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교재 물류 관리를 담당하는 위탁업체 측의 교재 횡령을 폭로한 공익 제보자가 해고됐다. 공익 제보자 A씨는 지난해 ‘한국출판물류’ 측이 EBS 교재 재고를 조작해 일부 물량을 팔아넘긴 정황을 제보했고 이로 인해 EBS의 재고 관리 허점이 드러났다.

EBS는 물류 관리 기능을 한국출판물류에 위탁해왔다. 인쇄소가 EBS 교재를 납품하면 한국출판물류가 도매상으로 물품을 보내거나 반품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한국출판물류 직원(한아무개 과장)은 서류상 반품 물량을 실제보다 부풀려 기재하는 등의 방식으로 교재 여분을 챙겨뒀다 사적으로 팔아넘겼다.

그런데, 한국출판물류가 지난달 A씨를 해고했다. 사유는 ‘경영상 위기에 의한 정리해고’였다. 하지만 A씨는 회사에서 ‘눈엣가시’였던 자신을 부당하게 잘라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 A씨가 한국출판물류 창고에서 발견한 EBS 학습교재.
▲ A씨가 한국출판물류 창고에서 발견한 EBS 학습교재.
A씨는 지난 2011년부터 경기도 파주시 한국출판물류에서 출판사의 단행본 출고 및 관리 업무를 해왔다. 지난 12일 미디어오늘과 만난 A씨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EBS 물류 관리에 의심을 품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출판물류) EBS 책을 계속 나르는데 물량이 부족해보였다. 그런 날이면 담당 직원들이 돈을 세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건 지난 2016년 12월이었다. A씨는 한국출판물류 간부 한아무개 과장이 물류 창고에 쌓아둔 EBS 교재들을 특정인에게 지속적으로 팔아넘긴 사실을 알게 됐다. 한 과장이 빼돌린 EBS 교재 재고를 과거 직장 동료에게 배송해 판매하면서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A씨는 이 같은 사실을 EBS 콘텐츠사업본부 측에 알렸지만 EBS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EBS 물류 관련 내부 보고서(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에 따르면 EBS 콘텐츠사업본부는 A씨의 최초 제보 직후 교재 1만4000여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학기 초 교재 공급 장애’를 이유로 대대적 전수 조사는 연기됐다. A씨는 EBS 측이 “한국출판물류에서 (재고 조사에 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A씨는 지난해 6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홍근 의원실에 해당 내용을 제보했다. EBS는 의원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한 뒤에야 EBS 감사실에 감사를 의뢰했다. 최초 제보로부터 7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EBS 재고 물량 조사 결과 부족분은 5만9000부, 2억5000만원 규모였다. EBS는 한 과장을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한국출판물류는 EBS 물류 관리 입찰 자격이 제한됐다.

▲ A씨가 한국출판물류 창고에서 발견한 EBS 학습교재.
▲ A씨가 한국출판물류 창고에서 발견한 EBS 학습교재.
이로부터 한 달 뒤 A씨와 일부 직원들은 EBS 물류 관리를 담당하는 외주사업팀으로 발령됐고 지난달 해고됐다. “근무평정 결과 하위자를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했다는 것이 한국출판물류 측 해고사유였다. 하지만 A씨 측은 “회사가 자의적인 징계를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아 근무평정을 진행한 뒤 해고 대상자를 선정했다”며 “회사에서 (일부 직원들을) 제거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근무평정에 반영된 징계가 모두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또 다른 해고자인 B씨의 경우 몇몇 직원들과 퇴근 후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홀로 견책 처분을, C씨는 관리자에게 “반말을 삼가길 부탁드린다”고 말해 업무 지시 위반으로 견책 처분을 받았다. D씨는 다른 노조 조합원과의 시비로 노동지청 조사를 받은 뒤 무혐의가 입증됐으나 회사는 혐의가 입증된 타 노조 조합원이 아닌 D씨에게 경고를 내렸다. A씨의 경우 EBS 사례에 앞서 다른 출판사 물류를 한국출판물류 측이 빼돌린 정황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경고 처분을 받은 바 있다. A씨를 포함해 B, C, D씨 모두 이런 징계 사유들이 반영된 근무평정의 결과 해고됐다. A씨는 자신을 포함한 해고자들이 A씨가 위원장으로 있는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라는 점에서도 회사 조치가 부당하고 주장했다.

A씨는 한국출판물류의 정리 해고는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출판물류는 해고자들에게 “정리해고 규모를 축소하고자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감원 목표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A씨 측은 “EBS 관련 부분에 있어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회사 내 만연한 부패로 인한 결과”라며 “회사 전반적인 경영 상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입증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회사가 경영진 교체, 부정부패 척결, 경비 절감 등의 노력 없이 희망퇴직 모집 공고만 내놨다고 지적했다.

A씨는 해고에 앞서 한국출판물류 측이 공공연한 해고 압박을 해왔다는 점도 폭로했다. 지난해 8월 JTBC 뉴스룸이 한국출판물류의 EBS 교재 빼돌리기를 보도한 다음날(8월24일) 회사 간부가 직원들 앞에서 A씨를 제보자로 특정했다는 것이다. A씨는 “전무가 전 직원을 회의실로 불러 방송분을 보여주면서 ‘A가 한 거다’, ‘공익제보냐’고 했다”며 “‘이런 상태면 EBS 물류 관리 입찰을 못할 거고, 부서가 없어질 거다. 자연적으로 너희를 해고시키는 건 아무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A씨를 비롯한 해고자들은 지난달 고양노동지청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했다. 이에 대한 한국출판물류 측 입장을 들으려 했으나 한국출판물류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노동지청에서 조사 중이니 결과가 나오면 이야기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국출판물류는 지난 2008년부터 10년 동안 EBS 물류 관리를 전담해왔다. 과거 누적된 비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A씨는 EBS와 한국출판물류 간의 유착 관계를 밝혀내야 한다고 요구해왔지만 번번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범죄 집단이 있다는 점을 확실히 밝히지 않으면 또 누군가가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해야 할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출판물류 사례로 불거진 EBS 재고 관리 문제는 감사원으로 넘어갔다. 국회는 지난달 28일 본회의에서 EBS 출판 유통 구조 감사 요구안을 의결했다. 요구안을 발의한 국회 과방위는 “(EBS는) 물류 시스템의 전반적 개선과 내부 직원의 물류 업체 유착 관계를 단절하는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수사 의뢰 대상을 물류 업체 직원 1인으로 한정하는 등 사건 축소 의혹이 있다”며 “관련 비리와 감독 소홀 책임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 감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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