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시대, 언론장악의 장본인들로 지목받은 대표적 인물인 길환영 전 KBS 사장과 배현진 전 MBC 앵커의 자유한국당 입당을 바라보는 언론인들 입장이 불편해 보인다. 한국PD연합회 등은 성명서를 발표하며 이들의 입당을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도 성명을 통해 “그동안 힘겹게 KBS와 MBC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던 구성원들과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염원해온 국민 앞에 자유한국당 정권 시절의 ‘KBS 사장’과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려 하는가”라며 “제1야당으로 진정 ‘언론의 독립’을 바란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언론단체들의 비판과 반발은 타당한 것인가. 혹시 개인의 정치적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무리한 주장을 하는 측면은 없는가. 정당이 이런 식으로 언론인을 영입하는 것도 자유의 영역에서 존중받아야 하는가.

▲ 지난 3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길환영 전 KBS사장(왼쪽부터), 김성태 원내대표, 홍준표 대표, 배현진 전 MBC 앵커, 송언석 전 기재부 2차관이 박수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3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길환영 전 KBS사장(왼쪽부터), 김성태 원내대표, 홍준표 대표, 배현진 전 MBC 앵커, 송언석 전 기재부 2차관이 박수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먼저 언론단체들은 개인의 정치적 선택에 왜 이렇게 공개적으로 반발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이 피해자로 둔갑한 기막한 현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을 넘어 이들이 국회로 진출하여 미디어 법과 정책을 만들게 될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길환영 전 KBS 사장은 지난 2012년 11월에 취임해 2014년 6월까지 사장을 역임했다. 사장 취임부터 퇴임까지 모두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 이뤄졌다. 2014년 6월5일 KBS 이사회는 길 전 사장에 대해 ‘무능하다’는 이유로 해임했다. 길 전사장은 해임이 부당하다며 제소했지만 법원은 해임은 ‘정당한’ 것으로 판결했다.

그동안 그의 입에서 공정방송이니 언론자유니 하는 주장은 나온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그와 함께 일한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은 길환영 사장을 가리켜 “사사건건 보도 독립성을 침해했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김 전 국장은 당시 JTBC 인터뷰에서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며 윤창중 성추행 사건을 톱뉴스로 올리지 말라고 압박하는 등의 사례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배현진 전 MBC 앵커 역시 방송장악 주범으로 비판받은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 체제에서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아 MBC 뉴스의 신뢰도를 추락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동료들이 ‘방송독립’을 외치는 동안 노조를 탈퇴하여 방송장악 사장들의 입노릇을 하다 최승호 신임 MBC 사장 취임과 함께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물러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방송독립’을 외친 적도 없고 거꾸로 방송장악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 우세하다. 자유한국당에서 뭐라고하든 이들의 말과 행위가 바뀔 것 같지 않다. 이들이 정당을 선택하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는 것은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영역이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정당과 정치인,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역할이 막중하다. 공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인사들의 정계진출은 정당이나 미디어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두 사람의 자유한국당행을 개인의 자유 영역으로만 볼 수 없다는 뜻이다. 

▲ 지난 3월9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국당에 입당한 배현진 전 MBC 앵커에게 태극기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지난 3월9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국당에 입당한 배현진 전 MBC 앵커에게 태극기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길 전 사장이나 배 전 앵커나 모두 언론장악시대에 개인의 영달과 공정방송의 가치를 맞바꾼 인물로 언론계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 무대를 옮겨 정치권으로 간다고 해서 그들의 선택과 역할이 국민 전체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것 같지 않다. 거꾸로 언론과 정치의 경계를 허물며 상호 감시, 견제의 역할을 부정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언론인이 방송에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는 이유로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반국민적, 반역사적 일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에 병풍처럼 서있는 권언유착의 부끄러운 얼굴들을 한번 보라. 이들은 대부분 언론계 국장, 주필, 논설위원, 방송앵커 출신으로 개인의 영달과 국민의 희생을 맞바꾸기 한 전직 언론인들이다.

자유한국당이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켜 이런 기대이하의 인물을 영입하며 ‘인재가 몰린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것은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장제원 대변인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권의 폭압적 언론탄압과 언론장악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상징적 인물”이라며 “이 분들을 다가올 선거에 전진 배치해 문재인 정권의 언론탄압을 심판할 것”이라는 주장했지만  야당의 공허한 주장일 뿐이다.

‘이명박·박근혜 시대’ 언론장악의 혹독한 체험을 한 국민은 공영방송에 대해 좌절하고 실망했다. JTBC의 맹활약은 바로 공영방송의 몰락 속에 가능했다. 대통령이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아도 침묵하던 방송,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해도 질문조차 못하던 시대의 사장, 앵커들이 정작 언론자유 시대가 오니 거꾸로 ‘언론탄압’ 운운한다. 언어도단이자 국민기만이다.

한비자는 세상을 망하게 하는 세 가지중 하나로 “사(邪)가 정(正)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의 잘못된 선택은 개인에게 부귀영화를 줄 수 있지만 사회는 그만큼 고통과 후퇴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성숙도는 국민의 의식수준과 정비례하는만큼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의 새역사를 이뤄낸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과 판단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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