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시계’가 돌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개헌안을 발의하면서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국회에선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표결 처리하거나, 늦게라도 주도권을 다시 쥐고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마련해 발의하는 방안이 남았다.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35분(현지시간) 아부다비 숙소에서 개헌안 발의를 위한 전자결재를 한 뒤 “개헌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며 개헌안 국회 통과를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야당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개헌안을 발의한 네 가지 이유로 △촛불 민심의 헌법적 구현 △세금 절약 △대선·지방선거 동시 실시를 통한 국정 재정비 △대통령 권한 분산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개헌은 헌법 파괴와 국정농단에 맞서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던 촛불 광장의 민심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며 “지난 대선, 모든 정당과 후보가 이를 약속했지만 1년이 넘도록 국회 개헌 발의는 아무런 진척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헌은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과 지방, 국회에 내어놓을 뿐”이라며 “내게는 부담만 생길 뿐이지만 더 나은 헌법·민주주의·정치를 위해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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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문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합의할 수 없다면 합의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헌법을 개정하여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대통령 개헌안을 고집하지 않을 테니 지금부터라도 여야가 개헌의 ‘최대공약수’를 찾아달라는 압박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대통령의 구상은 여야 간 이견이 큰 권력구조 개편은 추후 과제로 넘기고, 이번에는 비교적 합의가 쉬운 기본권·국민주권·지방분권 강화를 뼈대로 한 여야 합의안으로 개헌을 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된다”고 풀이했다.

보수언론 “국무회의 논의 40분, 거수기로 전락”… 민주당 “1년간 의견수렴”

한국일보는 사설을 통해 “우리는 줄곧 대통령의 독자 개헌안 발의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해 왔다”며 “개헌공약을 파기하고도 ‘사회주의 개헌 쇼를 막는 국민저항 운동’ 운운하는 자유한국당의 뻔뻔한 막말과 선동에 끌려서가 아니다. 문제는 개헌의 동력이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청와대와 민주당은 대통령의 발의가 개헌의 동력을 이어 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상되는 현실은 동력의 실종”이라며 “발의가 목표가 아니라 실현이 개헌의 목표라면 청와대는 지금부터라도 야당과의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해 국회 발의가 작동하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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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은 국무회의에서 개헌안이 불과 40분 만에 통과됐다면서 절차적 흠결을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헌법 개정처럼 중요한 사안은 차관회의에서 1차 검토 후, 국무회의에서 시간을 두고 충분히 논의됐어야 했다. 하지만, 이날 회의 이전에 개헌안과 관련된 국무회의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 기구인 국무회의는 청와대가 만든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거수기로 변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이날 개헌안이 국무회의에서 논의된 시간은 40분에 불과해 현행 헌법 제89조(개헌안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함)가 유명무실해졌다는 ‘국무회의 패싱’ 논란을 불식하진 못했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국무회의 40분 심의 후 대통령이 전자결재한 개헌안’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통령 개헌안 발의가 38년 만의 일인데도 문 대통령은 국회나 국민에게 개헌안을 설명하지 않고, 해외 순방 중 아랍에미리트(UAE) 현지에서 전자결재로 재가했다”며 “국가의 근간이 되는 최고법의 수정 과정으로는 턱없이 부실하고 성의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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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국회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개헌안 논의를 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관계부처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고 해명했다. 박범계 수석대변인은 “충분히 물밑에서 각 관계부처 장관과 나름의 협의를 하고 지난 1년간 논의를 했다”며 “민주당 안이 이미 두어 달 전에 발표가 된 상황에서 오늘 국무회의를 열어서 관계 국무위원들이 심의를 해도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당 ‘미친개’ 발언 이어 “경찰이 여당 선거 대신”

울산경찰청의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수사를 놓고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등 비난한 자유한국당에 대한 경찰관들의 반발이 계속 확산하고 있다. 그러자 한국당은 경찰의 조직적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일선 경찰의 명예”를 언급하며 자세를 낮췄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정치경찰 행태에 대한 우리 당 장제원 대변인의 논평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 백지화 역시 “원내의 공식입장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번 사안은 전국 치안 현장에서 밤낮으로 수고하고 계신 일선 경찰의 명예와 직결된 사안으로 본말이 전도돼선 안 된다”며 “장 대변인이 지목한 대상은 정권 충견 노릇을 자처하는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 등 일부 정치경찰에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당은 울산경찰청과 송철호 변호사의 관계와 관련, “공무원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관여한 게 아닌지 조사한 뒤 울산경찰청장을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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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내대표의 진화 시도에도 경찰 조직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한국당과 장제원 대변인에 경찰관들은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안 온라인 모임 ‘폴네티앙’ 회원들은 SNS에서도 ‘우리는 대한민국 경찰관입니다.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닙니다’고 쓴 손팻말을 들고 찍은 인증사진 시위를 벌였다. 폴네티앙은 2010년 만들어진 경찰 안 모임인데, 전국 70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경남경찰청 경찰관인 유아무개 폴네티앙 회장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경찰 안 분위기가 격앙돼 있다. 명예훼손 등 법적으로 대응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며 “한국당과 장 의원에게 정중한 사과를 부탁했는데, 정권에 편향적인 정치경찰 등 받아들일 수 없는 거친 말이 돌아왔다. 그래서 (경찰을) 존중해 달라는 호소를 하려고 지난 25일부터 1인 시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폴네티앙은 장 의원이 공식 사과를 하기 전까지 날마다 1인 시위를 이어갈 방침이다. 27일부터는 현직 경찰관뿐 아니라 퇴직 경찰관 등도 동참한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울산경찰청 사안은 표적이나 의도적 수사가 아닌데 일종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할 것이지만 냉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공분하는 부분도 이해는 한다. 직원들 심정은 충분히 표출됐다”며 “서로 표현을 자제하고 공무원으로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소모적인 얘기는 안 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26일 김기현 시장과 인터뷰 전하며 경찰과 한국당의 갈등에 불을 지폈다. 김 시장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딨겠느냐는 식으로 경찰이 내 주변 사람들을 전방위로 수사하고 있다”며 “경찰이 여당 선거를 대신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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