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님, 고대영 KBS 사장 내보내고 ‘뉴스9’ 스튜디오로 모실게요. 그때 진짜 메이크업도 하시고 제대로 인터뷰해요.” 이재석 KBS 기자(보도본부 국제부 소속)는 지금 70일 넘게 파업 중이다. 파업 직전까지 이어졌던 KBS 기자들의 제작 거부 중이던 지난 8월30일 ‘특종’을 터뜨렸다. 군(軍) 사이버사령부 530심리전단 부단장급 전직 간부 김기현씨(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2015년 12월 퇴임)를 실명 인터뷰하며 군 ‘댓글부대’의 정치 개입과 온라인 여론 조작에 대한 증언을 이끌어 냈다. “‘뉴스9’ 스튜디오로 모실게요”라는 이 기자 말에 김씨는 “이 박사(김씨는 외부에서 ‘기자’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주목할까 ‘박사’로 지칭했다. 오랜 정보 업무가 몸에 익은 탓이다)가 빨리 KBS 본관으로 돌아가야지”라고 말했다.

2010~2012년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에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개입했고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에 날마다 댓글공작 결과가 보고됐다는 김씨 폭로는 국회로 이어졌다. 국회에선 ‘2012년 사이버전 작전 지침’, ‘대응 작전 결과 보고서’ 등 김 전 국방부 장관 결재 문건이 공개됐다. 김 전 장관은 지난 11일 구속됐다. 검찰 수사는 이제 MB로 향하고 있다.

▲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군 댓글공작을 폭로한 김기현씨(왼쪽·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와 이재석 KBS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군 댓글공작을 폭로한 김기현씨(왼쪽·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와 이재석 KBS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이재석 기자 특종은 KBS ‘뉴스9’이 아닌 언론노조 KBS본부 유튜브와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KBS 보도국장단은 “폭로를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하다”며 보도를 불허했다. 반면, SBS와 JTBC에서 굵직한 추가 보도가 이어졌다. 지난 9월29일 국방부 사이버사 댓글 재조사 TF는 사이버사가 청와대로 보고한 다수 문서를 확인했고 김 전 장관에게 군 심리전 대응 결과가 보고된 사실도 확인했다. 무엇보다 ‘김관진 구속’은 김씨 증언이 곧 증거였다는 걸 증명했다.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김씨와 이 기자를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 지난 8월 중순 이재석 KBS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이상한 점은 없었나?

김기현(이하 김) : “34년 정보 업무를 한 직감으로 보면 원래는 KBS 방송국으로 가야 하는데 왜 종로 쪽에서 만나자고 했을까 싶었다. 방송국에 가서 분장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웃음) KBS ‘뉴스9’ 특종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면은 있다. 그러고 나서 SBS에 나가 인터뷰를 했는데, 방송 전 그쪽 기자가 이것저것 물어봐서 ‘그냥 KBS 이재석이가 만든 거 보고 쓰라’고 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으니까. 그쪽 보도 간부가 나와 ‘언론 생리상 다시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해서 인터뷰를 했다. 증언에 신뢰가 있다고 파악했는지 톱뉴스로 보도하더라.”

이재석(이하 이) : “김 선생님께 사전에 KBS 보도로 못 나가게 됐고 대신 ‘파업뉴스’ 형태로 보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대신 보도가 나가면 타 사에서 인용할 수밖에 없고 검찰 수사까지 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 KBS 기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선생님 인터뷰를 공개했던 날, 그날 오후 SBS ‘8뉴스’도 인터뷰를 내보냈다. 엄경철 선배를 포함해 KBS 기자들은 ‘사안이 중대하니 다른 방송사에 보도할 수 있도록 하자’고 입을 모았다. 엄 기자가 SBS 쪽에 연락을 먼저 걸어 ‘SBS 쪽과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김기현 선생님을 설득하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KBS 파업뉴스팀은 지난 8월30일 기자회견을 위한 방송 준비를 마친 뒤 공개 하루 전날(29일) 오후 SBS에 먼저 전화해 사안을 알렸다. 김씨도 이재석 기자에게 “타사 인터뷰는 절대 하지 않겠다”며 “당국 조사만 받겠다”고 말했다. 단독이라는 성과보다 널리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이 기자의 설득 끝에 김씨가 SBS 인터뷰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 기자를 포함한 KBS 파업뉴스팀은 지난 9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방송기자연합회 ‘이달의 방송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 제보를 결심한 까닭은 무엇인가.

