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27일은 대한민국 방송의 역사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그 무대는 오후 8시에 시작된 ‘MBC 뉴스데스크’였다.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은 박성호 기자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오늘부터 정상체제로 돌아온 뉴스데스크는 앞으로 공영방송다운 뉴스가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면서 여러분께 찾아가겠습니다. 권력이 아닌 시민의 편에 서는 뉴스가 되도록 MBC 기자들 모두 여러분께 다짐합니다.” 박성호 기자와 함께 앵커를 맡은 손정은 아나운서는 “오늘은 그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서 먼저 MBC 뉴스가 지난 5년 동안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순서를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MBC 기자 회장이던 박성호 기자는 2012년 총파업 때 부당하게 해직됐고, 손정은 아나운서는 MBC ‘간판 아나운서들’이 거의 모두 회사를 떠난 뒤에도 현업에서 배제된 채 꿋꿋하게 투쟁 대열에 동참했다. ‘다시, 만나서 좋은 친구’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로 첫 선을 보인 두 사람은 왼쪽 가슴에 노란색 ‘세월호 리본’을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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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26일 박성호 앵커는 뉴스데스크 첫 리포트에서 지난 5년 간 공영방송 뉴스를 제대로 해오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며 시청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2월26일 박성호 앵커는 뉴스데스크 첫 리포트에서 지난 5년 간 공영방송 뉴스를 제대로 해오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며 시청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MBC는 지난 12월12일, 새로 태어난 ‘피디수첩’(‘MBC 몰락, 7년의 기록’)을 통해 이명박·박근혜의 ‘낙하산 사장’인 김재철·안광한·김장겸이 전횡을 일삼던 7년 동안 그 공영방송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바 있었다. 그것은 12월27일자 뉴스데스크의 예고편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성호는 권력의 주구 또는 부역자가 된 경영진이 어떤 위법행위와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생생하게 고발했다.

“세월호 참사 때는 피해자인 유족의 목소리는 배제한 채 깡패인 것처럼 몰아갔고, 공권력에 농민이 쓰러진 장면은 감춘 채 시위대의 폭력성만 부각시켰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이 드러나도 침묵,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퍼져도 침묵, 뉴스 자체를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최순실이란 이름, 국정농단이란 표현도 상당 기간 금기어처럼 쓰지 않았습니다. MBC는 드러내기보다 감추기에 몰두했습니다.”

박성호 앵커는 MBC 몰락의 책임을 ‘공범자들’에게만 돌리지 않았다. “그에 맞선 기자들도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시청자들께 그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그는 “저항이 좌절됐다고 무기력과 자기검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며 “기자 윤리, 저널리스트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한 점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 2016년 11월26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가 열렸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2016년 11월26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가 열렸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이래 23차에 걸쳐 무려 1700만여 명의 국민들이 촛불혁명의 대열에 참여하는 동안 MBC는 KBS보다 훨씬 심하게 시민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다. 취재기자와 카메라기자가 현장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MBC 로고를 단 중계차가 거센 항의에 부닥치기도 했다. 전성기에 ‘마봉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MBC가 ‘엠X신’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수모를 ‘사랑의 채찍’으로 받아들인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조합원 2천여 명은 지난 9월4일부터 70일이 넘게 총파업을 불인 끝에 마침내 김장겸 사장을 추방하고 MBC 재건과 혁신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경영진을 구성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에 한나라당 대선후보 이명박의 캠프에 참여했던 김재철이 MBC 사장으로 ‘낙하’한 뒤, 하루가 다르게 어용화의 속도를 더해가는 그 방송을 외면하는 시청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MBC 노조는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170일 동안이나 총파업을 벌였지만 구체적으로 얻은 성과는 없었다. 결국 안광한·김장겸 체제에서 보도 부문을 대표하는 MBC 뉴스데스크는 ‘애국가 시청률’(2% 안팎)이라는 조롱을 받는 비참한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많은 국민은 MBC 출신의 손석희 JTBC 보도본부 사장이 앵커를 맡은 JTBC의 ‘뉴스룸’을 비롯한 프로그램들이 박근혜 탄핵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것을 보며 환호했다. 그 시기에 MBC 언론노동자들은 쓰라린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MBC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뉴스는 물론이고 시사교양, 예능 프로들도 옛날처럼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 12월26일 언론노조 KBS본부가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는 과천정부청사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24시간 연속 집회를 시작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 12월26일 언론노조 KBS본부가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는 과천정부청사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24시간 연속 집회를 시작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그런데 이 글에 적기조차 마음 아픈 사실이 있다. MBC와 같은 날 총파업을 시작한 KBS의 언론노동자 2200여명이 아직도 찬바람 몰아치는 거리에서 고대영 사장과 적폐 KBS 이사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2월27일, 업무추진비를 부정하게 사용한 강규형 KBS 이사(명지대 교수)에 대한 청문 절차를 거쳐 대통령에게 해임 건의를 하고 그 건의가 수용된다면 여권 대 야권 이사의 수가 6 대 5로 역전돼 고대영 퇴진의 길이 열릴 것이다. 총파업이 승리로 끝나 KBS가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되살아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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