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학당 같았다. 즐거웠다.”

대통령이 질문할 기자를 직접 지명하는 형식으로 바뀐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 사이에서 나온 반응이다.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이 확 바뀌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질문권을 얻은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질문 내용도 다채로웠다.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말한 “자유롭게 질문하고, 자유롭게 답변한다”는 신년기자회견 취지를 잘 살려냈다는 평가다.

기자회견은 시작 전부터 뜨거운 경쟁이 펼쳐졌다.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볼 수 있는 자리에 앉기 위해서다. 기자들은 오전 9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 5분 거리 기자회견 장소인 영빈관 4층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8시 40분경부터 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영빈관 입구에 도착해서 검문검색대를 통과한 뒤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역대 최초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청와대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지명을 당하면 질문은 한 가지만 해달라고 특별당부했다. 골고루 질문 기회를 돌아가게 하겠다는 취지의 설명이었지만 막상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기자들은 질문권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청와대
▲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0분 동안 신년사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 시작을 알리자 외신을 포함한 250여명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첫 지명을 당한 기자는 뉴스1 조소영 기자. 기자들은 부럽다는 듯 탄식을 쏟아냈다.

바로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저기 종이 드신 분”이라며 디트뉴스24 류재민 기자를 질문자로 지명했다. 류 기자는 회견 전날 질문권 지명을 받기 위해 고심하다 눈에 띄는 손팻말을 만들기로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류 기자는 “충청대표 디트뉴스 대통령께 질문 있습니다”라고 적은 A3용지를 흔들었고 전략은 통했다.

류 기자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기자회견 당시 임명된 지 두 달 밖에 안된 정연국 대변인이 기자 이름을 호명해서 질문자를 정했는데, 알아보니 다 질문자들이 정해져 있었더라”라며 “각본이 없었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 때 기자회견은 거짓말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정말 말그대로 자연스운 것 같다. 이런 분위기 속 지명을 받기 위해 퍼포먼스도 괜찮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기자는 지명을 당하고 난 뒤 질문을 시작하기 전 “보라색 옷을 입고 온 게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눈에 띄는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어지다보니 기존 방식에서 보였던 매체편중현상이 반대로 나타나기도 했다.

윤영찬 수석은 기자회견 시작 전 질문권이 중앙지 등 메이저 언론사에 몰릴 경우 직권으로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지상파 방송사 기자들이 질문을 얻지 못하면서 기자회견 마지막 즈음엔 반대로 지상파 기자에게 질문권을 배려하기까지 했다. 각본 없이 기자회견이 진행되면서 과거 주요 언론사에만 몰렸던 질문 기회도 사라진 것이다. 100일 기자회견 당시 질문을 했던 기자가 다시 질문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러자 지명을 못 받은 기자들은 “그러면 안되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울산매일 조혜정 기자는 질문권을 얻기 위해 “대통령님,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외쳤다. 문 대통령이 조 기자가 앉은 자리 쪽을 쳐다보자 대통령 옆에 자리한 청와대 참모진이 조 기자를 가리키기도 했다. 조 기자는 끝내 질문을 얻어 ‘대통령이 약속하신 상시 브리핑 제도를 도입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고, 문 대통령은 “오늘처럼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답했다.

▲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청와대
▲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청와대

시간이 갈수록 질문 기회가 적어지면서 수첩을 흔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드는 기자들도 보였다. 질문을 얻지 못한 기자들은 아쉬움을 달래면서 ‘선택받지 못한 질문’들을 취합해 서면으로 국민소통수석실에 제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질문자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바뀐 이번 기자회견에 대해 우선 신선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기자는 “현안이 많기 때문에 대통령 기자회견 자체는 분위기가 딱딱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기자회견은 형식이 바뀌면서 활기차고 신선한 것 같다. 확실히 과거와는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다만 사전 조율 없이 진행되다 보니 질문 내용이 쏠리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경제 분야 질문이 적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보협 한겨레 기자는 “질문 쏠림 현상 같은 게 보였다. 경제 분야 질문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기자는 “100일 기자회견 때도 자유질문을 받았지만 총간사가 첫 발언을 하도록 배려하는 약간의 약속 같은 게 있었고 윤영찬 수석이 질문자를 지명하다보니 지방지, 외신 등을 골고루 배치하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자유롭게 해서 다양한 질문들이 나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수시 브리핑제 도입과 관련한 질문도 나왔는데 대통령이 기자들 얼굴도 알고 교감을 늘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정치‧북핵‧개헌‧안보 분야에 질문이 쏠리면서 청소년 문제와 일자리 대책, 여성 정책, 광화문 시대 소통 공약 등 국민체감형 질문도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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