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지난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사이트 폐쇄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나 의원은 “일베 폐쇄 추진은 표현의 자유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후퇴시키는 행위”라고 했지만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타인 권익이 침해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는 법안도 발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과 누리꾼들 사이에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공약집에 ‘개별법상 인터넷 실명제 규정 폐지’를 명시하며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며 “그러나 일베 폐쇄 추진은 방송 장악에 이어 인터넷 공간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눈엣가시 같은 반여권 사이트를 폐쇄 운운하며 압박하는 것”이라며 “행위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넘어 플랫폼 자체를 차단한다는 것은 ‘닥치고 그만’ 식의 태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 지난해 6월29일 김상곤 교육부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자유한국당 청문위원으로 참석한 나경원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해 6월29일 김상곤 교육부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자유한국당 청문위원으로 참석한 나경원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하지만 나 의원의 페이스북 글 댓글에서도 나 의원이 일베 사이트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달려 있다. 한 누리꾼은 “일베 사이트는 단순히 정부·여당에 우호적이지 않아서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폐쇄 청원 넣은 게 아니다”며 “직접 들어가서 한번 보면 돌아가신 전직 대통령 조롱 사진과 영상, 흉악범 옹호 발언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갖다 붙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남겼다.

이미 청와대에서도 지난 23일 국민 23만5000여 명이 참여한 일베 사이트 폐쇄 청원에 대한 답변을 통해 정보통신망법에 음란물이나 사행성 정보를 비롯해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 정보 등을 불법정보로 규정하고 있어 사이트 폐쇄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방송통신위원회는 웹사이트 전체 게시물 중 ‘불법정보’가 70%에 달하면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며 “다만 대법원 판례는 불법정보 비중만 보는 게 아니라, 해당 사이트의 제작 의도라든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사이트 폐쇄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불법 음란물 유통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소라넷’과 일부 도박 사이트도 폐쇄된 바 있다.

아울러 나 의원이 지난 2008년 정치주간지 여의도통신과 인터뷰에서 정부의 사이버 모욕죄 신설 추진 등 인터넷 공간 규제 정책과 관련해 “타인 권익이 침해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수는 없다”면서 “표현의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불법행위에 대해 이용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지금의 주장과 모순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나 의원은 당시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 개정안은 인터넷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나 의원은 “인터넷상 불법 정보 및 권리 침해 정보로 인한 폐해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촉구했다.

나 의원은 이 같은 과거 주장과 각종 혐오·차별·모욕 표현이 난무하는 일베 사이트 규제의 차이점에 대해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내 입장이 바뀌었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건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개인 (불법 게시물) 작성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권리 구제, 특히 가짜뉴스가 양산되는 것에 대해선 엄격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이트 폐쇄는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 의원은 ‘불법정보가 70%를 넘으면 사이트 폐쇄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물음엔 “그동안 어떻게 (조치)됐는지 모른다”면서도 “그런 문제가 있으면 (폐쇄)할 수 있지만, 여권에서 국민청원 형식을 빌려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려는 것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말살할 수 있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