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데이트 폭력 가해자의 폭행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법원이 가해자의 죄를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판결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다. 2016년 가을 애인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에도 피해자 A씨는 여성단체·경찰·언론에 실망하고 상처받았다.

가해자는 ‘쇼미더머니3’에 출연했던 래퍼 아이언(본명 정헌철)씨다. A씨는 정씨 발언권이 더 큰 데다 정씨가 피해자 신원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2차 피해에 시달려야 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6일 A씨를 만났다. 

서울중앙지법 1심 판결문에 따르면 2016년 9월 성관계 중 원치 않은 요구를 거절하자 정씨가 A씨 얼굴을 때렸다. 다음 달인 10월 A씨가 헤어지자고 말하자 정씨는 A씨 목을 조르고 얼굴을 때렸다. 또한 정씨는 자기 얼굴을 자신의 주먹으로 때리고 칼로 자기 허벅지를 긋는 등 자해를 한 뒤 ‘경찰에 신고해 네가 찔러 생긴 상처라고 하겠다’는 취지로 A씨를 협박했다.

폭행 직후 A씨는 여성단체 3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에선 ‘억지로 성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게 아니면 도와주기 어려우니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 가해자 주소지 인근 경찰서에 가서 신고해야 한다고 했지만 A씨는 혹시라도 정씨를 마주칠까 두려워 일단 자기 집 근처 파출소에 신고했다.

기소된 날, 가해자가 언론 통해 피해자 신상 공개

지난해 3월14일 검찰이 정씨를 A씨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보도가 쏟아졌다. A씨가 2차 피해에 노출된 건 이날 스포츠조선이 정씨의 기소 사실을 전하는 기사와 함께 정씨 단독 인터뷰를 비중 있게 전하면서다.

정씨는 인터뷰를 통해 “A씨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학적인 성적 관념을 가진 마조히스트(편집자주 :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받는 데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라고 표현했고 A씨의 전 남자친구를 거론하며 A씨가 거짓말을 했다며 행실을 문제 삼았다.

또한 A씨를 특정할 수 있는 표현도 인터뷰를 통해 등장했다. 정씨는 상해에 대한 것은 폭행이 아니라 A씨의 무자비한 폭행 과정 속에서 나온 정당방위였다고 했다. A씨 주장을 거짓으로 규정한 정씨는 “A씨가 끝까지 거짓을 말하면 맞고소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gettyimagesbank
▲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gettyimagesbank
A씨는 급하게 변호사를 선임해 반박 자료를 냈다. 피해자 신상이 공개돼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고, 이 사건 본질은 피해자가 보복성 상해와 협박을 당한 것이지 피해자 신상이나 성적 취향 등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마조히스트 주장도 사실이 아니며 폭행을 요구한 적도 가한 적도 없다는 게 A씨 주장이었다.

법원은 폭행 관련해 정씨와 A씨의 엇갈리는 주장을 핵심 쟁점으로 분류했다. 법원은 당사자와 목격자의 진술·CCTV·진료기록부와 진단서 등을 증거로 채택해 판단한 결과 A씨의 주장을 인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씨는 재판에서도 “A씨가 가학적인 성관계를 요구해 때린 적이 있을 뿐 상해를 가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정거들에 의하면 정씨가 성관계 도중 정씨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A씨의 얼굴을 때린 사실이 인정된다”며 “정씨 주장과 같이 A씨가 정씨에게 자신을 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차 가해로 들끓었던 SNS

모델로 활동하던 A씨는 폭행으로 얼굴과 손을 다쳐 한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회복해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려 했으나 정씨 인터뷰 기사로 신상이 공개되며 업무 계약이 무산되기도 했다. 촬영을 위해 만든 의상 비용 등 제작비를 A씨가 물어내야 했다.

2차 피해는 SNS를 통해서도 확산됐다. A씨는 “온라인에선 내 SNS에서 섹슈얼한 사진만 골라 ‘마조히스트 맞네’ 같은 글이 퍼졌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한국 사회 편견이 A씨를 괴롭혔다. 재판 기간 중 즐겁게 놀았던 과거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는 가해자 측이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며 A씨를 겨냥했다. “피해자는 방구석에만 있어야 하는가.” A씨는 점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무서워졌다. 

A씨는 “실제 기사 나가고 SNS를 통해 성희롱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지목하고 성적인 얘기까지 엮어 놓으면서 성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것. 

지난해 7월20일 서울지방법원은 정씨의 범행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A씨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형량이었다. 정씨가 A씨를 폭행한 2016년 9월~10월 경 정씨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대마)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에 대해 같은 해 12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A씨에 대한 범행이 마약사건 판결 확정 전에 있었기 때문에 정씨는 형법 37조 등에 따라 대마와 폭행 건에 대해 경합범으로 처리됐다. 재판부는 정씨의 폭행 건과 대마 건을 동시에 판결했을 경우와 형평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A씨는 재판부 판결을 보며 “이 정도 폭행은 문제 없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흉기도 있었는데 법원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판결이 나온 지난해 7월 중순 곧바로 항소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주소지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항소장이 정씨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방치되고 있다. 정현철씨와 정씨의 법률대리인 측은 SNS 메신저와 메일을 통한 입장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A씨는 온라인에서 자신이 받았던 2차 가해 건을 모아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할 예정이다. 사건 당일 A씨는 정씨가 잠든 틈에 도망쳤지만 정씨가 뒤따라와 자신을 다시 정씨 집으로 끌고 갔다며 정씨를 감금 등의 혐의로 추가 고소할 계획이다.  A씨는 “난 이렇게 힘든데 가해자는 공연도 하고 잘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피해자 신상을 노출시킨 스포츠조선의 보도는 제대로된 사회적 비판 없이 잊혀졌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