김 :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제보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진실을 이야기하면 누군가가 (보수)단체를 통해 고발하는 등 이후 상황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검찰은 정부 편을 들었을 것이고. 없는 죄를 씌워 영창을 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공직에서 퇴직하고 자유인이 된 뒤에도 한동안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국정농단으로 촛불집회가 일어나고 5·9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진 뒤 진실을 알려야겠다, 이재석에게 말해야겠다, 생각했다.”

이 : “현직에 계실 땐 말씀을 엄청 아끼셨다. 결심을 하신 뒤에는 ‘실명 폭로 아니면 의미없다’고 조언을 드렸다. 정말 고해성사하실 거라면 카메라 앞에 선생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래야 폭발력과 신뢰성이 생기니까.”

김 : “그 말을 듣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 진실을 알려야 하니까, 신뢰성을 높여야 하니까, 실명 폭로를 결심했다.”

▲ 군 댓글공작을 폭로한 김기현씨(왼쪽·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가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군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군 댓글공작을 폭로한 김기현씨(왼쪽·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가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군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김씨는 인터뷰 도중 “조직이 나를 먼저 버렸기 때문에 나도 조직을 버린 것”이라고 심경을 전하면서도 “군 사이버사가 본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국가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으로 군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군 조직에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씨는 전라도 해남 출신으로 군에서 지역 차별을 겪어야 했고 군 조직이 정치 댓글을 다는 것에 “우리는 북한군과 싸우는 부대가 돼야 한다. 온라인에서 오해 받을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며 내부에서 불만과 비판을 피력해 눈 밖에 났다. 엉뚱한 ‘상관 모욕죄’ 혐의를 뒤집어쓰고 강제 직위해제(최종적으로는 기소 유예가 됐다)를 당해야 했다. ‘김기현이 외부에 댓글부대 실체를 알릴 수 있다’는 윗선의 우려는 차별과 배제로 이어졌다. 김씨는 2015년 4월 심장 질환으로 쓰러져 스텐트 시술을 받고 2달 간 병가를 얻었다. 그 뒤 정년 퇴임했다.

- 내부에서 배신자로 몰리는 등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김 : “2014년 초 윗선에 ‘적절한 시기 미국에 가서 박근혜 정부가 끝나면 돌아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청에서 이긴 뒤 2014년 3월 1과장(총괄계획과장)으로 복귀했는데 이때 530 심리전단장이 박아무개였다. 나와 12년 차이가 나는 후배였다.”

이 : “군 정치 댓글로 2013년 12월 기소됐던 이태하 전 심리전단장 다음에 박씨가 심리전단장을 맡았다. 그는 정치 댓글을 달았던 핵심 조직인 2대 대장을 하다가 단장으로 승격했다. 박씨는 MB 정부 청와대를 빈번하게 왔다갔다했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가 입을 열면 청와대 개입과 관련해 많은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김 : “이태하가 기소된 뒤 김기현이 단장이 되면 ‘모든 것이 잘못될 수 있다’는 우려를 했다. 그러니까 ‘기획 직위해제’를 시킨 거다. 대구 등 특정 지역 인사들, 국방부 인사 라인과 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2012년 11월~2014년 5월) 등 7여 명이 똘똘 뭉쳐 박씨를 단장으로 진급(4급→3급) 시켰다고 난 보고 있다. 바뀐 관리자들과 그 책임자들이 문제였다. 댓글 사건이 터졌으면 부대를 전수조사해서 재건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범법 행위자들을 옹호했다. (박씨 등은) 자신들이 정권을 창출했다는 ‘소영웅주의’에 빠져 있었다. 청와대에 다녀오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윗선(청와대)에서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 지난 8월 제보 이후 주변 반응은 어떠한가?

