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감원장이 19대 국회에서 삼성생명법을 발의했고, 삼성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보험업법 감독규정 개정’을 추진하기 위해 임명됐고, 삼성생명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내용이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이 내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팩트’가 아닌 오보(誤報)라는 주장이 나왔다. 19대 국회 정무위원회 활동을 했던 최병천 전(前) 보좌관이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한다.(편집자주)

1.

YTN이 처음 오보를 냈고, 이후 민중의소리가 오보에 해석까지 붙여줬고, 그 다음에 중앙일보, 최근에는 프레시안도 오보 대열에 합류했다.

요지는 김기식 금감원장에 대한 야당과 언론의 공격이 삼성의 음모인데, 삼성이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이유는 ‘보험업법 감독규정 개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고객 돈으로 자산운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계열사 투자에 대해 자산운용 비율을 규제하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으로 비유하면, Bank Run을 막기 위한 ‘지급준비금’과 유사한 개념이다. (물론, 이해 상충 방지도 주요 취지다.)

현행 자산운용 규제는 은행, 저축은행, 금융투자(=증권)의 경우, 모두 ‘장부가액=시가’로 규제하고 있다. 근데, 오직 '보험'만 ‘취득원가’로 규제하고 있다. 그리고 보험회사도 △총자산 △자기자본은 ‘시가(時價)’로 하고 있는데, 오직 주식-채권만 ‘취득원가’로 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할 경우, 대한민국에서 ‘단 하나의 기업’이 편법-특혜를 받게 되는데, 바로 삼성생명이다. ‘시가의 3%’로 할 경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지분을 4조~5조원 내외밖에 소유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취득원가의 3%’로 할 경우 삼성생명은 20조원~25조원 내외의 주식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약 7.5%)

즉, 다른 모든 금융기관처럼(=정상적으로) 보험회사의 자산운용 산정방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바꾸게 될 경우, 삼성생명은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의 상당 부분을 팔아야 한다. 약 20조원 정도의 추가비용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의 지배력이 약화돼 자동으로 ‘금융-산업 분리’(금산분리)가 실현된다. 동시에 이재용 일가가 3% 내외의 주식지분으로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편법적, 그룹 지배의 중심축’이 통째로 무너지게 된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제도는 ‘보험업감독규정 별표 11 (자산운용비율의 적용기준 등)’ 제3호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가히 ‘삼성생명을 위한, 슈퍼 울트라, 맞춤형 특혜’라고 할 수 있는 조항이다. 거꾸로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볼 수 있다.

2.

그렇지만, YTN, 민중의소리, 프레시안, 중앙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들의 오보(誤報)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보험업 감독규정’은 김기식 금감원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말 그대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회사 대표이사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임화영 기자
▲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회사 대표이사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임화영 기자
첫째, ‘보험업 감독규정 개정’은 ‘금융감독원’의 업무가 아니라 ‘금융위원회’의 업무이다. ‘보험업 감독규정 개정’이 미션의 핵심이었다면, 금융감독원이 아니라 ‘금융위원회’로 보냈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금감원은 검찰(집행조직), 금융위는 법무부(정책조직)이다. 검찰이 ‘법률’을 다루지 않는 것과 같다.

둘째, 19대 국회에서 김기식 의원은 이와 관련한 ‘법안’을 낸 적이 없다. 이 법안은 <보험업법 개정안>인데 (김성영 보좌관이 있던) 이종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그리고 20대 국회에서도 (김성영 보좌관이 도와줘서) 이종걸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셋째, 19대 국회 후반부에 김기식 의원은 ‘법안소위 간사’를 했었는데, <보험업법 개정>을 위해 딱히 적극적인 노력을 한 적이 없다.(즉, 소극적이었다.)

법안에 대한 본격적인 심의는 ‘법안소위’라는 곳에서 이뤄진다. 국회는 ‘주고받기’가 기본인 동네인데, 법안의 경우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는 ‘교섭단체, 상임위 간사’다. 보험업법 개정의 경우 ‘정무위원회, 민주당 간사’ 역할을 맡는 사람의 권한이 가장 크다.

