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아가 ‘땅콩 회항’을 일으켜 여론의 도마에 올랐을 때, 동생 현민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으름장 놓았다. 살천스런 언행의 결과가 오늘이다. 자신은 물론 언니까지 다시 국제적 망신을 불렀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공영방송(BBC)까지 최근 불거진 조현민의 ‘갑질’을 보도했다. ‘땅콩 분노’로 세계적 유명세를 탄 조현아가 언니라는 사실이 기사에 담긴 것은 물론이다.

조현민의 갑질은 상상을 넘어선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속한 조현민의 ‘녹음 괴성’은 소름마저 돋게 한다. 과연 저 ‘발광’이 대한민국 국적기 전무이사의 업무상 발언일까, 의심마저 들 정도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이 큰 사고 없이 여태 굴러가고 있는 까닭은 그 아래서 애면글면 일해 온 “사원 나부랭이”들이 굳건히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어서일 터다. 그들의 노고에 경의마저 표하고 싶다.

▲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 전무. 사진=대한항공 제공
▲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 전무. 사진=대한항공 제공
두 자매의 땅콩 분노와 물병 분노보다 더 우리를 분노케 하는 언행은 다음 대목이다.

“나 스물아홉 살이야, 당신 마흔 넘었지, 쉰이야?”

“…”

“반말 안 들으려면, 일 잘하지 그랬어?”

조현민이 뱉은 말이다. 20대에게 그 험한 소리를 듣고도 꾹꾹 참았을 50대 가장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 외국 언론이 두 자매를 보도하며 쓴 ‘텐트럼(tantrum)’은 동사(throw)와 함께 “짜증을 부리다, 떼를 쓰다”와 같은 관용어로 쓰인다.

여기서 짚고 싶다. 과연 한국 재계에 조현민은 유별난 존재일까. 이참에 노사관계에도 “나도(미투)” 운동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저들의 “반드시 복수”를 피할 장치만 마련한다면, 숱한 조현민을 증언하는 고발이 쏟아질 터다.

한국 언론이 말끝마다 부르대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면, 조현민을 뺨칠 응석받이들이 재계에 차고 넘친다. 대한항공의 두 자매는 ‘텐트럼’ 소리를 들었지만, 한국 경영계 전체가 “스포일드 차일드(spoiled child, 버릇없는 아이)”라는 조롱을 이미 받고 있다.

▲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대한항공 홈페이지, 연합뉴스
▲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대한항공 홈페이지, 연합뉴스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의 유럽 쪽 자문위원은 조현민 사건이 불거지기 직전인 4월 11일에 협정의 노동조항 이행을 검토하는 포럼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의가 일방적으로 퇴장하며 자문 과정을 방해한 사실을 들어 ‘스포일드 차일드’라고 비판했다.

두루 알다시피 한국과 유럽연합이 맺은 자유무역협정에 근거한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시민사회포럼을 꾸려 협정 이행에 관한 자문을 받고 있다. 한쪽이 이를 지키지 않을 때, 다른 쪽에서는 정부 차원의 협의를 요구할 수 있다. 한국 경영계를 대표해 참석한 경총·대한상의는 자문회의 과정에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벌떡 일어나 퇴장했다.

이른바 ‘보수’를 자임하는 세력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자유무역협정과 관련된 회의에서 한국 경영계가 보인 작태를 유럽연합의 자문위원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그들이 담담하게 표현했듯이 국제적 노동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버릇없는 아이’들이다. 그 못된 버릇도 ‘한겨레’가 보도했을 뿐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모르쇠를 놓았다.

▲ 지난 4월15일 광고대행사 직원들에게 물을 뿌리고 폭언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휴가를 마치고 귀국해 MBC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MBC 뉴스 갈무리
▲ 지난 4월15일 광고대행사 직원들에게 물을 뿌리고 폭언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휴가를 마치고 귀국해 MBC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MBC 뉴스 갈무리
국제 기준으로 본다면 노동권리지수 최하위국에 속한 대한민국의 대한항공에서 불거진 추태는 필연일 수 있다. 노사정 사이에 사회적 대화를 부르대지만, 버릇없는 아이들이 판치는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잡지 못할 때 무망할 수밖에 없다. 조현민 뺨치는 기업 내부의 무수한 응석받이들을 언론이 감시해나가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제도 언론이 모르쇠를 놓는다면, 개개인이 나서야 한다.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언론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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