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지난 4일 “‘기자회견 불참’ 노선영, SBS 취재진과 함께 있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평창 동계올림픽 팀추월 대표팀 백철기 감독과 김보름 선수의 2월20일 기자회견 당시 노선영 선수가 SBS 취재진과 함께 있었고 이것이 취재 윤리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날 밤 SBS가 “3번 주자로 뛰겠다고 감독에게 말한 적이 없다”는 노 선수 인터뷰를 단독 보도한 것, 지난 1월 노 선수의 올림픽 대표팀 탈락이 대한빙상연맹 착오로 빚어진 사실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 또 SBS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노 선수가 출연한 것 등을 언급했다.

해당 기사를 쓴 김아무개 한겨레 기자의 문제의식은 한겨레21 1207호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 기자는 ‘SBS의 빙상연맹 때리기’란 제목의 한겨레21 기사를 통해 지난 2014년 안현수 선수 귀화 당시를 비롯해 과거부터 SBS가 빙상연맹 비판에 열을 올려왔고 그 배경으로 윤세영 전 SBS 회장과 장명희 전 빙상연맹 명예회장과의 친분 관계를 꺼냈다.

▲ 한겨레21 'SBS의 빙상연맹 때리기' 보도.
▲ 한겨레21 'SBS의 빙상연맹 때리기' 보도.

장 전 회장이 연맹 실세로 활동할 때는 SBS와 우호적 관계였지만 장 전 회장이 물러나고 전명규 한국체육대학 교수가 빙상연맹 전무에 취임하면서 SBS와 빙상연맹이 갈등을 겪게 됐다는 내용이다.

윤 전 회장과 장 전 회장이 이권으로 연결돼 있다는 한겨레21의 의혹 제기는 가능할지 몰라도 이 관계가 이번 SBS 보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

우선 윤 전 회장은 SBS 노동조합(언론노조 SBS본부)이 지난 정권 당시 SBS 보도에 개입한 것을 폭로하면서 지난해 10월 SBS에서 물러났다. SBS 노사는 방송사로선 처음으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쟁취했고 구성원 동의를 받은 사장과 주요 보직자들이 선출됐다.

노조위원장 출신의 개혁적 인사가 보도본부장을 맡고 있고 SBS 개혁을 이끈 노조 역시 최근 압도적 지지로 연임에 성공했다. 최근 10년을 볼 때 보도 자율성이 가장 높아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SBS 보도국 기자들,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 ‘블랙하우스’ 취재진은 SBS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사실상 경쟁자에 가깝다. 이들은 서로 다른 경로로 취재에 돌입했고 같은 취재내용이라 하더라도 서로 공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SBS 기자와 PD의 보도 방향이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이번 SBS 보도들을 ‘SBS와 빙상연맹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노 선수는 SBS 외에도 일요신문 기자를 세 차례 만나기도 했다.

기자(SBS 기자)가 취재원(노선영)과 같이 있는 게 문제라면 한겨레 기자의 취재 윤리 역시 의심 받을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금메달 제조기’로 불리는 전명규 한체대 교수(현 빙상연맹 부회장)다. 한겨레 온라인판과 한겨레21에서 관련 기사를 작성한 한겨레 김 기자는 한체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에 김 기자는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도교수는 따로 있고, 전 부회장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 기자는 윤 전 회장이 보도에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대주주이며 과거에도 물러났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에도 (SBS와 빙상연맹 관계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라 진실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도 취지를 설명했다.

두 언론사 공방보다 중요한 건 이 사안에서 시민들이 진짜 궁금해 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팀추월 경기에서 노 선수를 버려둔 채 김보름·박지우 선수가 먼저 들어오게 된 배경이다.

일부 언론은 이 사건을 전 부회장의 부당한 영향력이 미친 결과라고 해석했고 시민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구체적 진상을 알고 싶어 한다. 10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전 부회장과 백 감독의 파면 및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글이 170건 넘게 올라왔다.

▲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 관련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 게시글.
▲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 관련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 게시글.

일요신문의 지난 7일자 보도를 보면 전 부회장은 ‘자신이 불만을 가진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서류로 만들었고 빙상연맹 고위 관계자는 이를 도와줬다고 한다. 또한 이를 언론 보도용 지침으로 만들어 입맛에 맞는 기자를 물색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날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전 부회장이 누군가에게 기사 방향을 지시하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지난 8일자 엠스플뉴스는 전 부회장이 빙상연맹을 둘러싼 온갖 논란을 ‘전명규 vs 장명희’의 대립 구도로 몰아가기 위해 기획하고 언론 플레이를 한 정황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 빙상연맹 실세인 전 부회장의 전횡이 아닌 파벌 싸움으로 몰아가려 했다는 내용이다.

이들 언론이 공개한 전 부회장 녹취록과 전직 선수들의 증언, 노 선수의 동생 노진규 선수의 죽음에 대한 의혹 등은 한겨레가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SBS의 보도 목적’과 별개로,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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