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골 은폐, 장관 지시도 묵살한 공무원들

지난 23일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유해 수습 은폐’ 사건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부 차원의 견제나 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이한 대응을 초래한 단초는 현장 책임자들의 ‘섣부른 예단’ 때문이었고, 이들은 유해 수습 사실이 미수습자 가족들의 장례 절차에 영향을 줄까 봐 사전 협의까지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영춘 해수부 장관의 공개 지시마저 묵살해 공직 기강의 해이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해수부 발표에 따르면 김 장관은 지난 17일 세월호에서 유해가 발견된 뒤 사흘이 지난 20일 오후에야 이철조 현장수습본부장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다. 김 장관은 “(이 본부장은) 이미 수습된 분들 중 한 분의 것(뼈)으로 짐작하고 예단했다고 한다”면서 “왜 보고를 안 했느냐고 질책하고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에게) 즉각 연락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김 장관의 지시는 이행되지 않았다. 김 장관은 “20일 저녁에 지시한 것이 그대로 이행될 줄로 알았다”면서 “22일까지 확인하지 못한 건 제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왜 보고를 하지 않았는지 저도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크기변환_[서울신문] 세월호 현장책임자 ‘섣부른 예단’… 해수부, 통제 전혀 안 먹혀_종합 05면_20171124.jpg
이철조 현장수습본부장은 “지난 17일 발견된 유골이 앞서 수습된 단원고 조은화·허다윤양의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보고를 김현태 부본부장에게 받았다”며 “미수습자 가족들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감안해 장례식이 끝난 후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장·차관과 선체조사위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 본부장은 “정신이 없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또 다른 문제는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해수부 역시 일련의 과정에서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섰던 현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느슨한 공직 기강을 다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결국 유해 발견 사실이 알려질 경우 5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이 수색을 포기하고 목포신항을 떠나기로 한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은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절차대로 선체조사위에 통보했던 동일한 사안을 두고 이번에만 사실을 은폐하려 했는지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은폐 주도 이철조·김현태는 세월호 조사 방해 장본인

한편 세월호 유골 은폐 사건은 해수부의 현재 인적 구성상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예견된 참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향신문은 “해수부는 애초 세월호 참사의 사후 처리 부실과 은폐 등 책임을 물을 조사 대상임에도 희생자 수색과 선체 인양 등을 총괄하는 주무 부처로 힘을 써왔다”며 “해수부 세월호후속대책추진단(전 세월호인양추진단) 주요 간부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지우기’에 앞장섰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고 지적했다.

4·16가족협의회 등 세월호 유족 및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진상규명 조사 방해세력’ 명단을 발표했다. 이 중에는 이번에 유골 은폐를 협의·지시한 김현태 후속대책추진단 부단장(현장수습본부 부본부장)과 직속상관인 이철조 후속대책추진단장(현장수습본부장)이 포함됐다.

[경향신문] 유족들 _은폐 주도 이철조·김현태, 세월호 조사방해 세력__사회 03면_20171124.jpg
세월호 유족 ‘창현 아빠’ 이남석씨는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결국 해수부도 새 정권 들어서 장관만 바뀌었지 이전 정부에서 참사를 숨기기 급급했던 인사들이 그대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이런 짓을 벌인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동혁 아빠’ 김영래씨도 “사실상 미수습자 가족들을 두 번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며 “은폐를 지시한 해수부 공무원은 이미 유족들이 세월호 적폐청산 대상으로 지목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유족들은 지난 6월 새 정부 들어 바뀐 김영춘 해수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도 ‘현 세월호인양추진단과 현장수습본부 전면 개편’과 ‘이전 정부에서 있었던 진상조사 방해, 피해자 모독에 대한 사과와 자체 조사 실시’를 요구했다”며 “그러나 해수부 내 인적 개편은 없었다”고 밝혔다.

유가족들 “해수부 인적 청산 필요”

동아일보, 유가족 국회 농성에 또 ‘불법’ 타령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미수습자 유해를 발견하고도 은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관계자 처벌과 ‘사회적 참사 특별법’ 수정 처리를 촉구했다.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자행됐다”면서 “한 사람의 징계로 끝날 게 아니라 해수부 내 인적 청산,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집행위원장은 24일 사회적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해수부가 유골 발견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건 국민에게 진실을 숨기는 걸 이 나라가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보여준 사례”라며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유가족 “해수부 인적 청산·조직 개편 필요”_종합 05면_20171124.jpg
미수습자 가족들도 언론 보도가 나온 22일 유골 발견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단원고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는 “유골 발견 사실을 들은 적도 없는데 이미 언론에 다 나왔더라. 기자를 통해서 알았다”며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수색 현장을 지휘하고 은폐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해수부 김현태 현장수습본부 부본부장(부이사관)은 지난 22일 안산을 찾아 미수습자 가족 일부를 만나 용서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러나 이들은 김 부본부장의 사과를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서울에 사는 권오복씨(미수습자 권재근씨 형)는 23일까지 해수부에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동알일보 보도에 따르면 권씨는 23일 오후 김영춘 장관의 전화를 받았다. 사과의 뜻을 전하는 김 장관에게 권씨는 “장례식 전에 알렸어야 했다. 분노를 참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씨는 “4·16연대(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 모임)가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며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을 두고 또 고질적인 ‘불법 집회’를 운운했다.

동아일보는 “유가족들은 밤새워 농성을 이어갔다. 국회 내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 금지 구역”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경찰은 “유족들의 감정 등을 고려해 해산 조치 없이 농성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 유가족 “억장 무너져 … 용서 못해”_사회 04면_20171124.jpg
자유한국당이 “인간의 도리” 비판? “어이없는 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3일 해수부의 세월호 희생자 유골 은폐 의혹에 대해 “문재인 정권의 출발점이자 성역인 세월호에 대해 유골 은폐라는 중차대한 범죄를 범했는데 해수부 장관 하나 사퇴해서 그게 무마되겠느냐”며 “그들 주장대로라면 정권을 내어 놓아야 할 범죄”라고 맹비난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가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전 정부를) 그렇게 비판하더니 국가의 도리 떠나 인간의 도리도 다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권에 할 말을 잃었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국당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한국일보는 사설을 통해 일침을 가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정부와 함께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나눠져야 마땅한 한국당이 ‘인간의 도리도 다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권에 할 말을 잃었다’ ‘정권을 내어 놓아야 할 범죄’ 운운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며 “그럴 여력이 있다면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사회적 참사 특별법 통과에 적극 협조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꼬집었다.

[한국일보] [사설] 세월호 유족 상처 덧낸 어이없는 유골 늑장 공개_사설_칼럼 31면_20171124.jpg
국민일보는 해수부가 고의 은폐 논란을 자초한 것에 대해 “유골 수습이 알려질 경우 미수습자 가족들이 현장을 떠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추가 수색 여론이 높아질 것을 우려해 꼼수를 부린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며 “해수부의 행태는 가족의 유해라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3년 7개월 동안 팽목항과 목포 신항을 지켜온 미수습자 가족들의 등에 비수를 꽂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일보는 “김영춘 장관은 1차 조사 결과 브리핑에서 현장 책임자가 기존에 수습됐던 희생자의 유골일 것이라 예단해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수긍하기 어렵다”며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가리고 관련자들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에 한층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도 “한 유가족은 ‘역시 저들(해수부 공무원)은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며 “더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책임자 문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대책 운운하기에 앞서 통렬한 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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