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2018년 신년기자회견이 “봉숭아 학당처럼 즐거웠다”고 한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 문재인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해 참석했던 기자들의 반응을 미디어오늘은 이렇게 전했다.

일방통행식 ‘불도저’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역시 일방통행식 ‘탄핵’ 박근혜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스타일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이들은 질문자를 미리 정하고 답변도 미리 정해두는 등 사전각본을 철저하게 마련해두고 마치 자유토론이라도 하는 양 연출을 했을 뿐이다.

외신도 달라진 문재인 대통령 기자회견방식에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다. 워싱턴포스트 애나 파이필드 도쿄 지국장이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한 소감을 소셜미디어(SNS)에 이렇게 남겼다.

“기자회견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지다니 놀랍다, 75분을 넘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모든 기자에게 열려 있다, 환영할 만한 발전… 사전에 질문할 기자를 정해놓지도 않았다, 이전 정부나 미국 백악관과도 다르다.”

▲ 워싱턴포스트 애나 파이필드 도쿄 지국장
▲ 워싱턴포스트 애나 파이필드 도쿄 지국장
2016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당시 참석 통보를 받지 못했던 파이필드 기자는 다른 외신 기자와 함께 당시 회견을 ‘연극’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을 제외하고는 외신은 철저히 배제됐다.

달라진 형식은 달라진 내용을 창출했다. 외신의 찬사는 이런 점을 고려한 평가가 아닐까. 문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면서 미래 대통령의 다섯 가지 자격조건을 짚어봤다.

첫째, 지도자의 겸손이다.

지도자의 겸손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헌법에 적어놓은 ‘주권재민’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국민을 섬긴다는 자세가 가장 근본이 된다. 대통령 기자회견 때 외신배제, 질문권 차단, 사전각본 등은 권위주의식 통제방식으로 이는 국민을 섬기는 겸손한 태도가 아니다. 국민과 역사 앞에 항상 겸손하고 이것이 기자회견 형식과 내용으로 나타나야 한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 형식과 내용에서 겸손한 리더십을 성공적으로 보여 호평을 받았다.

둘째, 지도자의 자신감이다.

문 대통령은 국내외 매스컴이 집중되는 긴장의 75분 동안 소신껏 지도자의 철학을 드러냈다. 자신감은 철저한 준비와 자기공부에서 나온다. 대통령이 되면 만나야 할 사람, 결정해야 할 현안 등이 너무 많아 촌음을 허비할 시간이 없다. 공부없는 지도자는 그래서 망한다. 자신없는 대통령, 뭔가 숨겨야하는 지도자, 공부 안하는 정치인은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거나 질문을 두려워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자신감에서 나온다.

▲ 1월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청와대
▲ 1월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청와대
셋째, 지도자의 정직성이다.

지도자가 뭔가 숨기거나 뭔가 속이고 있는 듯하면 신뢰 상실로 이어지는 법이다. 가식과 위장으로 포장된 지도자는 자유토론을 두려워하며 기자들과 공개접촉을 꺼려한다. 정상적인 언론은 지도자의 정직성을 감시, 견제하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질문자를 사전에 정하지 않은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민 앞에 모든 것을 정직하게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넷째, 지도자의 소통력이다.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은 국민 앞에 향후 1년간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갈 것인지 진솔하게 보고하는 소통의 장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표현력이 전제돼야 한다. 소통력은 자유로운 질의응답에서 나온다. 자기표현에 심각한 약점을 가진 박 전대통령은 ‘박근혜 번역기’가 등장할 정도로 말실수,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많았다. 이 전대통령은 ‘낭독의 명수’였다. ‘국민과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국민에게 특유의 목소리로 원고를 일방적으로 낭독했다. 일방통행식 낭독이나 제멋대로 화법은 소통의 적이다. 정직과 신뢰를 전제로 소통은 이루어지는 법이다. 문 대통령 소통력이 돋보이는 건, 바로 이전 대통령의 위장술에 대한 환멸이 가져온 반사효과 탓도 있으리라. 막말이나 하며 소통할 줄 모르는 정치인에게 주는 이번 기자회견의 교훈이 가볍지 않다.

마지막으로 국민에 대한 사랑이다.

국가지도자는 사회적 약자의 고민과 아픔이 어디에 있는지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국민사랑을 외치지만 권력을 잡고나면 측근사랑만 돋보이고 국민은 멀어지는 법이다. 이전 대통령의 측근사랑(?)은 자신만 빼고 모두 감방신세를 져야 할 정도였다. 과욕을 부려 국정원이라는 국가 공조직을 동원해 부정선거에 개입하도록 댓글부대, 사이버사령부를 만들어 더 많은 측근들이 감옥에 가도록 만들었다. 박 전대통령은 국정원으로부터 현금을 상납 받는 식으로 나랏돈을 개념없이 관행이란 이름으로 받아 측근들을 망쳤다. 이들의 새해 기자회견은 알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일자리없는 젊은이들의 심각한 상황, 비정규직 등 약자들에 대한 배려의 정치철학을 드러냈다.

▲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2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2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정치인은 자신의 구체적 말과 행동으로 평가받는 법이다. 새해 기자회견의 형식과 내용은 대통령 평가의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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