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조연출 시절 4명이서 지방촬영을 갔는데 방을 2개 잡고는 메인 선배가 자신과 방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서브선배와 카메라감독은 총각이라서 안 되고 본인은 유부남이라서 위험하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습니다. 결국 메인 선배와 방을 같이 쓰게 되었습니다. 침대가 반대방향에 있는 트윈 룸이긴 했으나 메인 선배는 삼각팬티만 입고 돌아다녔고, 급기야 삼각팬티만 입은 채로 본인의 등을 긁어달라고 했습니다.

사례 2. 회식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선배 PD가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습니다. 제가 많이 취했을 거라 생각하고 자라고 한 뒤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졌습니다. 당시 이제 막 고용된 조연출이었던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일단 계속 자는 척을 하다가 목적지에서 부랴부랴 내렸는데 그 PD가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절 붙잡더니 골목길 같은 데에서 어깨, 허리를 만지고 뒤에서 가슴을 움켜쥐었습니다.

사례 3. 나쁜 새끼. 처음에는 껴안고선 제가 뿌리치려고 하자 아빠라고 생각하고 안아보라고 하셔서 저는 PD님 왜 이러시냐며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 번 껴안은 후에 제가 자꾸 탁자 밑에 숨고 도망치려고 하자 저 보고 연기 오디션 관련한 새로운 프로그램 준비 중인데 너도 하고 싶냐고 해서 제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출연자로 참여해보고 싶다고 웃으면서 얘기 했더니 너는 키가 작아서 OO자세가 안 되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 8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나네요.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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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례는 ‘방송계갑질119’와 ‘방송스태프노조 준비위원회’가 지난 2월14일부터 3월2일까지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를 통해 확보한 응답자 223명의 증언 가운데 일부다. 성폭력의 문제점을 보도하는 방송제작현장에서 버젓이 벌어졌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한 설문 응답자는 “그동안 몸담았던 프로그램 현장 거의 모든 곳에 성폭력이 존재했다”고 적었다. 이는 설문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89.7%(200명)였으며 그 유형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70.4%)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57.8%)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49.3%)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성폭력 행위자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7%가 방송사 소속 임직원을 꼽았다. 이어 방송제작사 소속이거나 계약관계를 맺은 임직원이 35.7%로 뒤를 이었다. 가해자의 94.9%는 남성이었다.

성폭력 발생장소는 회식장소(44.7%)가 가장 높았으며 개방된 제작현장(24.1%)이 뒤를 이었다. 성폭력 대처의 경우 194명의 응답자 가운데 ‘참고 넘어감’이란 응답이 80.4%로 가장 높았다. 성폭력 행위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개인적 처리는 5.2%에 불과했다. 참고 넘어간 이유(복수응답)는 △고용형태 상 열악한 위치 때문(57.7%) △문제제기해도 해결 될 것 같지 않아서(55.8%) △소문 평판 등에 대한 두려움(44.2%) 순으로 나타났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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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 가운데 방송제작현장 내 성폭력 피해를 전해 듣거나 목격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91.9%였는데, 목격한 후의 대처는 ‘가만히 있었음’이란 응답이 47.3%였다. ‘동료·관리자에게 피해사실을 알렸다’는 응답은 39.3%였으며, 회사에 성폭력 피해사례를 문제제기했다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방송제작현장 내 성폭력 심각성을 묻는 질문에는 ‘심각한 편’이라는 응답이 47.1%, ‘매우 심각하다’는 응답이 27.8%로 나타났다.

방송제작현장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원인(복수응답)으로는 ‘성폭력 행위자와의 권력관계 때문’이라는 응답이 79.4%로 가장 높았다.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조직문화 때문’이란 응답 또한 78.5%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권력관계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응답자의 80.2%(178명)는 자신의 직종을 작가라고 밝혔다. 연출(PD, AD, FD, VJ)은 17.1%(38명), 기자는 1명(0.5%)에 불과했다.

이번 설문의 응답자 중 30대라는 응답은 53.8%, 20대라는 응답은 39.5%였다. 지상파 프로그램 담당은 49.3%, 종합편성채널 담당은 22.9%, 케이블채널 담당은 13.9%였다. 응답자의 45.7%는 방송사 자체제작 프로그램을, 54.3%는 외주(독립)제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고용형태의 경우 프리랜서가 83.3%로 가장 많았다. 방송사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이들은, 젊은 프리랜서 여성 작가다.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의 93.7%는 여성이었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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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설문응답자는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한 50대 중후반 공중파 본사 남자 제작PD가 20대 후반 여자 서브작가의 가슴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움켜쥐었고, 서브작가는 그날 이후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간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아무 조치도 징계도 없이. 그 자리에서 아무도 말린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는 18일 오전 11시 민주노총에서 현장 노동자의 발언과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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