그래서, 만일 김기식 의원이 ‘보험업법 개정’에 대해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싶어하는 법안과 보험업법 개정을 패키지로 엮어서 ‘주고받기’를 시도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런 시도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3.

19대 국회 정책보좌관을 했던 내 경험에 의하면, 나는 ‘재벌 일반’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삼성’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실제로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제도 축인 △정부(공무원) △국회 △사법부 △언론 △심지어 지식인(대학교수)까지 모두 ‘삼성의 포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19대 국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경험에 의하면, 김기식 금융감독원 원장이 ‘삼성에 포획되지 않을’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19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도 명백한 팩트다.

그러나, ①보험업 감독규정은 ‘금감원’의 업무가 아니라 ‘금융위’의 업무이며 ②문재인 대통령이 ‘보험업 감독규정’을 개정하는 것에 뜻이 있었으면, 홍익대 전성인 교수 또는 서울대 박상인 교수를 금융위원장에 앉혀야 했으며 ③19대 국회에서 ‘삼성생명법’을 발의한 사람은 (김기식 의원이 아닌) 이종걸 의원이었고 ④‘상임위 간사’였지만 삼성생명법 통과에 소극적이었다.(물론, 다른 경제민주화 관련 의정활동은 했었지만.)

▲ 최병천
▲ 최병천
4.

어제 발표된(4/13)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문을 보면, ‘금융개혁’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근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금융개혁의 내용이 뭘까? 나는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학문적 논의가 매우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금융개혁의 가장 큰 방향은 첫째, 금융소비자 보호를 더 강화해야 한다. 둘째, 경쟁촉진을 강화해야 한다.(금융경쟁력 강화) 그런데, 그러자면. 셋째, 금융에 대한 재벌의 지배를 약화시켜야 하고 넷째, 관치금융을 타파해야 한다.

한국 금융의 낙후성은 ‘재벌의 지배’와 ‘관치금융’ 모두로부터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국가주도 계획경제의 역사적 유산이기도 하다.)

먼저, 재벌 지배와 금융시장 왜곡을 살펴보면, 예컨대, 약 200조원 규모의 삼성생명 자산을 위탁받은 삼성증권, 삼성자산운용 등은 ‘고객 일반’을 위해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삼성생명의 이익을 위해 = 이재용의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 ‘금융경쟁력’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관치금융과 금융시장 왜곡을 살펴보면, 막스 베버가 훌륭하게 갈파했듯이 국가의 본질은 ‘폭력’이다. 그런데, 폭력이 실제로 구현되는 방법이 바로 ‘규제’이다.

공공경제학에서는 시장실패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치실패와 관료실패를 동시에 다룬다. 자본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듯이, 관료 역시 ‘영향력 극대화’를 꾀하게 되는데, 핵심적인 방법이 <규제 권한의 확대>이다.

예컨대, 공무원=관료의 입장에서보면, 과징금이 1억이면 ‘매수가치가 1억인 공무원’이지만, 과징금이 100억원으로 올라가면 ‘매수가치가 100억인 공무원’으로 지위가 상승하게 된다.

그래서 관료=공무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과징금 인상’(규제강화)이다. 관료에게 규제강화 유인은 자본에게 이윤추구 유인과 같다.

게다가 진보성향 정당, 진보성향 정치인, 진보성향 언론들은 ‘솜방망이 처벌’ 등을 이야기하며 ‘두들겨 패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언제나 ‘국가주의 좌파+국가주의 우파’는 ‘관피아’의 든든한 존립기반으로 작동하게 된다.(몰락했던 소련의 계획경제가 그랬듯)

한국 금융이 낙후된 주된 이유가 ‘재벌의 금융지배’와 ‘관치금융’ 두 가지 모두의 영향을 받아, 소비자보호도 잘 안되고 경쟁촉진도 잘 안되는 것이라면, 한국의 금융개혁은 ‘단번에’ 이뤄지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한국 금융의 낙후성은 산업구조 고도화를 제대로 돕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재벌의 사회경제적 지배 △관료(모피아)의 결탁 △국가=정치=정당의 무능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팩트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삼성 음모론’은 오히려 이러한 ‘한국금융의 구조적 문제점’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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