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에 맞았으니 핸들링(반칙)이죠!”
“아니에요. 어깨에 맞았어요.”
동네 어린이집 운동회에서 미니축구 경기 도중 아빠들끼리 실랑이가 벌어졌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멀뚱멀뚱 아빠들의 말다툼을 지켜봐야했고 선생님들은 난감해 하면서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평소에 우리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가르쳤던 나도 ‘억울한 상황’이 되니 아이들 앞인데도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있었다. 누구는 한낱 공놀이에 불과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규칙’과 ‘공정함’에 민감하다. ‘규칙’이 ‘공정’하게 지켜지지 않은 경기는 스포츠로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청와대는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보도에 관여했다. 국정원도 보도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그들은 공영방송 KBS에 대한 사회적 통념적 '규칙'을 무너뜨렸고 실정법까지 위반하며 '공정함'을 짓밟아 왔다. 페어플레이 정신은 기대하기 힘들었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루어지는 경기는 약자와 소외된 자들보다는 권력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88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또한 북한의 참가 가능성이 높아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국가적 스포츠 행사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방송은 수신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 KBS의 책무라고 볼 수 있다. 스포츠 제작자 입장에서도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방송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이다. 이런 중요한 방송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시청자분들께 송구해 하면서도 KBS 스포츠국이 파업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또 있다.
1987년 6월 10일은 6월 항쟁이 시작된 날이다. 또한 이 날은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가 개막한 날이기도 하다. KBS는 이 날 ‘독재타도’를 외치던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대한민국과 이집트대표팀의 축구경기를 방송했다. 2008년 8월 8일은 KBS에 사복경찰이 들어와 당시 사장의 불법적 해임에 반대하는 KBS 직원들을 끌어내며 언론자유를 유린한 날이다. 동시에 이 날은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이었다. KBS 스포츠국은 이 날 하루 종일 올림픽 방송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감대는 팀워크로 더 강해진다.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에는 피디와 기자 외에도 카메라, 엔지니어, 컴퓨터 그래픽(CG),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인원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팀워크는 필수다. 팀워크는 동료애를 바탕으로 하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동료의 올바른 생각을 지지하고 어려운 일에는 손을 걷어붙이고 함께 한다. 파업기간동안 이루어졌던 광화문에서의 24시간 조합원 릴레이 발언을 통해 그동안 쌓아온 팀워크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차가운 겨울 새벽시간을 나누어 메워야 하는 릴레이 발언. 응원하기 위해 발언자보다 훨씬 많은 동료들이 찾아와 시간을 대신 채우며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다.
마이너스 통장이 한도에 다다르고 추운겨울 찬 바닥에 앉아있지만 계속해서 싸워갈 수 있는 이유는 올바른 일을 사랑하는 동료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파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