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의가 무너진 것인가, 법과 제도의 실패인가. 

검사가 동료검사의 성폭력 피해를 보고도 침묵하는 현실. 도대체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검찰 내에서 정의는 권력자의 장식품인가?

수사를 지휘하는 현직 검사가 TV에 출연, 범죄피해를 호소하는 황당한 현실은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법 집행의 책임자로 알려진 검사가 시민은커녕 자신의 인권조차도 지킬 수 없어 결국 대중매체에까지 나와 생방송으로 자신이 입었던 피해와 그 해결을 위해 절망스런 몸부림을 절제된 목소리로 토해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법과 제도가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얼마나 무력화 됐는지를 고발하는 울림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검찰조직과 법무부가 소수의 내부 권력자들에 의해 자정기능을 상실하고 범죄집단화 됐는가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신고율이 0.8% 밖에 되지 않는 국민의 성폭력 피해 진상조사가 얼마나 어려우며, 가해자 처벌이 얼마나 더 어려운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 서지현 검사는 1월29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법무부와 검찰 전직 고위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그날 저녁 JTBC 뉴스룸에서 인터뷰를 했다. 사진=JTBC 뉴스룸 보도 갈무리
▲ 서지현 검사는 1월29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법무부와 검찰 전직 고위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그날 저녁 JTBC 뉴스룸에서 인터뷰를 했다. 사진=JTBC 뉴스룸 보도 갈무리
서지현 검사는 법과 제도 대신에 8년 만에 JTBC ‘뉴스룸’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첫째는 저는 제가 성실히 근무만 하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고 당당하게 근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검찰 조직의 개혁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요(중략). 세 번째는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그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서 검사는 ‘시간이 검찰개혁을 이루지 못한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시청자 입장에서 일반 검사라면 ‘성폭력 피해 수사기관에 신고하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검사가 저토록 피해자가 되고도 말도 못하고 법과 제도는 막혔고 거꾸로 보복을 당하는 현실이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더 놀라운 것은 성폭력 피해자 검사가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생각했다는 점이다. 검사가 최후의 수단으로 TV에 출연, 대중을 향해 피해를 호소해야 하는 현실은 한국의 법무부와 검찰조직, 수사기관 감찰부서는 죽었다는 선언과 같다.

군대 기수문화처럼 검찰, 법원조직도 기수문화가 판을 친다. 내부 고발까지 8년이나 걸렸다는 점, 그 기간 동안 각종 인사 불이익에 시달렸다는 점도 억울한데 가해자와 그 배후 고위 인사들은 조직 내에서 권력을 누리고 승승장구했다. 이는 과거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출세만능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기수문화, 조직의 힘은 검찰 개개인의 정의감과 법치를 무력화시켰다.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서 검사는 “당시 법무부장관을 수행했던 법무부 간부 안 모 전 검사가 옆자리에 앉은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 시간 지속하는 강제 추행을 했고, 장례식장 안에 있던 동료 검사들이 이 추행 행위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어떻게 성추행 당했는지 그 악몽을 다시 끄집어내 공개하고 스스로 묘사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주위에서 피해자가 직접 나가서 이야기를 해야만 너의 진실성에 무게를 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서요. 그 이야기에 용기를 얻어서 이렇게 나오게 되었고요. ‘굉장히 내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구나’라는 자책감에 괴로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서 범죄 피해자분들께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습니다.”

▲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 연합뉴스
▲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 연합뉴스
피해를 당한 검사가 8년의 고통과 시련, 깨달음 끝에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호소였다. 이렇게 당연한 말을 검사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현실에 억장이 무너진다. 검찰과 법무부내의 우월적 위치를 남용해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울리는 갑질 문화는 법과 제도를 무력화 시키고 있다. 사회 정의를 질식시키고 있다.

공기관 대학 등에 양성평등위원회, 성폭력피해고발 창구 등이 있지만 신고율과 피해구제율이 지지부진하다. 이유가 뭘까. 법과 제도의 무능 때문이다. 현직 검사가 저렇게 당하고도 속수무책인데,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를 누가 제대로 조사하고 그 절절함을 공감해줄까.

언론도 함께 반성해야 한다. 거꾸로 ‘꽃뱀’이니 ‘꼬리를 쳤다’느니 미확인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또 다른 가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이런 가해에 동조하고 있다. 2013년 ‘여대생 청부살해사건’에서 언론은 살해당한 이대 법대생을 사건 초기 ‘미모의 여대생’ ‘꽃뱀’, ‘남성관계 복잡’ 등으로 보도해 물의를 일으켰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가해자가 가짜 진단서를 바탕으로 호화병실을 넘나들며 법과 제도를 유린할 때 이 사건은 재조명 받았다. 그때서야 피해자가 얼마나 억울하게 살해당했는지, 가해자 편에 섰던 검사, 변호사, 의사 등이 공조해 법치사회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여대생의 억울한 죽음 앞에 가해자들은 당당했다. 검사의 성폭력 앞에 가해자들은 법과 제도를 무시하며 거꾸로 보복인사조치로 공조직을 사조직화했다. 서 검사는 검찰 내에서 실제로 성폭행까지 벌어졌고, 피해자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고도의 윤리관이 요구되는 검사, 판사, 의사 등이 돈과 권력에 무너지는 현실. 그것을 감시하기 위한 감찰조직, 신고센터 역시 무너진 현실은 미디어의 힘에 의존하도록 했다.

서 검사는 왜 공영방송 KBS, MBC를 제치고 종합편성채널인 JTBC를 선택했을까. 시청자의 아픔과 호소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미디어는 권력에 장악당한 공영방송보다 여전히 가장 신뢰받는 JTBC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공영방송의 존재이유를 묻는 또 다른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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