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후 지난 9일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기까지 빠르게 진전된 남북관계는 우리는 물론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일순간 대화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속내는 각기 다를지 몰라도 겉으로는 대개 환영하는 모양새다.

우리 언론은 세계 각국의 표정을 해외 언론을 통해 보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미국인만큼, 남북 대화국면을 바라보는 미국 언론의 시각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유수 언론들의 사설에 우리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때마침 현지시간으로 지난 3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서 남북대화 국면에 대한 사설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At last, some good news on North Korea’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고, 뉴욕타임스는 ‘Koreans Turn Down the Volume’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그런데 두 사설을 다룬 한국 언론 보도가 정반대의 취지로 번역을 해서 의아함을 자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합뉴스와 뉴스1 보도인데, 연합뉴스는 미국 언론들이 ‘환영한다’는 취지로 보도했고, 뉴스1은 미국 언론들이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어느 것이 맞을까? 부족해 보이는 것은 뉴스1 보도다. 뉴스1은 워싱턴포스트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말했던 대화에 대한 희망을 불러오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이러한 외교(남북대화를 의미)는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야기하는 위기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을 주도하긴 힘들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 사설. 사진=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워싱턴포스트 사설. 사진=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뉴스1은 그 뒤에 붙은 구절의 번역을 뺐다. 워싱턴포스트는 해당 문장 뒤에 “But it should be welcomed as a chance to reduce tensions and prevent a slide toward war.”, 즉 “하지만 이것은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으로 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기회로 환영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 구절이 번역에 없다.

뉴스1은 이어 워싱턴포스트가 “북한이 조만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진지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며 “그래서 미국 정부가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는 것에 회의적인 것이란 설명”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역에 가까워보인다. 해당 구절의 원문은 “In truth, it is most unlikely that the Kim regime will agree anytime soon to give up its nuclear weapons or even seriously discuss that possibility. Ultimately, the elimination of the North Korean threat will probably require regime change, which the United States should seek to promote by nonmilitary means. But diplomacy could lower tensions and perhaps eventually advance some important interim measures such as a freeze on further nuclear and missile testing by Pyongyang”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거나 이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할 가능성은 없지만 외교는 긴장을 낮추고,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의 동결과 같은 몇몇 중요한 잠정적인 방법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보는 편이 낫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해 보인다.

또한 뉴스1은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핵 단추’ 트윗을 부주의하게 날리기 전에 했던 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신년사를 두고 “아마도 좋은 뉴스도 되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두고 보자!”라고 했다고 번역했다. 이 번역은 문장 자체가 이상한데, 사실 그 앞에 나온 문장도 번역에서 삭제됐다.

이 원문은 “That’s why the Trump administration is wrong to treat the new dialogue skeptically, as the State Department did this week, or to reject anything short of maximal results, as did U.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Nikki Haley, who said “we won’t take any of the talks seriously if they don’t do something to ban all nuclear weapons in North Korea.” The best approach is to keep seeking to raise the pressure on the Kim regime through sanctions and other economic pressures, while encouraging short-term deals to lower tensions — and avoiding pointless provocations. Before his reckless tweet about his “Button,” Mr. Trump struck a more appropriate note: “Perhaps that is good news, perhaps not — we will see!”다.

번역해보면 “이것이 바로 이번 주 국무부처럼 트럼프 정부가 새로운 대화를 회의적으로 다루는 잘못된 이유”라며 “(중략) 최선의 접근법은 제재와 다른 경제적 압력을 통해 계속해서 김정일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한편, 단기간의 협상을 장려하고 무의미한 도발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뉴스1의 보도는 워싱턴포스트가 말한 여러 우려점도 있지만 대화는 의미 있고 환영할만하다는 부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부분을 편집한 셈이다.

뉴욕타임스 사설. 사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뉴욕타임스 사설. 사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아울러 뉴스1은 뉴욕타임스 보도 역시 워싱턴 포스트와 비슷하다며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과 결과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경고로도 들린다”고 해석했다. 이 번역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는 “문재인 대통령이 마치 짜증내고 있는 아이를 어른이 달래려 하듯 2년 만에 끊어진 남북 직통 연락채널을 복원하는 등의 노력을 보였지만 이것이 북한이 평화적으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 속도를 늦출 것이란 희망은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은 늘 한국을 최고의 상대(chief adversary)인 미국의 하수인(lackey)으로 간주해 왔고, 대화 제안도 남한을 통해 미국이 팽팽하게 올려둔 긴장을 해소하려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 사설은 전혀 다른 분위기다. 기자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사설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와 문재인 대통령을 비교하며 문 대통령을 향해 “어린 아이가 떼를 쓰는 동안 한 성인이 지능적인 대화를 하듯이 거의 2년 전 중단한 북한과의 직접 접촉을 재개하려고 했다”며 “이는 최소한 북한의 핵무기 위기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의 빛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트럼프가 간과하고 있는 인내심과 겸손함을 요구하는 움직임”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아울러 뉴욕타임스 사설에는 “문 대통령은 재빨리 (평창) 개막식을 이용해 고위급 협상가들이 다음 주 화요일(9일) 판문점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고, 북한은 수요일(3일)에 비무장 지대에 핫라인을 재개하자는 남한의 제안에 동의함으로써 긴장이 고조될 경우 양측이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통신 채널을 복원했다”며 “트럼프와 김정은의 위협이 지역 간 긴장을 촉발시키고 있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필요성은 지금보다 더 분명해 진 적이 없다”고 전했다. 남북대화에 분명한 찬성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뉴스1은 또한 “북한과 남한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단된 한반도에 3만명 가까운 군인을 보내 보호하고 있는 미국도 해법을 도출하는 중심에 있어야 하며 동맹국(미국을 의미)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며 “한국이 올림픽 기간 동안 합동 군사훈련 중단을 미국 측에 요청한 것은 말이 되지만, 그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때 결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가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뉘앙스가 전혀 다르며, 편집된 부분도 있다. 연합뉴스와 대비해보면 편집된 부분은 남북대화로 인해 한국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이나 제재 불참처럼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할 수 있다는 일부 우려도 소개한 뒤에 나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Still, dialogue is a risk worth taking)”는 부분이다.

결국 뉴스1의 번역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몇몇 우려점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는 환영할 만하다고 밝힌 부분에서 뒷부분을 쏙 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미디어오늘에 제보한 한 시민은 “뉴스1을 보면 굉장히 튄다”며 “미국에서 부정적 뉘앙스로 보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하지 않은 말을 쓴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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