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농성장을 방문한 김훈 작가가 뇌물공여 유죄를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이 깊은 성찰을 통해 국민의 편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김훈 작가는 지난 13일 서울 강남역 앞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에서 861일 째 노숙농성을 이어온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농성장’을 최초 방문해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로 방문한 김 작가는 매주 1~2회 열리는 발언회인 ‘이어말하기’ 행사에 참여했다.

▲ 사진=반올림 페이스북 동영상 캡쳐.(2018년 2월13일)
▲ 사진=반올림 페이스북 동영상 캡쳐.(2018년 2월13일)

발언자로 나선 김 작가는 “이재용 부회장이 몇 일 전에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축하드린다”며 “이 부회장은 감옥에서 나와서 건강검진도 하고 건강 관리를 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건강도 똑같다. 그 많은 노동자들의 질병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세월호 참사와 삼성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를 비교하며 “우리 사회는 세월호 피해자들을 ‘재수없이 당한 소수’로 몰아붙여서 이 사회로부터 제외시켰다. 그렇게 빼버림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려고 했다”며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김 작가는 “(삼성 측은) 개인적인 병이다, 우연적인 병이다, 이런 주장을 하며 사람들을 사회에서 제외시키려 한다”며 “이런 삼성의 노력 뒤엔 그 실력있고 유능한 의사들, 놀라운 로비력과 권력을 가진 변호사들이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직업병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삼성 측 주장에 대해 김 작가는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같은 라인에서 수많은 환자가 발생했다. 이것에 정말 극단적인 자연과학적 증명을 요구한다면, 그건 과학이 아니라 권력이고 미신”이라고 밝혔다.

김 작가는 농성장에서 걸음으로 5분 정도 거리에 떨어진 삼성생명보험 측에 “시민단체 생명안전시민넷에 가입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생명안전시민넷(이하 시민넷)은 세월호 및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 안전사회 구축에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며 각계 전문가 및 활동가 100여 명이 모여 발족한 단체다.

그는 “시민넷은 산 것들끼리 어깨걸고 서로 보험들 듯이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연대망”이라면서 “오는 길에 삼성생명 깃발을 봤다. 생명보험이란 것도 이것처럼 서로 담보해서 가자는 것인데 시민넷 들어와서 서로 안전을 담보하자”고 말했다.

삼성생명 건물 앞 태극기, 삼성그룹 깃발, 삼성생명보험 깃발이 나란히 게양돼 있는 것과 관련해 김 작가는 “(삼성그룹이) 삼성생명 앞에 걸린 태극기의 의미도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 김훈 작가가 2월13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농성장을 방문해 '이어말하기' 발언회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반올림 페이스북
▲ 김훈 작가가 2월13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농성장을 방문해 '이어말하기' 발언회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반올림 페이스북

“정치하는 사람들은 인기가 떨어지면 카메라 기자들을 데리고 재래시장에 가서 떡볶이, 어묵, 순대를 집어먹고, 고등어를 주무르고, 배추값을 물어보고, 신발을 사신고, 영세상인들을 껴안고, 사진을 찍는다. 신문은 이것을 ‘민생행보’라고 쓴다.

그들의 민생행보를 전하는 TV화면에는 점포마다 전깃줄이 뒤엉켜있고, 가스배관이 보조난방기 옆을 지나가고, 프로판 개스통과 전기소켓 연탄화덕이 널려있다. 재래시장은 화재가 잦고, 불이 나면 금방 번진다. 불이 꺼지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다시 이 잿더미에 ‘민생행보‘를 나와서 울부짖는 상인의 등을 두드리며 사진을 찍는다. ‘민생행보‘가 다녀간 뒤에도 재래시장은 거듭거듭 불에 탔다.“

사회를 본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는 김 작가의 발언 도중 그가 지난 1월2일 온라인 매체 ‘라이프인’에 게재한 신년 칼럼 ‘우리는 갈 수 있다’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김 작가는 칼럼 말미에 “이제 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이 가져온 야만의 유산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청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연대된 인간의 힘으로 한걸음씩, 천천히 갈 수 밖에 없다. 생명안전시민넷은 올해 그 첫걸음을 내딛는다. 길은 멀어도 벗은 많다. 우리는 갈 수 있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한 걸음을 가면 끝까지 가는 거고, 가지 않는 것은 그 자리에 주저 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시민넷 공동대표 맡으면서 한 걸음을 했(갔)으니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갈 수 있다. 나 혼자선 갈 수 없지만 우리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반올림은 16일 기준 864일 째, 2년 4개월 가량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 △배제 없는 피해 보상 등의 의제를 두고 삼성전자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2015년 9월 조정기구의 권고안을 위배한 ‘자체 보상위원회’를 일방적으로 발족시켰다. 반올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10월 보상위원회 기준안에 따라 보상을 추진했고 반올림은 2015년 10월7일부터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