김 : “호의적인 사람도 있고 ‘굳이 일을 크게 만드느냐’는 반응도 있다. 내가 하지도 않은 걸(상관 모욕죄) 했다고 죄를 뒤집어썼다. 조직이 먼저 나를 버렸기 때문에 나도 조직을 버린 셈이다. 하지만 군이 국내 정치 개입으로 논란에 휩싸였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종북 프레임’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 수뇌부들이 문제였다. 군 전체를 매도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 원래 심리전단 역할은 무엇인가?

김 : “전투를 지원하는 거다. 심리전은 북한 진실과 실상을 알려서 그걸 보고 상대편이 우리 쪽으로 오게 하는 거다. 이를 테면, 북한군에 김정일이나 김일성 가족 실상을 전파하는 거다. 그쪽은 폐쇄돼 있기 때문에 실상을 모르지 않나. 실상을 알려주면 이에 동조하고 넘어올 수도 있고.”

▲ 대통령 재임 시절 군 사이버사 온라인 여론 조작 관여 의혹을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대통령 재임 시절 군 사이버사 온라인 여론 조작 관여 의혹을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정치 댓글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역할과는 전혀 다르다.

김 : “전쟁을 대비한 사이버심리전을 하는 거지, 평시에 사이버심리전을 하다니…. 북한도 IT가 발달하면 주민들이 인터넷을 할 것이고, 이 경우 전단이나 삐라보다는 사이버심리전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에 기획된 것으로 안다. 김관진 장관도 합참의장 시절 ‘해외 적대 세력을 상대로 심리전하면 좋겠다’,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일하지 말라’며 상식적 이야기를 했다. MB 정부가 들어서기 전 이야기다.”

- 정치 댓글을 달 때 심정이 어떠했나.

김 : “수치심을 느꼈고 고통스러웠다. 가장 기분 나빴던 건 ‘전라도 X새끼’, ‘홍어X’ 등 지역 폄하 댓글 등을 봤을 때였다. 내가 전라도 출신인데 우리 요원들이 했더라고.(웃음) 김광진 전 의원에 대해 ‘X새끼, 걸어가다가 벼락에 맞아 뒤져라’ 등 그런 비열한 댓글을 볼 때 가슴이 아프더라.”

이 : “물론 김 선생님도 댓글을 다셨다. 다른 요원들은 안철수나 문재인 후보에 대해 저질스러운 욕설을 퍼부었다면 이를 테면, 김 선생님은 안보 논리로 제주해군기지 건설 찬성 댓글 등을 다시는 정도였다. 이것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체를 숨기고 ‘다금바리’, ‘동백꽃’ 등 닉네임으로 네티즌인양 댓글을 달았으니 잘못된 것이다.(웃음)”

- 김관진 전 장관에 대한 감정이 남다를 것 같다.

김 : “합참의장 시절 강직하고 정직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랬던 이가 정권이 바뀌고 이후 행적으로 인생이 망가졌다. MB 정부 최초 장관이었던 이상희 장관 때부터 사달이 난 것 같다. (정보 업무와 관련해) 군 관련 동향을 위주로 파악했다. 이를 테면, 군과 관련한 정보들을 정리해 ‘왜 사람들이 파병에 반대하고 찬성하는가’라는 식으로 장관이 정책 결정에서 우리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댓글 같은 것들은 전혀 없었다. 광우병 사태가 발발하자 사회 전반적으로 ‘종북 프레임’이 거셌다. 군이 이렇게까지 추락한 데 대해 이명박 정부 장관들 책임이 없다고 보지 않는다.”

