 MBN의 방송 자막이었다는 이야기다. MBN이 먼저 11시1분7초에 “단원고 측 “학생 모두 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냈고 MBC도 11시1분26초에 “안산 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YTN은 단원고등학교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에게 확인을 거쳤는데 그 시간 학부모들은 MBN 보도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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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YTN이 확인한 것은 MBN에서 그렇게 보도했다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오보가 오보를 부르는 상황이 계속됐다. YTN 보도를 본 경찰이 무전으로 “학생 전원 구조”라고 보고하는 걸 듣고 단원고 교직원이 학부모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학생 324명 전원 무사히 구조 완료되었습니다.”

문자 메시지를 받은 학부모들이 해양경찰 콜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그렇게 알고 있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해경 역시 YTN 보도를 보고 그렇게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MBN 보도의 출처는 어딜까. MBN 기자는 단원고 강당에서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이 말하는 걸 듣고 기사를 내보냈다고 밝혔는데 나중에 세월호 특조위 조사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MBC는 MBN 기자의 통화 내용을 듣고 단원고 현지 취재 중인 기자에게 확인을 했다고 밝혔는데 학부모 중의 누군가가 전원 구조됐다고 외친 건 11시3분 YTN 보도가 나간 직후였기 때문에 MBN과 MBC 모두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MBN 보도를 YTN이 받아쓰고 YTN 보도를 보고 누군가가 “학생들 전원이 구조됐다”고 외치자 모든 언론이 앞 다퉈 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쏟아낸 것이다. MBN 기자가 지어낸 게 아니라면 해경이나 경찰 윗선의 누군가가 전원 구조라는 잘못된 정보를 건넸을 가능성이 큰데 기자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함구했고 특조위 조사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MBN과 MBC가 동시에 자막을 내보낸 경위도 정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최민희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 문제를 조사하고 최초의 ‘전원 구조’ 오보는 MBC라고 결론을 내린 적 있다.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나간 건 MBN이 19초 정도 빨랐으나 MBN이 “일단은 증언과 각 곳에서 나온 말이 다른데 이 보도가 정확한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것과 달리 MBC는 “학생들은 전부 구조됐고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 상태”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 '전원 구조' 오보 이전 KBS 보도.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 '전원 구조' 오보 이전 KBS 보도.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건 오전 8시49분이었다. 단원고 학생 최덕하군이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119에 신고한 게 8시52분이었고 해경 123정이 출동 명령을 받은 건 9시2분이었다. YTN에 첫 보도가 나간 건 9시19분, 이때 세월호는 이미 45도 가까이 기운 상태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9시45분까지 계속됐고 이준석 선장 등은 9시46분에 123정으로 옮겨 탔다. 세월호가 완전히 뒤집힌 건 10시31분이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연합뉴스 베껴쓰기가 비극의 시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가 9시55분에 승객 120명을 구조했다고 보도한 뒤 MBC와 SBS가 10시6분, KBS는 10시9분에 같은 내용의 보도를 내보냈다. 연합뉴스가 10시17분에 190명을 구조했다고 보도하자 KBS와 MBC가 10시21분, SBS는 10시42분에 연합뉴스 보도를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나 실제로 이 시간 구조 인원은 최대 83명을 넘지 않았을 거라는 게 특조위 분석이었다.

미디어오늘이 만난 특조위 관계자에 따르면 연합뉴스 조아무개 기자는 “9시20분 목포 해경 상황실에 도착해 해경 직원에게 들었다”면서도 정작 구조 인원 부분은 누가 취재한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고 한다. 해경 상황실 관계자는 특조위 조사에서 YTN 보도를 보고 상황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120명과 190명 등의 숫자를 불러준 사람이 적어도 목포 해경 관계자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MBN과 MBC가 거의 동시에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낸 경위를 밝혀야 한다. MBN 기자의 통화를 엿들었다는 MBC 기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MBN 기자에게 ‘전원 구조됐다’는 말을 건넨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야 한다. 연합뉴스에 허위로 구조 인원을 불러준 누군가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공연한 음모론이 아니다. 이 끔찍한 참사의 원인과 경로를 제대로 복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영원히 세월호를 벗어날 수 없다.

이 사건은 단순히 기억이 안 난다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취재원 보호라는 명분으로 숨길 문제도 아니다. 팩트 확인을 제대로 못한 언론의 잘못이 크지만 누가 왜 잘못된 정보를 언론에 흘렸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MBN이든 연합뉴스든 기자가 확정적으로 인용할 정도라면 믿을만한 고위 관계자일 가능성이 크다. 희대의 오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도 늦게나마 언론의 책무다. 2기 특조위에서는 반드시 이 문제를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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