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이재석 KBS 기자와 KBS 파업뉴스팀의 군 댓글부대 특종은 KBS ‘뉴스9’ 전파를 타지 못했다. 군(軍) 사이버사령부 530심리전단 부단장급 전직 간부 김기현씨(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2015년 12월 퇴임)와 이 기자의 실명 인터뷰는 ‘뉴스9’이 아닌 유튜브와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됐다.

MB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이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 결과를 날마다 보고받았고 김관진·한민구 등 군 수뇌부에게도 날마다 보고가 이뤄졌으며 국가정보원이 매달 25만 원을 지급했다는 증언 등은 이미 국방부 사이버사댓글재조사TF를 통해 팩트로 확인됐다. 김 전 장관이 지난 11일 구속됐다는 점에서 김씨의 폭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KBS 파업뉴스팀에 이어 SBS, JTBC 등도 김씨 인터뷰를 보도했고 유의미한 후속 보도로 이슈를 주도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KBS 보도국장단은 어떤 이유에서 ‘특종’을 토해냈던 걸까. 이 기자는 “KBS보도국장단(보도국장과 주간단)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물증이 필요하단다. 증언만으로는 곤란하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30일 김환주 KBS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은 입장문을 내어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군 댓글공작을 폭로한 김기현씨(왼쪽·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와 이재석 KBS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군 댓글공작을 폭로한 김기현씨(왼쪽·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와 이재석 KBS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우선 방송을 거부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취재와 제작을 통해 리포트 같은 결과물이 나왔는데도 방송을 막는 게 방송거부인데 이번 건의 경우 여전히 취재 중인 사안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해당 기자가 댓글부대 관계자(김기현씨)의 증언을 제보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만나 설명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현직 관계자인 줄 알았는데 기자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전직 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제보자의 증언이 전부인 상황에서 제보자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특보 명함을 가지고 선거 운동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보도가 논란에 휩싸일 경우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해당 기자가 증언 외에 다른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고 해서 그러면 조금 더 증거를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해당 기자가 증거를 가져올 수 있는 취재부서에 근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댓글부대 수사를 취재하고 있는 부서와도 협의를 통해 이런 증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보도록 당부했고 실적이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다시 해당 기자를 만나 의견을 들었는데 이 사안을 취재할 수 있는 부서에서 본인이 직접 나서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의견 수렴 결과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추진코자 했으나 기자협회의 제작거부가 이어졌습니다. 그후로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염려가 있어서 부서 이동 등 관련 사안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김 전 장관이 구속되고 나서도 같은 생각인지 궁금했다. 어떤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일까. 기자는 지난 17일 김기현씨와 이 기자를 인터뷰한 뒤 김 국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직도 기사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증거가 필요한 것인지 지금 시점에서 김 국장 생각이 궁금하다”, “그때와 생각이 달라지신 것인지 혹은 같으신 건지 견해를 여쭈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김 국장은 답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지난번 정말 바쁜 와중에 최대한 상황을 설명드리려고 글을 써서 보내드렸는데 보도된 결과를 보고 놀랐다”며 “지금도 ‘아직도 기사 가치가 없다는 건지’ 이런 표현을,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거론하시잖나. 제가 어떻게 진솔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나. 짐작하시겠지만 ‘뉴스9’ 때문에 바쁘다”고 말했다.

문자로 나눈 이야기에 불과해 김 국장 생각을 더 확인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했다. 이재석 KBS 기자는 ‘방송기자연합회’ 기고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부고발자들의 증언만으로 기사가 성립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엄격한 법리를 따지는 법원에서조차 증거 없이 발언만으로도 뇌물죄를 판단하는 판국에 ‘합리적 의혹’이라면 유연하고 자유롭게 제기해야 할 언론사가 물증이 없다고 보도가 안 된다니. 요즘 KBS의 현실을 너무도 잘 드러내주는 사례다.”

KBS는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보도 기회를 놓쳤다. 당시 정지환 보도국장은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측근이 맞나? 뭐가 맞다는 거지? 알려져 있다는데 어떻게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며 보도를 요구하는 KBS 기자협회장 의견을 묵살했다.

▲ 고대영 KBS 사장이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취재진과 KBS 기자들에 둘러싸여 회의장 출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고대영 KBS 사장이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취재진과 KBS 기자들에 둘러싸여 회의장 출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전국언론노조 KBS본부
KBS는 JTBC의 태블릿 PC 보도가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취재팀을 꾸렸지만 낙종의 악몽을 지울 수는 없었다. KBS 기자들이 최순실 보도를 ‘보도 참사’라고 자조하는 동안 정 국장은 지난 8월 KBS 대전방송총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부에서는 ‘영전’이라고 평가했다. 구성원에게 유감 표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2014년 4월 박근혜 청와대의 세월호 KBS 보도 통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KBS 보도국장은 청와대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부패한 권력은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싶어한다. 이명박·박근혜가 그랬다. 그렇다고 해도 ‘기자’라면 진실을 추적하는 후배들의 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을 잊어서도 안 된다. KBS는 무엇을 또다시 낙종할 것인가.

[관련기사 : 군 댓글공작 제보자 “KBS 방송국에서 분장하고 싶었는데”]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