이 : “MB 정부 기조를 바꿔놓은 것이 광우병 사태였다. 국방부든 사이버사든 국가 정책을 홍보할 일이 있으면 기관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하면 된다. 그러나 사이버사가 만든 국방 관련 영상을 보면, 국방부가 만들었는지 네티즌이 만들었는지 출처를 숨기고 ‘종북 좌파’ 프레임을 확산시켰다. 뿐만 아니라 국방 사안이 아닌 G20, 4대강 홍보 영상도 만들어 뿌리는 데 명백한 여론조작이다.”

▲ 이명박 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 정치 개입 온라인 여론 조작 활동을 지시하고 이에 관여한 혐의(군형법상 정치관여 및 직권남용)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 뒤 첫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호송차에서 내려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명박 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 정치 개입 온라인 여론 조작 활동을 지시하고 이에 관여한 혐의(군형법상 정치관여 및 직권남용)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 뒤 첫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호송차에서 내려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MB 청와대는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댓글공작’ 군무원 증원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군 ‘댓글공작’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공개되자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통치행위’라는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 “향후 MB 측은 군무원 뽑는 데에 편법이 있었다고 해도 2012년은 선거가 있는 해이니 이에 발맞춰 북한 세력이 인터넷에서 준동할 우려가 있었다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김관진의 입이 될 거다. MB가 사이버사의 ‘활약’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군무원 증원 불법성도 커질 것이다. 김관진이 만약 MB에게 수시 대면 보고했고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과 상의하고 논의했다는 식으로 보다 더 구체적인 진술이 나온다면 MB의 불법 행위는 짙어질 것이다.”

김 :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전쟁이 발발하거나 국가가 아주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나 가능하다. 2012년 상황을 통치행위라 볼 순 없다. ‘통치행위’라고 보도한 기자 분은 무얼 어떻게 공부한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질문은 2014년 6월 김씨에게 ‘양심선언’을 예고했던 군무원 김석중씨 죽음으로 이어졌다. 군 사이버사에서 근무한 김씨는 심리전단에서 합성 사진과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담당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 정치인이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겨냥한 내용으로 알려졌다. 2013년 군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국방부가 수사에 착수하자 사이버사 심리전단 요원들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삭제하며 조직적 증거 인멸에 나섰다. 김씨는 당시 외부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고 그의 컴퓨터에는 청와대 보고 사항 등이 남아 있었다. 김씨는 이 자료를 삭제하지 않은 채 국방부 조사본부에 제출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시기는 국방부 조사본부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 군무원 고 김석중씨는 530단에서 어떠했나?

김 : “다른 부대에 있다가 530단으로 진급(6급)해서 왔다. 2012년 총·대선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력서를 보니 의무대에서 많이 근무한 친구다. 조직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때문에 마찰을 빚기도 했다. 미움을 받기 시작했고 조직에서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다. ‘왜 이런 걸(댓글 작업) 합니까’라고 쓴소리 같은 걸 하니까 눈 밖에 난 것이다. 그 즈음(2013년) 국회에서 군 댓글 의혹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가 보수 교육을 받는 동안 요원들의 증거인멸이 이뤄졌는데 그 친구 것은 못했다. 나도 그 당시 530단 사무실을 못 들어가던 신세였고 그 친구도 그랬다.”

▲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군 댓글공작을 폭로한 김기현씨(왼쪽·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와 이재석 KBS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군 댓글공작을 폭로한 김기현씨(왼쪽·전 사이버사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와 이재석 KBS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협박과 회유가 있었다고 들었다.

김 : “죽기 전 50여 일 동안 관리자들이 회유하고 괴롭혔다. 병사들과 보안 체크하는 안내소에 사실상 가둬놨다. 내가 한 참모장에게 그랬다. ‘저 사람(김석중)도 인격체인데 병(사)들과 함께 가둬놓으면 되겠느냐. 사무실로 복귀시켜 일을 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김석중에 대해 ‘너 (다른 부대로) 갈래, 안 갈래’, ‘너 안 가면 중벌 받는다’ 등 윗선의 강한 협박과 회유가 이어졌다. 결국 국군대구병원으로 2014년 4월 발령 났다. 한 달 반여 뒤 사망했다.”

