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각으로 1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철강·알루미늄 업계 최고경영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외국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현지시각으로 지난달 16일 미국 상무부는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를 가하는 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바 있는데, 그 방법은 ①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최소 24%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②한국을 포함해 브라질, 러시아, 인도, 베트남, 중국 등 12개국을 대상으로 최소 53%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③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지난해 대미 수출 63% 수준의 쿼터를 설정하는 방안이었다.

이 방안이 알려진 초기에는 ②번 방안이 유력한 듯 했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①번 안, 모든 국가에 24%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에서 1%p를 더 올려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②번 방안에 대한 국내외 반발이 거세지자 아예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일으키는 ①번안을 선택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관심 가는 대목은 이에 따른 언론 보도가 요동쳤다는 것이다. ②번 방안이 유력했을 때 일부 언론은 한국이 다른 미국의 동맹국들과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며 ‘정치적인 동기’를 언급했다. 대북 정책을 놓고 미국과 한국 간 혼선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①번안을 선택함으로써 이런 관측은 다소 민망하게 됐다. 사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12일 미국이 중국과 일본, 한국과의 교역에서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했다면서 “이들 국가의 일부는 이른바 동맹이지만 무역에서는 동맹이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언론은 ②번 안이 유력했을 때 해당 조치는 안보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조선일보 2월19일자. 1면.
조선일보 2월19일자. 1면.
동아일보 2월19일자. 1면.
동아일보 2월19일자. 1면.
지난달 19일 조선일보는 5면, “美, 안보·통상 정책 연계…우리 정부는 “이유를 모르겠다”” 기사에서 “지난해 6월 사드 배치 연기 논란이 이어진 뒤 백악관에서 한미FTA 폐기 움직임이 본격화했고 지난해 11월 우리 정부가 중국에 이른바 3No의사를 전한 뒤 철강 등에 대한 무역 공세가 강화된 것을 우연으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전했다. 한미간 정치적 이견이 비쳐질 때마다 경제보복이 들어왔다는 취지다.

지난달 20일 사설 “中엔 침묵하고 美에 결연히 대응한다는 文 대통령”과 “외교·안보·통상 심각하게 재점검해야 할 시기 왔다”에서도 같은 취지의 주장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감정 섞인 대응을 자제하면서 미국 측을 이해시켜서 윈·윈 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일본이 해내고 있다”고 주장했고, 북한 관련 한미 간 이견을 부각시킨 후 “미국이 최근 보호 무역 공세에서 한국을 빠뜨리지 않고 포함 시키는 것도 심상치 않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2월20일자. 사설.
중앙일보 2월20일자. 사설.
중앙일보도 지난달 20일 사설 “한·미 통상 갈등, 불편해진 양국 관계 반영 아닌가”에서 “안보와 통상의 논리가 다르고 서로 다른 궤도로 가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라지만 혹시라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남북 간의 접촉 이후 불편해진 한·미 관계를 반영하려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동아일보 역시 지난달 19일 사설 “美, 이번에는 철강 관세폭탄…잇단 ‘한국 때리기’”에서 “그러나 최근 외교·안보 분야의 잠재된 한미 갈등이 경제보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며 “정부는 미국의 무역보복이 단순한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섰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안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①번안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이는 이번 보호 무역 조치가 사실상 한국을 겨냥했다고 보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그러자 해당 언론의 보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자유무역 흔들기’를 비판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안보 문제로 미국에서의 한국 동맹국 지위가 흔들린다는 주장을 더 펼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3월3일자. 사설.
동아일보 3월3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지난 3일 사설 “세계무역질서 뒤흔드는 트럼프의 무차별 ‘관세폭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단순히 자국 산업 보호를 넘어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미국의 주도로 수십 년간 쌓아온 자유무역이라는 국제질서가 미국에 의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도 3일자 1면 제목을 “트럼프식 ‘철의 장벽’”으로 잡았고, 중앙일보도 같은 날 “트럼프, 세계 무역 전쟁 포문 열다”로 잡았다. 안보 문제와 통상 문제를 연결시키던 기존의 주장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조선일보 3월3일자. 1면.
조선일보 3월3일자. 1면.
중앙일보 3월3일자. 1면.
중앙일보 3월3일자. 1면.
이런 상황에서 애초에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관세 부과 움직임을 정치·안보로부터 원인을 찾았던 것이 ‘오발’ 아니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초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선거운동 기간부터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고, 한미FTA를 공격하며 재개정을 언급해왔다. 때문에 미국의 보호무역조치 강화는 상황 변화로도 보기 어렵고, 예상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중인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미국이 철강과 관련해 최고 50%에 가까운 반덤핑 조치를 발표한 바 있는데 당시에는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물론 중앙일보는 5일 사설에서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라고 비판했고,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미국의 통상 압박에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을 주문했지만 그렇게 될 일이 아니”라며 여전히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조치에 안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미국 내부다. KBS에 따르면 미국의 CNBC는 현지시각으로 지난 2일 “미국은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스티븐 비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한국 등 동맹국들의 미국 지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그런 정책이 어떻게 보이게 될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따르면 미국 언론 ‘디 애틀랜틱’은 트럼프의 철강 규제에 대해 ”트럼프는 철강에 대한 관세부과를 통해 일자리와 안보를 지키겠다고 말했지만 둘 다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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