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로부터 파견법 위반 확인을 받은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검찰이 “불법파견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 수사 검사를 고소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경북 구미 산단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이하 아사히글라스)의 사내하청업체 GTS  노동자들로 이뤄진 아사히비정규직노조(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9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검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담당 검사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고소하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근거해 수사하지 않았고 △고소인·참고인에 대한 추가 조사 및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않았으며 △증거를 취사선택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것이 고소 요지다.

▲ 아사히비정규직노조(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9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검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담당 검사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고소하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진=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 아사히비정규직노조(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9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검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담당 검사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고소하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진=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아사히비정규직노조 차헌호 지회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검찰 불기소의견서 논리대로라면 불법파견이 버젓이 이뤄지는 한국 제조업 현장의 어떤 것에도 불법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하청업체는 원청의 지시·판단없이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었는데 그런 진술이나 증거는 다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가 검찰 처분에 주목했던 이유는 고용노동부가 이미 지난해 8월 아사히글라스에 하청업체 GTS 소속 비정규직 178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원청의 불법파견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비정규직 노조가 아사히글라스 및 GTS를 불법 파견 혐의로 고용노동청에 고발한 지 2년 만의 결정이었다.

노동계는 또한 사법부가 제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지위를 확인하는 취지의 판결을 잇달아 내리고 있는 점을 주목했다. 대법원은 2015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 사건에서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이들이 원청 현대자동차의 지휘·명령을 받는 노동자임을 확인했다.

불법 파견을 가르는 본질은 원청이 자신이 고용하지 않은 직원에게 지휘·명령을 내렸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원·하청 노동자들이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공동 작업을 하는 지 △원청이 하청업체의 채용, 교육 및 훈련, 휴게 및 휴가, 근태 점검 등을 결정하는지 △하청업체 업무가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인지 △하청업체의 전문성·기술이 있는지 등의 기준을 따진 것이다.

2016년 12월엔 동양시멘트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동일한 사실을 확인받았다. 아사히글라스 또한 현대자동차 및 동양시멘트 고용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검찰의 혐의 인정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노조 주장 입증할 증거 없다” vs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노조는 검찰이 형식적인 해석에 치우쳤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고용노동청 조사에서 “제품외관검사 작업 시 원청 관리자의 직접 지시를 받았다” “단도리업무는 그 자체가 원청 정규직 조장지시대로 이루어진다” “정사업무는 기본적으로 원청이 작성한 작업지시서, 작업변경지시서에 따라 이뤄진다” 등의 증언을 내놨다.

검찰은 “원청이 하청의 작업 배치나 변경에 관여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불기소결정서에는 △원·하청 관리자가 모두 ‘원청의 개별적·구체적 지시가 없었다’고 말했고 △고발인이 객관적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으며 △원청이 생산목표치를 제시해도 이를 구체적인 관여로는 볼 수 없다는 점 등이 적혀 있다.

▲ 2017년 4월14일 오후 2시경 오수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이 동양시멘트지부,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콜텍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투쟁위원회,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등과 함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광화문 인근 광고탑에서 고공 단식농성에 돌입했다.ⓒ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제공
▲ 2017년 4월14일 오후 2시경 오수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이 동양시멘트지부,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콜텍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투쟁위원회,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등과 함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광화문 인근 광고탑에서 고공 단식농성에 돌입했다.ⓒ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제공

노조는 또한 고용노동청 조사에서 원·하청 노동자들이 하나의 작업 집단처럼 일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상근업무와 단도리업무는 피고 정규직 관리자나 근로자들이 시키는대로 온갖 일을 하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면서 ”정사작업 역시 원청 정규직이 맡은 전후 공정과 긴밀하게 연동됐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원청과 하청의 업무가 구분돼 있다거나 하청업체가 맡은 업무가 ‘부수적 업무’라는 이유로 노조 측 주장을 기각했다. 원청 관리자가 부수적인 일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하더라도 “일을 하기 위해 협동 작업을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 원청의 지시권을 벗어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지난 2015년 “KTX 여승무원은 한국철도공사 직원이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원 논리와 같다. 대법원은 △철도공사 정규직의 주업무인 안전관리와 여승무원의 부수적 업무가 구분돼있고 △철도유통(하청업체)은 계약에 따라 승객서비스업무를 독자적으로 운영했으며 △철도유통이 직원들을 직접 고용·관리·감독했다는 점을 들었다. 승무원 측은 당시 “안전업무와 승객서비스업무가 어떻게 구분가능하냐”고 비판했다.

원청 관리자가 하청 노동자가 작업한 제품에 하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대해 검찰은 “도급인(원청)의 검수권 행사의 일환”으로 간주했다. 반면 노조는 “(업무평가 시) 근무일지를 작성하고 근무가 끝나면 정규직 관리자가 하루 근무일지를 모두 복사해 관리했다” “작업 실수로 인한 폐기처분량까지 일지에 기재했다” 등의 증언을 제시하며 원청의 지휘·감독권 행사를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근태기록도 원청이 관리했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원청에 GTS 직원의 출퇴근 기록 제공한 적 없고 제출 요구도 받은 적 없다’는 보안업체 직원의 진술을 채택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불기소결정서에 “노조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적었다. 차 지회장은 “검찰은 압수수색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논란은 지난 2015년 5월 경부터 시작됐다. 아사히글라스는 2015년 5월 하청업체 중 한 곳인 GTS에 노조가 설립되자 한 달 마네 도급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당시부터 원청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불법파견 문제에 대응해왔다.

노조는 2015년 7월21일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에 아사히글라스를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등 혐의로 고소했다. 1년 이상 근로감독을 진행한 구미지청은 고소가 접수된 지 2년이 지난 지난해 8월 아사히글라스에 하청 노동자 178명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렸고 불법파견에 대한 과태료 17억8천만 원도 부과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비정규직노조가 아사히글라스 및 GTS, 각 대표이사를 파견법 위반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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