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조덕제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직접 기자들을 만나 언론에 따른 2차 피해를 호소하며 공정보도를 부탁했다. 피해자 측은 일부 매체를 중심으로 확산된 편집 사진·영상물 및 피해자 명예훼손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경고했다.

지난 2015년 영화 촬영 도중 강제추행을 당해 조씨를 고소한 피해 여배우 A씨는 21일 오후 피해자 입장 발표 기자회견 말미에 모습을 드러내 “그동안 너무 힘들었고 지금도 많이 힘들고 앞으로도 힘들 것 같다”면서 “앞으로 나와 같은 제2의 성폭력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공정 보도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촬영 금지를 전제로 기자회견 자리에 참석한 A씨는 입장을 밝히는 도중 목에 메어 여러 번 말문을 삼켰다.

▲ 10월25일자 디스패치 단독기사 “‘디렉션 : 미친놈처럼’…조덕제 사건, 메이킹 영상 입수”에 삽입된 사진
▲ 10월25일자 디스패치 단독기사 “‘디렉션 : 미친놈처럼’…조덕제 사건, 메이킹 영상 입수”에 삽입된 사진

A씨 법률대리인 이학주 변호사는 “피해자가 성추행을 당하지 않았으면서 피해를 주장한다는 오명은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디스패치가 지난 10월25일자 보도한 “‘디렉션 : 미친놈처럼’…조덕제 사건, 메이킹 영상 입수” 기사다.

이 변호사는 기사에 삽입된 사진이 왜곡 편집된 제작물이라 지적했다. 해당 사진은 영화감독이 A씨와 조씨에게 연기지시를 하는 장면으로, 디스패치는 감독의 입 근처에 ‘미친놈처럼…’이라는 말풍선을 달았다. 감독이 두 배우와 함께 겁탈 장면을 논의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는 항소심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쟁점 중 하나다. A씨는 가정폭력 피해자 연기를 위해 멍 분장을 하느라 연기 지시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독은 조씨에게만 주요 지시를 내렸고 그 후 분장을 끝내고 돌아온 A씨에게 ‘수동적으로 반항하는 연기를 해달라’고 지시했다. 이 변호사는 “마치 감독이 피해자가 동석한 자리에서 남배우에게 아내 겁탈 장면을 설명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왜곡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디스패치는 감독 연기지시의 일부만 추출해 보도했다. 디스패치가 주요하게 보도한 “그러면 뒤로 돌려. 막 굉장히 처절하게. 죽기보다 싫은, 강간당하는 기분이거든. 그렇게 만들어 주셔야 돼요” 라는 디렉팅은 피해자 측에 따르면 ‘짜깁기’된 지시다.

피해자 측이 공개한 실제 메이킹 필름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감독은 “그러면 돌려가지고, 뒤로 돌리는거야. 막 굉장히 처절한… 이거는 에로가 아니잖아. 이거는 죽기보다 싫은, 강간당하는 기분이거든. 그렇게 만들어주셔야 돼요. 얼굴 위주로” 라고 지시했다. ‘이거는 에로가 아니잖아’란 지시와 ‘얼굴 위주로’란 지시가 누락됐다.

실제로 감독 등 일부 영화 제작진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해당 장면이 에로씬이 아니라 폭력씬인 점 △이 사건 씬은 상반신 위주로 촬영하기로 예정됐던 점 △연출의도는 겁탈 장면이 아니라 가정폭력 때문에 무기력해진 여성피해자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증언했다. 이 사건 영화는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제작됐다.

디스패치 기사에 나오는 또다른 디렉팅인 “그냥 옷을 확 찢어버리는 거야. 몸을 감출 거 아니에요. 그 다음부턴 맘대로 하시라니까. 미친놈처럼” 부분도 실제 감독이 전달한 11문장 중 일부인 4문장이다.

메이킹 필름 녹취록에 따르면 감독은 위 문장을 말하기 전 “‘야~이’ 대사를 하면서 귀를 만지거나 따귀를 팍 때려라” “A가 반항하면 ‘뭐야 너’ 아무 대사나 나오는대로 막 (말해라)” 등의 연기 지시를 했다.

이 변호사는 이에 대해 “메이킹 필름 중 ‘감독이 폭행씬을 재연하는 장면’은 편집한 뒤 전혀 보도하지 않은 채 겁탈 장면만을 설명하는 부분을 강조해서 편집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메이킹 촬영기사가 검찰에 제출한 메이킹 영상은 8분 가량이고 디스패치는 이 중 2분 분량으로 편집된 내용만 보도했다”고 강조했다.

▲ 영화배우 조득제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 여배우 측이 11월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라마다호텔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영화배우 조득제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 여배우 측이 11월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라마다호텔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가해자 조씨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2심 판결은) 영화계 현장을 모르는 사법부의 판결”이라면서 “전문 영화인으로 구성된 진상규명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이에 대해 법정에서 영화계 특수성에 대한 증거 및 증인 조사가 충분히 이뤄졌으며 관행에 따르더라도 성추행 사실은 성립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에로씬과 폭행씬을 모두 촬영한 적이 있는 배우가 법정 증인으로 나와 ‘민감한 씬을 촬영할 때는 감독과 배우 모두 합을 맞춰 본다’ ‘콘티가 변경될 경우 상대 배우와 감독 모두 모여 바뀐 콘티에 대해 합을 맞춰 본다’ ‘이런 부분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계약이 이뤄진다’ 등의 진술을 내놨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감독이 실제로 그런 지시를 내렸다해도 남자 배우는 여자 배우에게 에로씬 등의 연기를 해야 할 때 그 내용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항소심은 상대 배우가 동의하거나 예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으면 연기 행위를 벗어난 성추행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10월13일 쌍방 상소로 대법원에 송부됐다. 무죄를 주장하는 조씨는 대법원 심리와 별도로 영화계 차원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13일 강제 추행 및 무고 유죄를 인정해 조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2년 간 형 집행을 유예했다.

A씨 측은 “과거부터 여배우들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 연기나 남배우들의 경우 동의하지 않은 폭행 연기 사례가 발생해왔다”며 “이번 사건 대법원 판결은 이런 경우에 기준을 제시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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