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쇼미더머니6’의 우승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넉살이 아닌 행주에게 돌아갔다. 래퍼 행주의 우승은 긴 무명생활과 난치병을 딛고 노력한 성공 서사였다. 치열한 노력 끝엔 화려한 무대와 1등이라는 왕관이 돌아온다는 쇼미더머니의 서사는 행주의 노래 가사처럼 끝이 없는 터널을 지나가는 듯 절망에 선 청년들에게 위로가 된 것은 분명해보인다.

단순히 ‘쇼미더머니6’의 결말을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오나니’라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을까.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은 음악을 평단의 인정과 앨범 발표 보다 철저히 인기도와 공연 횟수에 따른 결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행주의 성공은 노력하는 자의 우승이기도 했지만 7년 차 베테랑 래퍼가 상금을 거머쥐게 된 성공담이기도 하다.

쇼미더머니는 기업 공채처럼 ‘신입’보단 ‘경력’ 지원자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시즌6에는 2004년 데뷔한 베테랑 래퍼 더블K와 전 시즌에서 주목받았던 해쉬스완, 주노플로, 면도 등이 재차 출연했다. 홍대 사이퍼 문화를 지켜 온 ADV크루의 수장 JJK까지 지원자로 나섰다. 이번 시즌 내내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넉살 역시 이미 인정받는 실력파 래퍼다.

김수아·홍종윤이 쓴 책 ‘지금 여기 힙합’은 한국 힙합 문화로 한국 청년 문화를 짚어낸다. 쇼미더머니에서 출발한 한국 힙합 문화는 이제 대중문화의 한 주류로 자리잡았다. 이 책은 한 음악 장르로서의 힙합 뿐만 아니라 힙합에 담긴 루저와 성공신화, 여성혐오 등의 키워드로 한국 사회 청년 문화를 읽어낸다.

힙합에도 신자유주의 시대 자기계발서사가 맞물려있다. 자기계발 서사는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주체가 주인공이다. 노력 끝에 인기를 얻고 화려한 부를 얻는 것, 이를 대표하는 한국 힙합 래퍼는 도끼다.

도끼가 속한 일리네어 레코즈는 2011년 도끼와 더콰이엇이 설립한 레이블이다. 일리네어 레코즈가 다른 레이블과 다른 게 있다면 래퍼들이 자신이 가진 비싼 자동차와 집을 자랑하는 ‘머니 스웨거’라는 점이다.

도끼가 스스로 그려낸 성공 내러티브는 명확하다. 기획사 중심의 현 음악산업에 편입되지 않고 ‘모두가 한국에선 안 된다’고 했던 미국 힙합 트렌드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그들의 가사에는 대형 기획사가 아이돌 가수를 통해 쏟아내는 진부한 사랑 가사와 달리 기존 산업질서에 편승하지 않고도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도끼가 아이돌의 미덕으로 꼽혔던 겸손 대신 허세를 내세울 수 있던 것도 이 덕분이다. 기존 아이돌이었다면 자신이 가진 값비싼 시계를 있는 그대로 자랑하는 일은 대중들로부터 불쾌하다는 반발에 부딪히기 쉽지만, 도끼는 누가 뭐라하던 자기 자신을 그대로 내보이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 도끼의 돈 자랑이 불편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도끼에겐 ‘머니 스웨거’라는 정체성은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일리네어 레코즈는 또한 ‘머니 스웩’을 뽐내는 가사가 단순히 허세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도끼는 10대 때 올블랙이라는 힙합 그룹으로 데뷔해 연예 기획사와 계약을 했다가 거액의 빚을 졌다. 지금 가진 롤랙스 시계는 도끼에겐 오롯이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다.

여기에 도끼는 자신이 얼마나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증명해보이기도 한다. 2008년 한 인터뷰에서 도끼는 “저는 절대 부잣집 아들이 아니고 절대 대궐에서 음악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문신 있고, 학교 안 다닌다고 양아치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최대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편견을 부인했다. 자신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점도 도끼는 강조한다.

20171001_172022.jpg
도끼의 성공담과 한국식 신자유주의 성공서사, 그리고 쇼미더머니는 이 지점에서 맞아떨어진다. 도끼의 이야기는 개룡남(개천에서 나서 용이 된 남자)식의 성공 스토리다. 특히 쇼미더머니라는, 노력을 통해 인기를 얻고 돈을 번다는 시스템과 만나 도끼의 성공담은 많은 이들에게 ‘나 뿐만 아니라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도 준다.

힙합에서 음악적 소신과 진정성을 강조하는 건 비단 도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힙합씬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넘쳐나는 도끼와는 배치되지만, 젊은 ‘루저 남성’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인기를 얻은 블랙넛이 대표적이다.

블랙넛은 힙합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MC 기형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 블랙넛은 가난하고 왜소한 자기 자신을 비관하는 가사를 많이 썼다. 블랙넛은 그런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며 애꿎은 여성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블랙넛 뿐만아니라 송민호 등 많은 래퍼들이 여성혐오적 가사로 논란을 빚었다.

여성은 힙합에서도 부차적인 존재에 머물러있다. 쇼미더머니와 유사하지만, 여성 래퍼들만의 경쟁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한 여성 래퍼들은 “여성성을 래퍼의 진정성과 대립시키고,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성적 대상화를 부정”하며 다른 래퍼들과 경쟁해야 하는 난제에 부딪힌다. 쇼미더머니와 달리 ‘언프리티 랩스타’가 그리는 성공 스토리는 프로그램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여성’ 랩스타는 ‘언프리티’해도 능력있다는 서사다.

‘언프리티 랩스타’가 래퍼로서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래퍼라는 굴레에 집중하다보니 웃지못할 해프닝도 불거진다. 랩으로 실력을 보여주겠다면서도 결국 외모가 주된 디스 주제가 되기도 했다.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3에 출연한 제이니는 치아교정을 했던 육지담을 향해 ‘이빨 밀당녀’라고 디스했다. 쇼미더머니와 달리 ‘언프리티 랩스타’는 여성 래퍼들의 성장스토리보다 ‘캣파이트’를 주요 흥미요소로 만드는 모습도 보였다.

소비자로서의 여성들도 혼란스럽긴 매한가지다. 래퍼 외모를 보고 힙합을 듣는다며 같은 소비자인 남성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래퍼로부터는 가사로 조롱과 비하를 받는다. 여성 소비자들은 ‘굳이 얼굴을 보고 힙합을 듣는 건 아니’라며 진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위치에 놓안다. 여성혐오가 담긴 가사에도, 원래 미국 본토 힙합 문화가 그렇다며 ‘힙알못’ 처지가 되는 일도 빈번하다.

“한국 청년에게 힙합은 가장 인기 있는 장르다. 힙합의 논란과 인기는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 욕설과 혐오 표현이 힙합 고유의 특성으로 칭송되는가 하면, 그 때문에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양가성이 힙합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힙합이 대중에게 매혹적인 이유이자,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