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협력업체 노동자 중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가 처음으로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6부(재판장 김정숙)는 지난 17일 삼성전자 화성·기흥공장 협력업체 관리소장으로 일했던 고 손아무개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청구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유해화학물질 노출 수준이 낮다”며 내린 산재 불승인 결정을 법원이 뒤집은 것이다.

손씨는 2003~2004년 간은 삼성전자 화성공장 협력업체 ‘메타테크’에서, 2004~2012년까지는 기흥공장 협력업체 ‘기가텍’에서 총 10여년 간 관리소장으로 근무했다. 해당 업체는 반도체 제조 설비에 대한 유지보수 업무를 맡은 회사로, 손씨는 상시적으로 주당 2~3시간 클린룸을 출입했다.

▲ '삼성직업병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노숙농성' 77일차였던 지난 2015년 12월22일 저녁, 방진복을 입은 221 명의 참가자들은 삼성전자 강남사옥 일대를 돌며 직업병 재발방지대책과 배제없는 보상, 진정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삼성직업병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노숙농성' 77일차였던 지난 2015년 12월22일 저녁, 방진복을 입은 221 명의 참가자들은 삼성전자 강남사옥 일대를 돌며 직업병 재발방지대책과 배제없는 보상, 진정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삼성직업병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노숙농성' 77일차를 맞은 2015년 12월22일 저녁, 방진복을 입은 221 명의 참가자들은 삼성전자 강남사옥 일대를 돌며 직업병 재발방지대책과 배제없는 보상, 진정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 공동대표 황상기씨(오른쪽)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삼성직업병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노숙농성' 77일차를 맞은 2015년 12월22일 저녁, 방진복을 입은 221 명의 참가자들은 삼성전자 강남사옥 일대를 돌며 직업병 재발방지대책과 배제없는 보상, 진정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 공동대표 황상기씨(오른쪽)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손씨는 특히 화성·기흥 공장이 양산체제 돌입 직전인 ‘셋업단계’일 동안엔 매일 8시간 가량 크린룸에 상주하며 유지보수 업무를 관리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9~2011년 간 삼성전자 일부 반도체 조립라인 환경을 조사한 결과 벤젠, 포름알데히드, 아르신 등 각종 유해화학물질 및 전리방사선 등이 검출됐다.

손씨는 2009년 5월 경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0년 8월 병세가 호전돼 업무에 복귀했다. 이후 다시 같은 질환이 발병해 2012년 8월 숨을 거뒀다. 근로복지공단은 ‘유해화학물질 노출 수준이 낮고 업무상 인과관계를 증명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2014년 유족급여 등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2015년 5월 재심사 청구도 기각했다.

법원은 이와 관련 “발병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면서 “여러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각 요인들이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한 ‘업무상 인과관계를 증명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업주의 협조 거부나 행정청의 조사거부 및 지연 때문에 유해요소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법원은 삼성전자 측 입장과 다르게 “(손씨가) 초기 안정화 단계에 클린룸에 빈번하게 출입해 상당시간 머물렀다”는 손씨 및 손씨 동료 증언을 채택했다. 삼성전자는 클린룸 출입기록에 대해 “내부 규정에 따라 3개월 동안 보관한 뒤 폐기한다”며 “출입기록만으로는 유해물질 접촉이나 노출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출입 기록은 독성물질 노출 여부와 무관한 자료”라고 밝힌 바 있다.

재판부는 “망인의 실제 작업현장 출입기록은 조사되지 않았고 7~10년이 지난 작업현장 출입기록이 남아있을 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망인이 작성한 글이나 동료 증언에 따르면 망인은 초기 안정화 단계에 PM 작업현장에 빈번하게 출입해 상당한 시간을 머물렀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록 유지보수 작업을 직접 담당하는 엔지니어에 비해 노출 정도는 낮을지라도 이 사건 질병은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에 낮은 정도로 노출되더라도 발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업무상 인과관계를 부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손씨 유족의 소송을 지원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결정에 불복해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직업병 추정 피해노동자가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 소속 6명, LG전자 소속 1명 등 총 7명이 더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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