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KBS 사장 임기는 약 8개월이다. 전임 고대영 사장 임기는 오는 11월까지였다.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이 늦어질수록 새 사장 임기는 줄어든다. 고 전 사장이 해임되고 새 사장이 선임되기까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새노조)는 공영방송 KBS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유례없는 142일 총파업을 진행했다. KBS 구성원들에게 있어서도 남은 8개월은 지난한 싸움의 정당성과 의미를 입증해야 하는 시간이다.

KBS 안팎으로부터 요구되는 제1과제는 ‘적폐 청산’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이들을 따르지 않는 KBS 구성원들은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제 역량을 펼치지 못했다. 국가정보원의 ‘블랙리스트’가 실제 작동하고 국정원과 청와대의 보도 청탁·개입이 이뤄진 결과 KBS 뉴스 신뢰도는 급전직하했다. 새노조가 “최대한 빨리 환부를 도려내고 KBS 재건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문제는 MBC와 달리 절대 악(惡)을 구분하기 쉽지 않은 KBS 내부 구조다. 기존 구성원을 보도·제작에서 배제하기 위해 이른바 ‘유배지’를 만들거나 해고를 서슴지 않았던 과거 MBC 인사들과 달리 KBS에는 ‘회색 지대’가 넓다. KBS 한 구성원은 “파업이 끝나갈 때쯤 웃으며 고생했다고 다가오는 간부들이 꽤 있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KBS 인사는 “KBS에는 내부 적폐 청산과 동시에 통합이라는 모순된 과제가 있다”고 했다. 적폐를 나누는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부터 치밀한 합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언론계의 고질적 병폐인 비정규직·외주제작사에 대한 갑질 관행 문제는 더 복잡하다. 앞서 정상화 수순에 돌입한 뒤 갑질 관행을 개선하겠나고 나선 MBC의 경우도 비정규직 실태 조사부터 순탄치 않은 분위기다. 덩치가 크고 채널이 많은 KBS의 경우 더 만만치 않다. ‘미투(#MeToo)’ 운동에 힘입어 수면 위에 올라온 언론계 성폭력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발생했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제때 사후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서 피해자가 수년 간 고통 받는 사례들이 밝혀지고 있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감사를 진행하고, 적당한 담당 기구를 만드는 일 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생존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미디어를 소비하는 창구가 온라인 기반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동안 KBS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미디어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공영방송이 필요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약화되고 있다”며 “뉴미디어 플랫폼과 관련해 KBS는 다른 방송과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장 임기가 짧은 만큼 무리한 욕심을 내선 안 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정준희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교 교수는 “자칫 잘못하면 차기 사장이 재선임을 목적으로 짧은 기간 단기 실적에 맞춰 KBS를 운영할 수 있다”며 “보궐 기간 동안 가시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실질적으로 1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며 “미래 지향적인 서비스를 당장 만들 수는 없다. 가치 지향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적 실험이 요구되고 또 지난 정권 하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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