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가 오는 11일 새로운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론칭한다. 제목은 ‘세상 끝의 사랑’, 각종 재난과 사회적 참사로 인해 가족이 희생된 유족들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이다. 특이한 점은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역시 재난 참사 희생자의 가족이 맡는다는 점이다. 재난 참사로 가족을 잃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다.

CBS 측은 “각기 고립되어 있는 유족들이 만나서 서로의 속사정을 알고 나아가 또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으로 참담한 고통을 겪게 될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코자 한다”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진행을 맡은 사람은 바로, 세월호 참사로 딸 예은이를 잃은 유경근씨다.

미디어오늘은 이 프로그램을 맡은 정혜윤 CBS PD와 8일 오후 전화로 인터뷰했다. 정 PD는 “모든 선한 세력이 당신을 돕도록 하겠다”는 영화 ‘반지의 제왕’ 속 대사로 이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유족들을 향해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거”라는 인면수심의 말을 한 사람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현실, 진상을 규명해달라며 단식에 돌입한 사람들 옆에서 치킨·피자를 시켜먹던 자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유족과 유족 간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선한 마음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정혜윤 CBS PD. 사진=정혜윤 PD 제공
정혜윤 CBS PD. 사진=정혜윤 PD 제공
‘선한 마음’은 무엇일까? 정혜윤 PD는 “세월호 유족들의 말이 참사 1년을 경과한 후부터 많이 바뀌었다”며 “슬프고 안타깝고 억울하다는 마음에서, 비록 우리 아이들은 잃었지만 아직 다른 아이들은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 자신들이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기에 이를 바꾸기 위해 기여와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정 PD는 “‘너도 한 번 당해봐라’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당신들은 이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역지사지’라는 유족도 있었는데, 자기가 이해를 받고 싶어도 자식을 세월호에서 잃은 슬픔을 경험해보라는 말을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입장이 되지 말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왜 유경근씨를 진행자로 선택했을까? 정혜윤 PD는 “사회적 참사를 당한 분들 중 어떤 분들은 수도 없이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다스려 생각을 만들고 행동에 나선다”며 “그런 분들은 아무것도 겪지 않은 사람보다 마음이 훨씬 멀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경근 선생님은 내가 보기에 마음이 가장 멀리 간 사람”이라며 “그는 언젠가 딸을 만나러갔을 때, 딸과 당당하게 긴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삶을 살아가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정 PD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유족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을,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 똑같이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1차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 PD는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 사람은 저렇게 용기를 내는구나,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8일 녹음한 방송에 출연한 삼풍백화점 참사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 현장을 못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 눈물이 나와서 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고, 세월호 유족도 “제천 화재 영상을 못 봤다. 그 안에 갇힌 살기 위한 필사적인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정 PD는 전했다. 정 PD는 “그러한 공감, 서로 길게 말하지 않아도 내 말을 잘 이해하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의 참사 유가족들로 구성된 단체 팬탁(FENVAC)이 참사 피해자들이 연대해 재난 피해 가족들을 돕고 참사의 원인을 고쳐나가는데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유족들도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 PD의 생각이다.

그런 취지에서, 이 프로그램을 라디오가 아닌 팟캐스트로 제작했다고 정혜윤 PD는 설명했다. 정 PD는 “라디오로 하게 되면 방송 편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시간이 정해져 있다”며 “유족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실컷 말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2017년 11월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가결되자 눈물을 흘렸다. 사진=민중의소리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2017년 11월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가결되자 눈물을 흘렸다. 사진=민중의소리
정 PD에 따르면 이 방송은 오는 4월16일, 세월호 참사 4주기까지만 이어진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참사 현장은 많지만 사실 유족들이 당시의 기억을 꺼내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기 때문에 에피소드의 수가 짧다. 정 PD는 “세월이 흘러도 슬픔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며 “유족들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엄청난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때도 유족들은 그때의 경험을 얘기하고 앓아누웠다”고 말했다.

정 PD는 “모든 유족들에게 최악은 가족이 어떻게 죽었을까라는 상상”이라며 “이 방송을 통해 제일하기 싫은 상상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시는 분들은 정말 마음의 큰 준비를 한 것”이라며 “기자회견 하고 시위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용기를 내고 또 내고, 반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이 방송 출연을 결심하는 것은 “또 다른 참사가 났을 때, 그 마음이 어떨까를 알기 때문에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사람들은 시간이 흘렀으니 잊어라, 그만 생각하고 살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 하는데, 안 잊혀지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제목이 왜 ‘세상 끝의 사랑’일까? 정 PD는 “절망까지 갔으면 사회로, 삶으로 못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다른 마음으로 돌아온다”며 “끝까지 가본자만이 낼 수 있는 용기와 사랑에 관한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 인생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져서 다른데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며 “가족들이 죽을 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뭐라도 해야 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끝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정 PD는 “하지만 비장하기만 한 방송은 아니”라며 “첫 방송은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씨가 나왔는데, 본인은 자신이 슬프다는 얘기를 안 한다고 한다. 왜냐면 형이 죽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름 사람도 슬플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는 슬프지 않다고 하더라”며 “자기가 슬픈 순간조차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유족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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