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대표이사 박정훈)가 지난 3년간 예능·교양 프로그램에서 협찬 받은 상품권 총 49억 원 중 22억 원의 상품권이 본래 목적과 다르게 지급됐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SBS에 따르면, 지난 2016년 9월 말,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은 카메라 용역회사인 A사에 용역비 5800만원을 지급했고, 이후 10월 초 상품권 800만원을 추가 지급했다. A사는 이 용역비와 상품권 일부를 ‘동상이몽’ 제작에 참여한 카메라맨들에게 지급했고 A사는 이 중 한겨레21에 보도된 카메라맨 B씨에게는 현금 800만원과 상품권 170만원을 지급했다.

한겨레21은 지난 8일(온라인 기준) 20년차 프리랜서 촬영 감독(B씨)이 SBS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뒤, 4개월치 밀린 임금 900만원을 현금이 아닌 상품권으로 받았다고 보도했다. 보도 이후인 지난 11일 SBS는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외부 인력에게 용역 대금의 일부가 상품권으로 지급된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된 일”이라며 “정확한 진상조사와 함께 근본적인 대책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SBS 본사. 사진=연합뉴스
▲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SBS 본사. 사진=연합뉴스

SBS는 자체 조사 결과 과거에도 A사에게 상품권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SBS는 “일반인 가족의 관찰을 주로 하는 프로그램 성격 때문에 촬영 일수가 예상보다 늘어날 경우, A사와 협의해 용역 대금인 현금과 별도로 회당 평균 100만원의 상품권을 추가 지급했다”며 “A사는 B씨에게 2015년 현금 700만원 외에 상품권 600만원을 지급했다”고 했다.

반면 ‘SBS 담당 PD가 제보자를 색출하려 했다’는 내용에 대해선 부인했다. 한겨레21은 상품권 지급 보도 이후 ‘동상이몽’ 서아무개 PD가 B씨에게 전화를 걸어 제보자 색출 작업에 나섰다고 폭로했다.

SBS는 “1년 반 전의 일이고 B씨와는 직접 이 문제를 얘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담당 PD가 이를 확인하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오간 대화 내용”이라며 “언성이 높아진 상태라 담당 PD의 말이 듣기에 따라 위협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제보자를 색출하고 협박하기 위해서 한 전화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상품권 페이가 ‘관행’이었다는 점도 자체 조사 결과에서 확인됐다. SBS는 “다른 예능·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일반 출연자 사례나 장소 제공, 아이템 제보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할 상품권을 부적절하게 쓴 사실을 확인했다”며 “제작PD 한두 명 문제가 아니라 SBS 전체가 자성하고 바로잡아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SBS는 △2018년 3월부터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품권 협찬을 일절 받지 않고 △다른 부문 프로그램에서도 본 목적과 다르게 상품권이 쓰이는 것을 금지하고 △이미 상품권으로 지급된 임금은 당사자와 협의해 현금으로 지급하고 △제보자나 시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차별과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동시에 이를 위반하는 임직원에게는 책임을 묻고 △아직 조사되지 않은 사례를 지속적으로 제보받을 수 있도록 신고 센터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SBS는 ‘갑질’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SBS는 “상품권 문제와는 별개로 프로그램 제작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소위 갑질 논란에 대해 즉각적인 조사에 착수하겠다”며 “이번 상품권 부당 지급 당사자들께 사과드리며 앞으로 갑질 논란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하겠다”고 했다.

▲ SBS의 ‘상품권 지급’을 폭로한 시사 주간지 한겨레21 제1195호 표지 이야기.
▲ SBS의 ‘상품권 지급’을 폭로한 시사 주간지 한겨레21 제1195호 표지 이야기.

이날 SBS노조는 회사 발표에 대해 환영의 뜻과 함께 우려할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윤창현)는 “비록 외부 폭로로 시작되긴 했으나 오랜 세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방송가의 적폐를 SBS가 앞장서서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며 “발표문에 나타난 사측의 의지가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도록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다만 오늘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각에서는 SBS가 일부 프로그램과 담당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꼬리 자르기’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해가 갈수록 가중되는 제작비 절감 압박을 통해 일선 제작 현장의 PD들을 부당한 ‘상품권 페이’로 내몰고,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 이른바 ‘갑질’로 손실을 보전하도록 방조 또는 강요해 온 사측의 ‘성과 만능주의’ 경영 방침과 관리 책임 또한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며 “협력업체와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인간적 처우를 강요하도록 만든 방송 제작 환경 개선을 투쟁 과제로 삼고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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