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언론탄압이라는 비판을 받은 MBC ‘PD수첩’ 수사 과정에서 대검찰청 수뇌부가 실제로 직접 강제수사를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검찰에 기소됐던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진은 법원으로부터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이 수사는 이명박 정권 초기 정부 비판적인 방송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검찰권이 남용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 12일 출범한 ‘검찰과거사위원회’도 2008년 ‘PD수첩’ 제작진 수사를 주요 조사 사건으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PD수첩’ 수사를 맡았던 임수빈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은 이 사건이 형사적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제작진 강제소환 방침에 반대하며 상부에 맞서다가 사표를 냈다. 임 전 부장의 사직과 수사팀 교체에 대한 무성한 의혹에도 검찰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이번 폭로로 진실 규명을 위한 실마리가 드러난 셈이다.

지난 2009년 1월8일 MBC 뉴스 리포트 갈무리.
지난 2009년 1월8일 MBC 뉴스 리포트 갈무리.
14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8년 MBC ‘PD수첩’ 광우병 의혹 보도에 대해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대검찰청 수뇌부가 “기소하지 않아도 되니 제작진을 체포하고 압수수색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PD수첩’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2008년 7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대부분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고 의도적으로 편집됐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후, 그해 9월쯤 대검 수뇌부가 수사팀을 불러 ‘기소와 무관하게 일단 제작진을 체포하고 압수수색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작진이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자체 조사 후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긴 했지만 언론의 공공성 등을 고려하면 제작진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며 “그런데도 강제수사(체포·압수수색)를 지시한 것은 수사권 남용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4월 MBC ‘PD수첩’에서 “긴급취재-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이 방송된 후 6월 농림수산식품부(장관 정운천)는 해당 방송이 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건을 담당한 임수빈 부장은 ‘PD수첩 제작진이 일부 사실을 왜곡했지만 농식품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강제소환 등에 반대했지만 검찰 지휘부는 ‘PD수첩’의 광우병 의혹 보도가 완전히 허위라고 단정하고 무리한 수사를 요구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더라도 검찰 수뇌부는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 방안을 수사팀에 계속해서 압박했다. 동아일보는 2008년 8월14일자 기사에서 “PD수첩 측이 계속 수사에 응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제작진에 대한 체포영장이나 자료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방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제작진들이 지난 2010년 12일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명예훼손 혐의 무죄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앞줄 맨왼쪽부터) 이춘근 PD, 조능희 전 CP, 송일준 PD.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제작진들이 지난 2010년 12일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명예훼손 혐의 무죄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앞줄 맨왼쪽부터) 이춘근 PD, 조능희 전 CP, 송일준 PD.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당시 임수빈 부장의 상관은 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인 최교일 1차장 검사였는데 최 의원은 이후 줄곧 자신은 PD수첩 수사팀에 강압적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지난 7월 KBS ‘추적60분’도 ‘김무성 사위 마약 사건’을 다루면서 최 의원이 이명박 정권 초기 서울중앙지검 차장 검사로 있으면서 정권에 큰 부담을 안긴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리한 수사를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최 의원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최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나는 임수빈 부장과 마찰을 겪지 않았고, 만약 내가 임 부장에게 압박을 가했다든지 강압적으로 지시했다면 임 부장이 그냥 안 있었을 것”이라며 “그때 내가 검사들의 뜻을 꺾거나 독단적으로 한 게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임수빈 변호사는 경향신문 보도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 의원의 주장과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당시 PD수첩 사건을 수사했던 임수빈 부장이 형사적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도 대검 수뇌부 등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리한 강제 수사를 지시했다. 그때 검찰 지휘부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임채진 검찰총장·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이에 반발한 임 부장은 2009년 1월 사표를 던졌고, 결국 이 사건 수사팀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전현준)로 바뀌었다. 최교일 1차장 검사는 이후 서울고검 차장검사와 법무부 검찰국 국장 등 영전을 거듭하다 서울중앙지검장 자리까지 올랐다.

▲ 2009년 4월 8일 서울 여의도MBC사옥 마당에서 PD수첩 사무실 압수수색을 나온 서울서부지검 박길배 검사(오른쪽)와 수사관들이 사옥 진입을 막아선 언론노조MBC본부 조합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09년 4월 8일 서울 여의도MBC사옥 마당에서 PD수첩 사무실 압수수색을 나온 서울서부지검 박길배 검사(오른쪽)와 수사관들이 사옥 진입을 막아선 언론노조MBC본부 조합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2009년 2월 이후 바뀐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정병두 1차장 검사 등 검찰 지휘라인과 담당검사(박길배·김경수·송경호)들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긴급체포와 압수수색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인 후 조능희 책임PD 등 5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하지만 검찰 기소와 달리 법원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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