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두 노동자, 한국이와 영국이가 있다.

2018년 대한민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7530원이다. 영국은 12000원 (7.83 파운드)이다. 한국에 사는 한국이와 영국에 사는 영국이가 똑같이 한 시간을 일했을 때 영국이는 4470원을 더 받는다. 물론 ‘단순비교’는 할 수는 없다. 물가 차이가 있으니까. 그런데 눈여겨볼 통계가 있다.

‘더 이코노미스트’가 2016년에 발표한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생활물가 지수를 살펴보면, 비싸기로 서울이 6위, 런던이 24위다. 133개 도시에서 160개의 상품과 서비스를 비교했다는 이 통계는 서울이 뉴욕 (9위) 보다도 비싸다고 말하고 있다.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체감물가는 또 다를 수도 있다는 걸 고려 하더라도 한국의 물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공간에 살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걱정은 한국이와 영국이가 다르지 않다. “고용주들이 고용을 안 하거나 줄일 수 있다” “고용주들이 노동시간을 줄이고, 시간 외 노동도 못 하게 할 것이다” “고용주들이 상품의 가격을 높일 것이다.” 정말 그럴까?

▲ 출처=Living Wage Foundation
▲ 출처=Living Wage Foundation
영국은 최저임금 (National Minimum Wage)과 생활임금 (National Living Wage) 이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한다. 편의상 ‘최저임금’이라는 표현을 쓰겠다.

영국에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건 1999년 노동당 정권에 의해서다. 당시 시간당 최저임금은 5400원 (3파운드)이었다. 이후 최저임금은 꾸준히 인상됐다. 세계 경제가 공황상태에 빠졌던 2008년에도 최저임금은 올랐다. 그래서 지금의 12000원이 됐다.

영국이 특이한 점은 두 개의 최저임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최저임금과 ‘생활임금 재단 (Living Wage Foundation)’이 제시하는 최저임금이 그것이다. 국가가 정한 법정 최저임금은 25세 이상과 이하가 다르고 ‘생활임금 재단’이 제시하는 최저임금은 런던과 런던 이외 지역이 다르다. 물론 정부가 정한 법정 최저임금은 강제성이 있지만, 기업들이 발표한 최저임금은 강제성이 없다.

‘생활임금 재단’은 3500개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운영되는 단체다. 그 이름도 낯익은 버버리나, 이케아, 네슬레 같은 기업들이 함께한다.

기업들의 모임인 셈이다. 이 기업모임은 매년 자체적으로 주거, 교통, 식비 등의상승 폭을 조사하고 영국이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수입이 보장돼야 하는지 산출한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최저임금을 결정해 기업체들이 따르도록 권고한다. 런던과 그 외 지역의 물가가 다른 것을 참작해 두 개의 최저임금을 발표하는데 올해는 런던 15200원 (10.20파운드), 런던 이외 지역 13000원 (8.75 파운드)을 발표했다. 영국 정부가 발표한 법정 생활임금은 런던과 지방 구분 없이 12000원 (7.83 파운드)이니까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한 최저임금이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은 것이다. 한국이와 영국이를 비교하면 (파운드의 가치가 하락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이가 두 배를 더 받는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생활임금재단이 정한 최저임금은 강제성이 없다.

그래서 올해 재단이 발표한 인상안을 따르겠다고 결정한 회원사는 3500개 기업 중 3분의 2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15만 명이 ‘생활임금 재단’이 발표한 최저임금 혜택을 볼 전망이다. 당장 히스로 공항의 청소부와 경비원 3천 2백 명이매월 400파운드 (60만 원)를 더 받게 됐다. 기업들 스스로 정한 최저임금이 법정 최저임금에 따르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 언론들은 최저임금을 이야기할 때 ‘생활임금 재단’이 발표한 최저임금을 법정 최저임금에 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영국 정부는 2년 후인 2020년, 9파운드 (13400원)를 목표로 매년 최저임금을 올려왔다. 하지만 기업 (생활임금 재단)이 내놓고 있는 상승 폭이 이미 9파운드를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보니 목표치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고용주인 기업들이 나서서 정부에게 최저임금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인상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무슨 이유에서 정부가 정한 임금보다도 높은 최저임금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생활임금재단은 최저임금을 준수하는 기업들이 기업의 신뢰성과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뿐 아니라 직원들의 자긍심과 충성도도 높이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생산성과 효율성이 향상됐음은 당연하다 하겠다.

▲ 출처=Living Wage Foundation
▲ 출처=Living Wage Foundation
임금이 인상되면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는 우려가 기우였음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The Resolution Foundation은 법정 최저임금을 11,200원 (7.50 파운드) 으로 인상했던 지난 한 해 약 30만 명이 임금인상 혜택을 누렸으며 그 결과로 1970년대 이후 최저임금 노동자가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2016년 540만 명이던 최저임금 노동자가 전체 노동인구의 510만 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The Resolution Foundation의 정책분석관 Conor D’Arcy는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지난 40년을 비추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인구는 최저치를, 고용률은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영국 정부는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687개 고용주를 적발해 21억 원 (140만 파운드)의 과태료를 물렸다. 그러자 의회는 충분하지 않다며 기소를 통해 더욱 엄중히 처벌할 것을 주문했다. 고용불안에 대한 여전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노동자를 줄이려는 노력에 여야 정치권이 뜻을 함께하고 있는 모양새다.

영국의 다음 과제는 남녀 간, 지역 간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Conor D’Arcy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축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2년 후에도 여전히 400만 명은 최저임금 노동자로 살고 있을 것이며 그중에 상당수는 여성일 것이라는 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Dr Wanda Wyporska (the executive director of The Equality Trust)도 “금융계 CEO들의 평균 임금이 최저임금 노동자의 300배가 넘는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더 많은 기업이 ‘생활임금 재단’이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안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당 당수이면서 유력한 대권 후보인 제러미 코빈은 한발 더 나아가 고용주가 같은 회사 최저임금 노동자의 20배가 넘는 연봉을 챙겨가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최고임금에도 한계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보장은 또 하나의 복지정책이다. 국민에게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는 복지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물론 최저임금을 정하는 문제는 노동자 개개인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영세상인이나 중소기업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기업에 비할 수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저임금 도입 20년 차를 앞둔 영국의 실험이 보여주는 성과는 눈여겨 볼만한것 같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