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검찰 소환조사와 3번의 영창 청구 끝에 구속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그의 구속을 결정지은 건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을 사찰한 혐의였다. 그리고 우 전 수석이 자신의 비위를 감찰하던 이 전 감찰관을 감찰 누설 혐의로 ‘찍어내기’에 동원한 곳은 국가정보원과 공영방송 MBC였다.

MBC는 지난 27일 뉴스데스크에서 지난 정권에서 MBC 뉴스가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리포트를 통해 “이석수 감찰관의 통화내역을 MBC가 어떻게 입수했는지, 이 과정에 국가기관의 개입은 없었는지, 이른바 ‘청와대 청부보도’ 의혹에 대해 내부 조사를 통해 밝힐 예정”이라고 전했다.

MBC 관계자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아직 구체적으로 조사팀이 꾸려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최승호 사장의 공약대로 과거 청산 노사공동위원회가 구성될 것”이라며 “우 전 수석과 통화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문호철 전 보도국장을 포함해 당시 청와대 반장이던 박성준 기자 등 정치부 수뇌부 모두 조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MBC 내부 조사기구가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조사의 한계는 있을 수 있지만 MBC 관련자들이 회사 폰을 사용하고 있어 통화 내역 등을 확보하면 어떤 경위로, 누가 개입돼 이석수 감찰 누설 보도를 결정했는지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7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지난 27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앞서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은 우 전 수석이 이 전 감찰관을 뒷조사하는 데 국정원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증명하는 국정원의 사찰 문건을 확보했고,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등으로부터 우 전 수석의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까지 얻어냈다.

‘이석수 찍어내기’의 시작은 지난해 8월16일 MBC가 이 전 감찰관이 우 전 수석 관련 감찰 내용 누설한 정황을 담은 SNS를 입수했다며 보도하면서부터다. MBC는 8월16일 유출 내용이 SNS 대화 내용인 것처럼 보도했다가 17일 뉴스데스크에서 “모(조선일보) 언론사 기자가 이 특별감찰관과의 전화 통화 내용이라며, 회사에 보고한 것이 SNS를 통해 외부 유출된 것을 옮겨놓았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조선일보 측은 이 전 감찰관과 전화 통화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이명진 기자는 이 특별감찰관과의 통화 내용을 ‘내부 보고 문건’으로 만든 적도 없고, 담당 부장이나 국장 등에게 문서 형식으로 보고하지도 않았다”며 “다만 현재 법조 취재팀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이 기자는 법조팀 기자 일부에게 이 특별감찰관과의 통화 내용을 요약·정리한 메모를 카카오톡으로 전달했다. 취재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이 전 특별감찰관은 지난해 12월15일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조선일보 기자와 SNS를 한 것은 아니고 통화한 내용 중 일부를 어떻게 MBC에 입수했는지 모르지만 적법한 절차는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후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MBC 보도 직전(8월16일)에 MBC 기자와 통화를 했고, 보도 전후 통화 횟수도 수십 통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특검 관계자는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MBC 보도부터 쭉 일련의 시나리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지난해 8월16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 지난해 8월16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MBC보도→이석수 수사대상 포함→이석수 과잉수사·우병우 부실수사→우병우 기소 실패’가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우 전 수석의 비리 수사가 이 전 감찰관의 감찰 누설에 대한 수사로 희석되는 데 MBC 보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 과정에서 MBC 기자가 우 전 수석과 유착했음을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이다.

이 전 감찰관의 감찰 누설 보도가 이뤄졌을 당시 MBC 정치부장이었던 문호철 전 보도국장은 우 전 수석과 서울대 법학과 1984학번 동기다. 아울러 이때 국정원의 국내 담당 2차장으로 있었던 최윤수 전 검사장 역시 두 사람과 동기다.

강희철 한겨레 기자는 지난 15일 “우병우 구속 결정타 된 이석수는 아직도 ‘피의자’” 기사에서 “MBC에서 문제의 보도가 나간 날 통화 내용 메모를 들고 나타나 사회부에 건넨 사람이 우 전 수석과 최 전 차장의 서울법대 84학번 동기인 문아무개 기자로 알려지면서, 검찰 안에선 MBC 보도가 이들의 합작품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정리해 보면, 지난해 8월16일 MBC에서 이 전 감찰관의 감찰 유출 의혹에 대한 보도가 나간 날 우 전 수석은 MBC 기자와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통화했다. 이틀 후 보수단체가 이 전 감찰관을 특별감찰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그리고 바로 하루 뒤 8월19일 김성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행위이자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후 이 전 감찰관은 1년4개월이 넘도록 피의자 신분이다.

지난해 8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분이던 조국 민정수석은 이 전 감찰관 통화내용 유출 사건과 관련해 페이스북에서 “이번 사건은 우병우 포함 관련 정권 핵심이 이석수의 감찰을 본격적으로 막으려 한다는 신호다. 조만간 극우시민단체는 이석수를 고발할 것”이라며 “그러면 동아일보 등은 공정한 감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이석수의 자진사퇴를 요구할 것이고, 청와대도 우회적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모두 적중했다.

조 수석은 “과거 국정원 수사를 지휘하던 채동욱(전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손을 잡았던 상황이 재현됐다”면서 “단, 이번에는 조선일보 역할을 다른 언론(MBC)이 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감찰관을 사찰했던 우 전 수석을 포함해 국정원 연루자들은 현재 검찰에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지만, 사찰 내용을 보도한 MBC 기자들은 아직 피의자 신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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