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청 등을 취재목적으로 출입하는 법조기자단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문을 공개한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에 대해 최소 1년 동안 출입을 제한하는 중징계를 논의하고 있다.

대법원 출입기자단 관계자는 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오늘 오후 서울중앙지법 출입기자단이 의결한 오마이뉴스 징계 안건을 전달받았다”며 “징계 내용은 1년 이상 법조 출입 정지로, 대법원 기자단은 논의를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법 출입기자단은 서울중앙지법 등의 기자단으로부터 올라온 안건을 최종 의결한다.

▲ 오마이뉴스가 제작해 9일 공개한 ‘공범자 이재용 vs 피해자 이재용 – 엇갈린 1·2심 판결문 전문공개’ 웹페이지 캡쳐.
▲ 오마이뉴스가 제작해 9일 공개한 ‘공범자 이재용 vs 피해자 이재용 – 엇갈린 1·2심 판결문 전문공개’ 웹페이지.

징계사유는 판결문 전문 공개 제한과 관련된 기자단 내규 위반이다. 오마이뉴스는 이재용 부회장의 1·2심 판결 핵심 쟁점을 비교·분석한 후, 9일 오전 ‘공범자 이재용 vs 피해자 이재용 – 엇갈린 1·2심 판결문 전문공개’라는 제목의 웹페이지에 분석 기사와 함께 판결문 전문을 실었다.

오마이뉴스는 “판결문은 법리(法理)의 정수다. 사건의 본질과 판단의 논리가 담겨야 한다. 이재용은 왜 석방됐는가? 모든 것은 판결문에 있다”면서 “전문을 꼼꼼히 읽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여러분의 몫”이라며 공개 취지를 밝혔다.

징계 논의는 웹페이지가 공개된 9일 오전부터 시작됐다. 내부 사정을 아는 한 기자단 소속 기자는 “판결문 전문을 올리는 것 자체가 기자단 내부 제재 대상이 된다”면서 “취재 편의를 위해 제한적으로 법원으로부터 판결문을 제공받을 수 있었고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는데 이를 위반했다는 게 징계 취지”라고 밝혔다.

대법 기자단 관계자는 “형사재판 판결문은 일정 요건을 갖춰야만 공개 가능하다”며 “이를 위반했을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어 구치소를 나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어 구치소를 나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법조기자단 내부에선 ‘알 권리 충족’과 ‘기자단 내규 위반’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형국이다. 서울중앙지법을 출입하는 한 일간지 기자는 “이번 건은 시국사건이고 1·2심 관련 쟁점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건이다. 기자들의 전달능력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판결문을 공개함으로써 알 권리를 충족시켰다고 본다”며 “나는 기자로서 공개에 찬성입장이었는데, 법조기자들이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법조를 출입하는 또 다른 기자는 “일반 시민들과 다르게 취재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출입처와의 신뢰나 기자단 내부의 신뢰를 해치는 게 우려가 될 수 있다”며 “기자단이 예상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긴 하지만 난처한 상황은 맞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판결문 공개가 내규 및 형사소송법을 위반하는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법조기자단 규약은 사법작용을 방해할 우려를 고려해 △압수수색영장 △선고 이전의 법원·헌법재판소의 판단 △선고일에서 14일이 지나지 않은 대법원 판결 등에 대한 보도를 제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사례에 적용 가능한 규정은 없다.

김종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판결문 공개 위법 사유와 관련해 “형사소송법상 판결문이 공개돼 자신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생명·신체의 안전 등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피고인은 판결문 비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이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언론·법조 등 각계 전문가들이 판결문 분석을 내놓고 있는 점을 보면 판결문을 다 구해서 봤다는 것인데, 지금 상황에선 사문화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2심 판결문은 온라인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게시되는 등 법조기자단이 공개여부를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국회 산하 사단법인 '의회정책아카데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지난 6일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이 공유 목적으로 게시됐다.

▲ 사진=의회정책아카데미 홈페이지 캡쳐.
▲ 사진=의회정책아카데미 홈페이지 캡쳐.

형사소송법 59조는 ‘소송기록의 공개로 인해 사건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생명·신체의 안전이나 생활의 평온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및 ‘소송기록의 공개로 인하여 사건관계인의 영업비밀이 현저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소송관계인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 한해 판결문 열람·복사 제한을 허용한다.

이와 관련해 조영수 민주언론시민연합 협동사무처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위법 여부는 징계건과 별개의 문제고, 기자단 룰을 어긴 점을 문제 삼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자단이 시민 알 권리보다 출입처와의 관계나 내부 룰을 더 우선시하는 관행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돼 왔다. 중요한 건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니 (기자단이)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4년 9월25일에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을 공개한 바 있다. 1심 재판부가 공직선거법 위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뜨거워졌고, 오마이뉴스는 “판결을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해설하고 비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며 판결문 전문 및 해설 자료를 웹페이지에 공개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이 당시엔 오마이뉴스에 대한 징계 논의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 관계자는 징계 논의에 대해 “징계 당사자고 아직 징계가 확정되지 않았기에 입장을 밝히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며 “최종 결과를 지켜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대법 기자단은 2월 구정 연휴가 끝난 후 오마이뉴스 징계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오마이뉴스 측은 사회적 논란이 된 판결문을 국민들에게 공개해 직접 판단할 근거를 제공하고자 한 기획의도와 해당 판결문을 법원으로부터 직접 제공받지 않았다는 소명을 기자단에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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