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측 피고인들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영재센터)에 지급한 ‘16억 원 뇌물’을 둘러싸고 1심보다 구체화된 논리로 ‘사회공헌 활동’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부실한 내부 심의 과정은 “사회공헌을 우선시한 결과”라고, 피고인들의 뇌물 지시 정황은 “제일기획 측의 검토 요구”라고 주장하며 1심 유죄 근거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강기재 삼성전자 과장은 9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13부(정형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 뇌물 사건’ 항소심 5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영재센터 후원제안서를 검토한 결과 스타 선수들의 재능기부로 유망주를 발굴하고 동계스포츠 저변을 확대하는 사회공헌적 성격이 충분했다”고 주장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혐의 등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혐의 등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민중의소리

삼성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온 강 과장은 ‘영재센터 후원금 지급 과정이 지나치게 부실했다’는 특검 측 주장에 “특검이 지적한 사안은 단체 후원 여부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영재센터가 삼성에 전달한 후원제안 문건 두 편엔 비문, 오기가 다수 발견되며 구체적인 사업계획 내용도 누락됐다. 5억5천만 원이 지급된 ‘1차 후원’ 당시 사업계획서엔 영재센터가 문화교류사업 및 남북교류사업을 추진한다고 적혀있으나 구체적인 사업 내용이나 객관적 자료는 기재돼있지 않았다.

강 과장은 이에 대해 “다른 사업들을 더 집중적으로 봤다”면서 “(우리 부서는) 세부 사항까지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강 과장은 앞선 검찰 조사에서 영재센터가 제시한 사업계획서에 대해 “다른 제안서와 비교했을 때 각 항목에 대한 객관적 수치나 구체적 자료가 부족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강 과장은 특검 측 지적에 “이들이 ‘어떤 예산을 갖고 어떻게 움직인다’를 보기보다는 어떤 취지로 센터를 만들었고 이 센터를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한 “그들의 디테일한 일정이나 예산은 우리 부서가 고려할 사안이 아니”라면서 “(검찰 진술은) 삼성이 얻는 ‘베네핏’(benefit·후원계약에 따른 권리를 뜻함)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5억5천만 원 후원금 지급 결정이 완료된 후 영재센터 측과 ‘베네핏’을 협의했다. 삼성전자는 2015년 9월25일 영재센터로부터 삼성전자에게 보장되는 권리를 협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재센터 1차 후원금 지급 품의서를 작성했다.

강 과장은 5일 후인 9월30일 영재센터 직원에게 “아직 내부적으로 후원계약서 검토가 되지 않았다면 첨부한 계약서에 수정할 내용을 반영해서 보내달라”며 직접 계약서 양식을 전송했다. 9월30일 사업자등록증도 발급받지 않은 상태였던 영재센터는 당일 삼성전자 측 연락을 받고 급하게 등록절차를 거쳐 그날 저녁 ‘퀵서비스’를 통해 삼성전자에 계약서를 보냈다. 삼성전자는 같은 날 후원급 지급 내부 결재를 마쳤다.

강 과장은 이와 관련해 “(센터의) 취지가 좋았다”며 “사회공헌성 차원에서 위(상급자)에서 약속을 먼저 하고 그 후에 받아야 할 것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해명했다.

강 과장은 “사회공헌 성격이 강할수록 (권리 확보 수준 여부는) 판단이 대상 아니”라고 말했다.

과거 진술과 미묘하게 바뀐 증언… 미전실 자리에 제일기획 등장

강 과장은 검찰 조사 시 말했던 진술을 법정에서 정정했다. 그는 특검 측이 “영재센터 후원이 급하게 이뤄진 이유로 ‘상급자의 말이나 분위기를 봤을 때 상부에서 어떤 압력을 받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진술했다”고 지적하자 “저렇게만 써놓으니 이상하게 보이는데 압력이 아니라 푸쉬를 받는 것으로 느껴졌다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영재센터 후원금 명목의 뇌물 지급 과정에 삼성 미래전략실이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삼성전자 측에 후원금 지급을 요구한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는 2015년 9월24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영재센터 후원금이 최대한 빨리 지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보고 문자를 보냈다.

특검 측이 후원금 지급을 지시한 ‘상부’로 미래전략실을 지적하자 강 과장은 “제일기획의 스포츠 전략 기획본부가 맞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날 제일기획 스포츠 전략 기획 본부가 삼성그룹 스포츠 후원과 관련해 대외적인 컨택포인트 역할을 한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한편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는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후원금 중 3억여 원을 최씨가 실소유주라 알려진 누림기획 및 더스포츠엠에 송금해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 8일 장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오는 16일 오전 10시에 열릴 제6회 공판엔 주민근 삼성전자 과장이 삼성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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