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고용노동부의 보고서 공개 결정에 대해 삼성은 행정심판과 소송까지 제기하며 이를 막으려 합니다. 수많은 언론들은 고용노동부를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보고서가 무엇인지 그동안 이 보고서와 관련하여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 필자 주


고(故) 이범우씨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27년간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아내 김모씨는 남편의 죽음이 ‘산업재해’라고 생각했지만 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 환경을 직접 입증해야 했다. 그래서 그 공장의 ‘작업환경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부터 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삼성은 “이 보고서는 산업재해 판정과 전혀 무관하다”며 유족 측의 정보공개 청구를 “산재 판정에 활용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본사를 괴롭히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했다.

결국 김모씨는 남편에 대한 산재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이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부터 제기해야 했다. 나는 ‘공익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법’ 변호사들과 함께 이 소송을 대리했다. 2016년 1월에 시작된 소송이 2년 넘게 계속 됐고 소송 기록만 3000쪽에 가까워졌다. 길고 고된 법정 공방에 따른 시간과 비용은 고스란히 김모씨의 몫이었다.

올해 2월 마침내 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이 보고서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근로자의 생명·신체·보건과 직결된 정보로서 공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나아가 법원은 이렇게 말했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 연합뉴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 연합뉴스
“삼성전자 온양공장을 포함한 반도체 사업장의 경우 사업장 내에 황산·벤젠·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과 방사선 등이 누출될 수 있고, 그로 인해 근로자들의 신체·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됨은 최근의 보고서·논문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2000년대 후반부터 삼성전자의 반도체 및 LCD 생산 공정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나 유족들이 직업병 등을 이유로 수 십 건의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하고, 관련 소송을 제기한 사실도 이미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작업환경은 단지 위해 발생의 추상적·주관적 발생 가능성만 존재할 뿐이라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요컨대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은 이미 상당한 근거 자료들에 의해 확인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위험이라는 얘기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고 그렇게 김모씨는 남편이 근무했던 사업장에 대한 ‘작업환경 보고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김모씨가 이 보고서를 받게 된 직후 삼성전자가 직접 김모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보고서를 산재소송 입증 자료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와 관련하여 삼성이 벌이는 별의별 일을 다 보고 겪었지만 이 편지는 또 한번 나를 뜨악하게 했다. 편지 전문을 공개한다.

“자료를 산재소송에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지금껏 반도체 직업병 관련 산재소송에서 이 보고서가 활용된 적은 없다. 삼성이 계속 ‘영업비밀’ 운운하며 보고서 공개를 막았기 때문이다. 직업병 피해가족으로서 이 보고서를 보게 된 사람은 김모씨가 처음이다. 2년 넘게 정보공개 소송을 벌여 겨우 받아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의가 없다”고? 지금까지 보고서를 은폐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 한마디 없이 어쩌면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판결에 따라 해당 자료를 산재소송에서 입증자료로 활용하는 것”?
“산재소송 입증자료라는 당초 목적”?

마치 이번 정보공개 판결이 보고서의 활용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판결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정보공개법상 공개 청구를 할 때에는 ‘청구의 목적’을 적지 않는다. 법원의 정보공개 판결에도 ‘자료의 활용 범위’에 대한 제한은 없다.

“당초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거나 외부에 유출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거나 유출할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처럼 들리는 건, 내가 예민한 탓인가? 다시 말하지만 정보공개법과 법원 판결은 보고서의 활용 목적에 대해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다. 따라서 이 보고서를 어떻게 활용하건 김모씨 자유다. 산재소송에서 입증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고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위험성을 널리 폭로하는 자료로 쓸 수도 있다.

30년 가까이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의 아내에게 고작 이따위 편지를 보내는 기업이 삼성이다. 그래도 유족한테 보내는 편지에 위로 한마디는 있을 줄 알았다. 최소한 지금까지 ‘영업비밀’ 운운하며 산재 입증 활동을 방해한 것에 대해 사과 한마디는 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저 보고서 간수 잘하라는 경고만 있었다.

김모씨는 이 편지를 올해 2월 말에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감옥에서 석방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다. 그 난리를 겪은 삼성이지만 직업병 피해가족을 대하는 태도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관련기사]

1.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➀-
삼성전자가 직업병 피해 유족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합니다

2.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②-
삼성이 끝내 은폐하려는 이 보고서, 대체 무엇이길래

3.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③-
삼성이 ‘영업비밀’이라 하자, 언론은 ‘30년 노하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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