이 : “판결문을 보니까 가해자가 금고에 집행 유예를 받았다. 길가에서 걸어가다가 차가 추돌해 숨졌다.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가족끼리 합의를 봤더라.”

김 : “죽음에 대한 의혹은 따지지 않는다. 그 이전 50일 동안 관리자들이 회유하고 괴롭힌 것이 문제다. 여기에 가담했던 관리자들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인권침해범으로 국가에서 이익 주는 것을 모두 박탈시켜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군 인권이 신장되는 것 아닌가. 김석중씨는 내 방에 하루 두 번씩 찾아와 고통을 호소했다. (이재석 : 그때 사령관은?) 그 당시 사령관은 옥도경이었다. 지속적으로 회유하고 겁박하는 걸 봤을 때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 반드시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 그 친구에게 ‘대갑질’한 요원들을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군 인권 신장을 위해서.”

이 : “김석중씨는 김 선생님에게 양심 선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씨가 갖고 있던 자료들은 이미 국방부 조사본부가 압수했던 자료로 보인다. 그가 양심선언을 한다고 했을 때 내부 고발자가 없었던 때였다. 만약 김씨가 본인 말대로 양심선언을 했다면 현직이 최초 고백하는 것이니 파장이 매우 컸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못다한 말이 있다면?

이 : “KBS 보도국장단이 이 특종을 막았을 때 논리가 ‘증거를 가져와라’였다. 국방부 TF 조사 결과와 국회 자료 등을 통해 김 선생님 증언은 사실로 드러났다. KBS 보도국장단은 이에 대해 유감 표명 하나 없다. 과거 정지환 전 보도국장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어떻게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며 보도를 막았다. 마찬가지다. 저들은 최소한의 사과조차 없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뉴스9’을 만들고 있다.”

김 : “댓글 사건은 보수 진영에서 진상규명을 반대하니까 약간 보수적인 KBS가 특종을 치면 상당한 파급이 되겠다 싶었다.”

이 : “굴욕적인데요.(웃음) 저와의 신의 때문에 KBS를 찾은 것이라고 하셔야 하는데요.(웃음) 어쨌든 KBS 파업뉴스로 파장이 컸고 기자상도 두 개나 받았다. 특종은 이번 KBS 파업에 큰 동력이 됐다. 만약 KBS보도국장단이 승인했다면 지금처럼 사안이 커졌을까 생각해본다. 보도를 자기들 마음대로 마사지해서 힘을 빼지 않았을까. 보도국장단을 비판하면서도 이렇게 양가적 감정이 든다.”

김 : “왜 댓글을 주도한 실무자들은 장관에 보고도 하지 않고 청와대를 왔다갔다 했을까. 그렇게 청와대를 왔다갔다한 군 인사들이 수사에 직면하기 전에 양심 고백을 했으면 좋겠다. 진실을 밝혀야 우리 안보가 제대로 자리잡고, 국론도 분열되지 않는다.”

이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다. 김 선생님 폭로를 담은 파업뉴스팀 보도는 군 댓글공작 문제의 포문을 열어젖힌 것이긴 하지만 당초 이분이 원했던 KBS 뉴스9 형태가 아니었기에 나름 한계도 있었다. 설령 김관진 구속 등으로 군 댓글 문제가 많이 공론화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당초 KBS기자를 믿은 제보자에게 뒤늦은 예의를 갖추고 싶다. KBS 저널리즘을 우리 스스로 바로잡는 차원에서라도 김 선생님이 KBS 뉴스9 스튜디오에 나오셔서 못다 한 육성을 시청자들에게 전해드려야 한다. 그것이 KBS 저널리즘의 새 출발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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