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회부장 선우정은 대북특사단을 427년 전 조선통신사와 비교했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왜국의 침략 낌새가 보이자 당시 조선 왕조는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했는데, 여기에 정사로 갔던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 야욕을 눈치 챘지만 부사였던 김성일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정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1592년 일본을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치는데 길을 빌려 달라’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했고, 지옥 같은 전쟁은 7년이나 이어졌다. 당시 정사 황윤길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면, 임진왜란을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선우정의 말대로 “특사의 편견, 조정의 당파, 임금의 비겁”이 어우러져, 조선 민중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선우정은, 대북특사단으로 북한에 가서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온 뒤, 6일 청와대에서 합의 결과를 브리핑 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수석이 김성일로 보였던 모양이다. 김성일은 전쟁이 벌어진 후 잘못된 보고를 올린 죄인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는데, 정의용 실장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근거는 아래와 같다.

“이번 특사단은 비슷한 세계관·역사관의 공유자들이다. 북한에 대한 장밋빛 편견도 비슷하다. 김정은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명령을 받고 일한 사람이 그 결과를 보고하는 것을 ‘복명(復命)’이라고 한다. 대북 특사단의 복명은 옛 대일 특사단의 복명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어제 밝힌 그들의 복명은 학봉의 평화론보다 시대착오적이다. 특사단의 평화론에 솔깃하는 것도 그 옛날처럼 암울하다. 편견, 당파, 비겁. ‘실보오국(失報誤國·잘못된 보고가 나라를 그르쳤다)’은 옛말이 아니다.”

▲ 조선일보 3월7일자. 34면.
▲ 조선일보 3월7일자. 34면.
정리하자면, ‘북한에 대한 장밋빛 편견’, 그러니까 최소 북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최고 종북 세력들이 ‘김정은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나라를 그르칠 만큼의 잘못된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가 뭘까? 그나마 근거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은 아래와 같다.

“북한은 “우리 핵 주먹 안에 미국이 있다”며 큰소리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라며 한국에 손짓한다. ‘정미향도(征美嚮導)’를 떠드는 것이다. ‘정미’는 ‘정명’ 못지않은 개꿈이다. 북한도 안다. 그들의 목표는 한국을 미국행 길잡이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핵 담판으로 미국을 묶고 그다음 한국을 먹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 목표를 포기한 일이 없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 류는 북한을 보는 자신과 다른 시선에 쉽게 ‘종북’ 딱지를 붙이지만, 남북대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번 합의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실제 합의가 그대로 잘 이루어질지 의심하는 의견도 있다.

물론 다수 언론이 이번 합의가 ‘파격적’이라며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내비쳤다는 점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진전”(중앙일보 3월7일자)이란 평가를 내렸어도, “북한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선언을 넘어 비핵화 대화 추진에 합의하면서 북-미 대화 성사의 발판을 마련한 것”(동아일보 3월7일자)이란 평가를 내렸어도, 유독 조선일보만은 불안한 시선으로 이 대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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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된 마음이라면 일관돼야 한다. 2014년 북한 김영철과의 회담, 그리고 2018년 김영철의 방남을 휴전선을 넘었냐 안넘었냐로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논리로는 그 일관성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2014년 북한 황병서가 내려와 “대통로를 열자”는 말을 했다고 “정상회담의 전조로 해석될 수 있는 파격적 요소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던 자신의 과거에 반성이 없다면, 그 일관성을 지켜낼 수 없다. 황병서가 내려와 북핵의 ‘핵’자도 안꺼냈는데, “이번 북한 최고위급 방문은 변화의 시그널로 해석된다”고 했던 조선일보가, 그리고 그 회사 사회부장이 이제와 “북한은 이 목표를 포기한 일이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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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2014년,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통일은 대박”을 외칠 때 “통일은 미래다” 시리즈를 내보내면서 새해 첫 머리기사 제목을 “남북 하나될 때, 동아시아 번영의 미래 열린다”고 했던 조선일보가, 통일을 위한 돈을 쓴다며 공무원들에게 손을 벌렸던 조선일보가, 이제와 북한과의 합의사항을 그대로 읽는 것을 두고 “학봉의 평화론보다 시대착오적”이라니, 이것을 편견, 당파, 비겁이 아니면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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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 등 특사단이 지난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북측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배석했다. ⓒ연합뉴스
▲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 등 특사단이 지난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북측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배석했다. ⓒ연합뉴스
선우정은 대북특사단을 김성일에 비견했으나, 김성일에 가까운 것은 오히려 자칭 한국의 보수세력들이다. 왜국을 얕잡아보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그의 눈은 쥐와 같아 마땅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라고 선조에게 말했다. 정세파악에 실패한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아니라 왜에 대한 그의 편견이었다.

북한의 의도가 어떻게 됐든 우리는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을 취하면 된다. 특사단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고 이것은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낮춰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선우정은 북한을 얕잡아보고 한반도 돌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대화를 ‘북한 위한 것’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화를 하지 않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을 당했다. 지난 9년 간 대북정책이 학봉의 평화론보다 시대착오적이었던 것이다. 다만, 학봉과 이들은 엄격하게 구분돼야 한다. 학봉 김성일은 종실의 비리를 탄핵하며 ‘대궐의 호랑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정세판단엔 실패했지만 임진왜란 때 목숨 걸고 싸우며 유능함을 드러냈다. 친일 논란은 없는 사람이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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