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경제’에 전자산업 재해노동자를 지원하는 인권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고 허위사실을 적시했다며 천만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9단독 재판부(판사 정일예)는 지난 2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뉴데일리경제(이하 뉴데일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보도행위로 인해 원고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인격권이 침해됐다”며 “원고에게 위자료 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법원은 뉴데일리가 2015년 8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작성한 기사 7건 등에서 반올림에 대해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고 인정했다.

▲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과 언론인권센터,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22일 오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언론보도피해 공익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하늬 기자
▲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과 언론인권센터,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22일 오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언론보도피해 공익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하늬 기자

뉴데일리는 이 기간 동안 “반도체 공장과 백혈병 등 발병이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론의 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음에도 반올림이 이와 반대되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거나 “근로자 140명이 암 진단을 받고 50명이 사망했다는 반올림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수회 냈다.

그러나 법원은 보도가 인용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08년 및 2012년 조사결과,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 보고서가 “반도체 공장의 발암물질과 백혈병 등의 발병이 서로 인과관계가 없다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점이 없음에도 뉴데일리가 일부 내용만 발췌해 최종 결론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허위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법원은 ‘삼성전자 노동자 140명이 암 진단을 받고 50명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뉴데일리 보도에 대해서도 ‘원고는 주장의 이유를 소명했으나 피고(뉴데일리)는 위 사실의 존재를 입증할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허위 사실 적시”라고 판단했다.

뉴데일리는 같은 기간 기사 5건을 통해 “반올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익법인 설립을 주장한다” “반올림이 욕설을 퍼부으며 농성을 했다” “반올림이 술판을 벌이며 담배꽁초 및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버렸다” 등이라 지적하며 반올림을 비판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뉴데일리가) 소명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으며 2015년 10월20일 자 기사엔 반올림 집회 장면과 무관한 사실을 게재했다”면서 “이 부분 적시 사실도 허위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법원은 또한 뉴데일리가 반올림에 대해 “지나치게 경멸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으로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뉴데일리는 2015년 11월26일 “집회가 벼슬인 마냥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억지주장을 일삼는 반올림의 민낯”, “가해자 삼성 상대로 싸운다는 낯 뜨거운 프레임을 세워놓고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 등의 표현이 담긴 비판 기사를 작성했다.

뉴데일리는 이어 2016년 1월18일 기사엔 “시위와 싸움을 훈장으로 여기는 전문 시위꾼들이 반올림을 장악”이라고, 같은 해 4월12일 기사엔 “반올림 시위가 막장 집회로 변질되고 있다”, “변죽이라도 울려 이목을 끌어보겠다는 얄팍한 술수를 부리는 것” 등이라고 보도했다. 7월12일엔 “놀 거 다 놀면서 벌이는 집회”라며 반올림이 주최한 집회를 폄하했다.

법원은 “아무리 공적인 존재의 공적인 관심사에 관한 문제 제기가 널리 허용돼야 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정황의 뒷받침도 없이 악의적으로 모함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면서 “아무리 비판을 받아야 할 사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멸적인 표현으로 가하는 일은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이번 판결로 악의적 표현 등의 이유로 언론사를 대상으로 청구한 민사 소송에서 두 번째 승소를 거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4단독 재판부는 지난 7월13일 인터넷 매체 ‘디지털데일리’의 모욕죄가 인정된다며 반올림에 위자료 천 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 반올림이 문제를 제기한 디지털데일리 기사 제목. 디자인=이우림 기자
▲ 반올림이 문제를 제기한 디지털데일리 기사 제목. 디자인=이우림 기자

문제 기사가 보도된 시점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조정권고안을 둘러싸고 반올림과 삼성전자 간 갈등이 격화된 때다. 삼성전자는 2015년 9월3일 조정권고안에 근거하지 않은 자체 보상 절차를 추진했고 반올림은 이를 규탄하며 2015년 10월7일부터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반올림은 2016년 9월부터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제기해왔다. 반올림은 “(해당 시기 부터) 일부 언론사가 ‘삼성은 직업병 문제 해결에 나섰는데 반올림이 이를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냈다”면서 “기사 내용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 결국 반올림과 함께 하는 피해가족들까지 모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소송 취지를 밝혔다.

반올림은 지난달 30일 한국경제, 문화일보, 아시아경제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반올림은 13일 입장문을 내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관해 모든 언론이 같은 생각과 입장을 가질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최소한의 원칙과 양심마저 저버린 언론사들을 상대로 법적인 조치를 이어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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