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관련 문서조작 의혹이 드러났다. 이 사안을 적지 않은 보도국 구성원들이 파업 중인 KBS·MBC는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2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 안보실 공유폴더에서 지난 정권 당시 작성된 전산 파일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위기관리센터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오전 9시30분 세월호 침몰 상황을 보고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에게 10시에 보고했고 10시15분에 관련 지시가 처음 내려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문건 조작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9시30분에 세월호 관련 보고를 받았지만 45분 간이나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으며, 문서 조작을 통해 책임 회피에만 골몰한 셈이다.

그런데 12일 긴급 브리핑 이후 자유한국당은 ‘신적폐저지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문건 공개를 빌미로 국정감사에서 ‘정치보복’에 나섰다는 물타기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최초보고 시점 조작 의혹 등 세월호 참사 관련 재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자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6일 “이미 법적으로 종결된 사안을 거론하는 것은 국정감사를 물타기할 정도로 집권여당이 궁색해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KBS와 MBC 뉴스의 관련 보도도 여야 공방 프레임에 머물고 있다. 청와대 발표 내용을 그대로 전한 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 불거지는 공방이나 주장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식이다.

▲ 'KBS뉴스9'의 지난 12일 보도 화면 갈무리.
▲ 'KBS뉴스9'의 지난 12일 보도 화면 갈무리.

청와대 발표가 있던 지난 12일 KBS 뉴스9에서는 “민주 ‘경악·철저 수사’…한국 ‘국감 물타기’” 리포트가 나왔다. 해당 리포트에서는 “청와대의 이 같은 발표에 여야 정치권은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며 “여당은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고, 야당은 국감 물타기다,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며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보도된 MBC 뉴스데스크 “靑 ‘박근혜 정부, 세월호 보고 일지 사후 조작 의혹’” 리포트도 “청와대가 이전 정부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점 등을 사후에 조작한 정황이 있다”면서도 “자유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 구속 연장 여부 결정을 앞둔 시점에 청와대가 이런 의혹을 제기한 배경에 의구심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특히 이 리포트에는 당시 상황을 잘 안다는 ‘구여권 관계자’ 멘트도 담겼다. 익명의 구여권 관계자는 “사고 사진을 보고서에 넣으려다 최초 보고가 예정보다 늦어졌다고 들었다며, 실제 보고는 10시가 맞다고 주장했다”고 청와대 발표를 반박했다.

▲ 지난 12일 MBC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 지난 12일 MBC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자유한국당은 16일 국감 2주차 정국 대응 전략으로 노무현 전 정권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 등 ‘원조 적폐’에 대해 강력히 진상규명을 하겠다며 나서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세월호 당시 전직 대통령의 일정 문제 등 세월호 전면 재수사를 운운하며 정치보복과 국정감사 물타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서도 “노무현 전 정권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 등 ‘원조 적폐’에 대해서도 모든 법적, 정치적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KBS와 MBC 보도 역시 세월호 보고 일지 조작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나선 것과 자유한국당이 이에 맞서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640만 달러 수수 의혹 건을 들고 나선 것을 함께 보도하고 있다. 

16일 KBS 뉴스광장 “與 ‘세월호 재수사 촉구’…한국 ‘盧 유가족 고발’” 리포트는 “더불어민주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 행적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촉구한데 대해, 자유한국당은 640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 유가족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보도했다.

▲ 16일 KBS 뉴스광장 보도 갈무리(위)와 지난 15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갈무리(아래).
▲ 16일 KBS 뉴스광장 보도 갈무리(위)와 지난 15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갈무리(아래).

지난 15일 MBC 뉴스데스크 또한 “與 ‘세월호 조작 의혹 철저 규명’·野 ‘盧 일가 고발’” 리포트에서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안보, 졸속 정책 등 이른바 ‘신 적폐’ 저지를 위한 당내 특위를 공식 출범시켰다”고 보도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 640만 달러 수수 의혹 관련 고발 소식을 전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청와대가 제기한 박근혜 정부 보고 조작 의혹 등의 철저한 규명으로 맞불을 놓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정권 당시 여권이었던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세월호 참사 관련 새로운 의혹이 드러날 때마다 불편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이 ‘정치 보복’과 ‘신적폐’라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에 대한 초점 흐리기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 

세월호 문건이 공개된 이후 자유한국당이 느닷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고발하며  640만 달러 뇌물공여 의혹의 전말을 파헤치겠다고 주장하고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방침과는 별개로 KBS·MBC 등 언론이 이런 ‘물타기’ 전략을 그대로 보도해주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 행해진 의혹이 드러나자 자유한국당이 정치권 내 공방을 일으켜 이슈를 흐리려는 의도를, 기계적 중립이라는 명목 하에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건 물타기에 힘을 싣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