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의원이었던 당시 ‘더좋은미래’에 5000만 원을 후원한 일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선관위는 피감기관의 비용으로 해외 출장을 간 것에 대해서는 위법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자세한 사항을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기식 원장은 선관위 결정이 나오자마자 사의를 표명했고, 청와대는 사표를 수리할 것이라 전했다.

김기식 원장의 사퇴로 인해 보수야당은 청와대를 비판하는 수위를 한껏 높였다. 다만 정의당은 애초 청와대가 계획한 금융개혁은 좌초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번 사태로 인해 국회 안의 뿌리박힌 낡은 폐습을 일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16일 선관위는 김기식 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모임인 ‘더좋은미래’에 5000만 원을 후원한 것에 “종전의 범위를 벗어나 특별회비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공직선거법 제113조에 위반된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선관위는 김 원장이 의원 임기 종료 전 보좌진들에게 퇴직금을 준 것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피감기관 비용으로 해외출장’ 건에 대해서 선관위는 판단을 유보했다. 선관위는 “피감기관의 비용부담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것은 정치자금법 상 정치자금의 수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면서 “하지만 이런 행위가 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해외출장의 목적과 비용, 출장의 필요성 내지 업무관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법 소지가 있으나 해외출장의 자세한 내역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관위는 국회의원이 해외출장 시 사적경비 또는 부정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한, 인턴직원을 대동하거나 휴식 등을 위해 부수적으로 경비를 사용한 것은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니라고도 전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16일 보도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16일 보도자료.
김기식 원장은 선관위의 판단이 나오자마자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결정과 이에 따른 김기식 원장의 사퇴에 더불어민주당은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안타깝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청와대를 비판하고 사퇴가 당연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반면 정의당은 사퇴 수순을 인정하면서도 금융개혁이 좌초돼서는 안된다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는 여론의 공세에 밀려 정무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전례가 없는 사안에 대해 선관위의 의견을 묻고 그 판단을 국민께 알린 과정을 주목하고 의미있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김기식 원장이 선관위의 판단을 존중해서 국민에게 사의를 표명한 점도 안타깝지만 존중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김기식과 김기식으로 대표되는 이 정권 최고 실세 그룹인 참여연대 출신들의 위선과 부도덕, 동업자 정신이 국민 앞에 철저히 드러났다”며 “청와대와 대통령이 직접 나서 관행을 운운하고 이미 결론을 내린 선관위에 엄포성 질의를 하는 한심한 촌극까지 벌어졌음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은 “이제 청와대는 ‘반대가 많을수록 일 잘하더라’라는 망상도, ‘개혁 위한 과감한 선택은 비판이 많다’는 궤변을 내려놓고 철저히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기준을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청와대를 비판했다.

반면 정의당은 “김기식 원장이 지난 시절 보여준 금융 개혁 의지 등에서 미뤄봤을 때 이번 사퇴는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번 김기식 원장의 사퇴가 단순히 정쟁의 결과물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그간 문제를 제기해왔던 야당들이 금융 적폐 청산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회사 대표이사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임화영 기자
▲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회사 대표이사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임화영 기자
김기식 원장의 사퇴 건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실패 사례로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 야당에 유리하지만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선관위의 결론이 국회 전반의 ‘해외출장’의 관행을 불법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며 여당뿐 아니라 국회의원 모두에 대한 문제제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식 원장 사태로 인해 6.13 지방선거에서도 후보들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12일 청와대는 무작위로 16개 기관에 의한 해외 출장을 살펴본 결과,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 간 경우는 총 167차례였으며 이 가운데 민주당 의원이 65차례, 자유한국당 의원이 94차례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국회의원 해외출장 전수조사를 하자는 주장에 ‘사찰 프레임’으로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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