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31일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실종선원 가족들은 지난해 5월 10일, 당시 막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실종선원 수색을 촉구하는 서한문을 1호 민원으로 청와대에 전달했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들은 실종선원들의 생사를 모른 채 길 위에서 수색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2일 청와대 영빈관 2층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한 3부 요인, 각 정당 대표, 청와대 관계자들을 비롯해 애국지사와 예술가, 경제인, 다양한 이유로 특별히 초청된 시민 등 246명이 모인 가운데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오찬을 겸한 인사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영빈관 앞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했는데 그때 영빈관 좌우에는 각각 ‘나라답게’, ‘정의롭게’ 문구가 적힌 세로 현수막이 걸렸다.

신년인사회가 끝나고 오후 2시, 영빈관에 내걸린 현수막이 잘 보이는 청와대 건너편, 분수대 앞에서 스텔라데이지호 가족·시민대책위가 실종선원 수색과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0만인 국민서명지를 2018년 첫 민원으로 청와대에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지난 1월 2일 오후 2시께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스텔라데이지호 가족시민대책위는 실종선원 수색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0만국민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1월 2일 오후 2시께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스텔라데이지호 가족시민대책위는 실종선원 수색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0만국민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허영주 가족대책위 공동대표(실종선원 2등항해사 허재용 씨 누나)가 읽은 ‘문재인 대통령께 보내는 서한문’에서 가족들은 “그간 저희는 희망고문 속에서 매일을 힘겹게 이어왔습니다. 칠순의 부모님들은 실종선원에 대한 재수색을 촉구하기 위해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던 한여름을 거쳐 회오리 눈바람이 몰아치는 오늘까지 매일 광화문에서 8시간 이상 눈물로 서명을 받았고 이에 10만이 넘는 국민들이 호응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정부에서는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주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족·시민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 해군이 발견했던 구명벌의 실체를 밝혀줄 것, 심해수색장비를 투입하여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것, 선사 폴라리스쉬핑과 박근혜 정부의 초기 대응과 성급한 수색 종료에 대해 수사할 것 등을 촉구했다.

가족·시민대책위는 “대통령님 취임 1호 민원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입니다. 지난 5월 1일 여의도 한국노총 앞에서 “당선되면 스텔라데이지호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달라”는 가족의 애원에 대통령님께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저희는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말씀에 대한 믿음 하나로 버티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영흥도 낚시배 사건에 대해‘국가책임’을 말씀하셨을 때, 저희 가족들은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님의 굳은 의지에 감동했습니다. 황교안 권한대행체제 하의 소극적이고 무능한 대처 때문에 여태껏 피눈물 흘리고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도 대통령님의 가슴 안에 포용해주십시오.”라고 부르짖었다.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영빈관에 내걸린 ‘나라답게, 정의롭게’ 현수막은 매서운 겨울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 청와대 영빈관 앞 기념촬영 단상이 철거되고 있다. '정의롭게' 현수막이 보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 청와대 영빈관 앞 기념촬영 단상이 철거되고 있다. '정의롭게' 현수막이 보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다음은 실종선원 가족들이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서한문 전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님께

대통령께서 취임하시던 5월 10일, 청와대 1호 서한문을 전달

했던 저희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이 2018년 새해

첫 서한문을 다시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저희는 희망고문 속에서 매일을 힘겹게 이어왔습니다.

칠순의 부모님들은 실종선원에 대한 재수색을 촉구하기 위해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던 한여름을 지나 회오리 눈바람이 몰아

치는 오늘까지 매일 광화문에서 8시간 이상 눈물로 서명을 받

았고 이에 10만이 넘는 국민들이 호응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정부에서는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9개월째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가족들의 심경을

널리 헤아려 주시어 부디 아래 두가지 사항을 조속히 시행해

주십시오.

1. 미 해군이 발견했던 구명벌의 실체를 밝혀주십시오.

우루과이 MRCC(해난구조센터)의 공문에 의하면 4월 9일 미국

P-8 초계기가 구명벌(yellow-orange raft)을 발견했고, 4월 10일

오전 외교부는 미국으로부터 그 사진을 받아 가족들에게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10일 오후, ㈜폴라리스 쉬핑은 ‘구명벌이

아니라 기름띠로 확인됐다’는 것이 공식 발표라면서 언론에

제보했고, 언론사들은 정부에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일제히 그 기사를 확정 보도했습니다. 선사의 의도된 언론플레이로 인해 구명벌이 기름띠로 둔갑해 버린 것입니다.

미 해군에 의하면 P-8 초계기가 착륙한 후 ‘closer inspection'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저희에게 그 ‘closer inspection'의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시켜 주십시오.

실종선원 가족들은 남대서양 어디에선가 미해군이 발견했던

구명벌이 떠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부디 가족

들의 애타는 기다림을 헤아려주시어 미 해군이 발견했던

구명벌의 실체를 꼭 밝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를 회수해 주십시오.

심해수색장비를 투입하여 블랙박스를 회수하고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어 제3의 세월호, 제2의 스텔라 데이지호를 막

아주십시오.

스텔라데이지호의 사고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언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추측만 난무한 상황에서 선사 ㈜폴라

리스 쉬핑의 대표이사는 공공연히 선원들이 황천항해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고원인을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블랙박스를 회수해야

합니다. 자동차 사고가 날 경우 블랙박스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적인 절차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선박 사고의 경우 블랙

박스를 회수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선박이나 비행기 침몰 시 심해수색장비를 투입하여 블랙박스를

회수하고 사고원인을 명확히 밝히는 것은 외국에서는 당연한

절차입니다.

2009년 대서양에서 찾아낸 에어프랑스 447기의 블랙박스는

항공안전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단초가 되었고, 2016년 미국

화물선 엘파로호의 블랙박스는 사고 당시 상황을 완벽하게

확인하고 침몰원인을 밝혀내게끔 했습니다.

실종선원 가족들은 지난 3개월간 국회에 매일 출근을 하며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장비 임차 투입 예산 50억원이 예결위에 상정되었습

니다. 그러나 여야의원들이 합의한 이 예산안은 정부와의 최종

협상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었습니다.

스텔라 데이지호와 똑같은 유조선을 개조한 화물선이 여전히 국내

에서 27척이나 버젓이 운항 중이며, 탑승선원 천여 명의 안전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전세계 유조선을 개조한 화물선 중 첫 침몰사고였던 스텔라

데이지호의 사례를 거울삼아 사고원인을 밝혀내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블랙박스 회수가 필수

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더 큰 희생과 비용을 감내하는 결정은 얼핏 무모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비합리적일지 모를 결정 덕분에 국민들은

국가를 믿고 의지하며 충성하게 됩니다. 국가의 존재 이유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대통령님께서 만드시는 새로운 대한민국에서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 가치있는 존재로 존중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번에 선례를 세워주십시오. 그래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모범을 보여주십시오.

대통령님 취임 1호 민원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

입니다. 지난 5월 1일 여의도 한국노총 앞에서 “당선되면 스

텔라데이지호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달라”는 가족의 애원

에 대통령님께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저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말씀에 대한 믿음 하나로 버티고 있습

니다.

대통령님께서 영흥도 낚시배 사건에 대해‘국가책임’을 말

씀하셨을 때, 저희 가족들은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님의 굳은

의지에 감동했습니다.

황교안 권한대행체제 하의 소극적이고 무능한 대처 때문에

여태껏 피눈물 흘리고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도

대통령님의 가슴 안에 포용해주십시오.

2018.01.02.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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