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방송 정상화 방침을 ‘언론 장악’이라고 주장하는 친 박근혜 성향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MB 정부 국가정보원의 방송사 사찰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원세훈 원장 시절 MB 정부 국정원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해 전부터 ‘라디오 시사 프로 편파 방송 실태’ 조사를 벌이고 “방송사 차원의 노력과 함께 행정 제재와 왜곡 활동에 대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조사한 대상은 KBS, MBC, CBS, SBS, PBC, BBS 등 6개 방송사 아침 프로그램으로 진행자 및 제작진을 ‘현미경 사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이 ‘출근길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장악하겠다는 의도였다.

▲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민중의소리
▲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민중의소리
MBC 라디오 진행자였던 손석희 아나운서(현 JTBC 보도 담당 사장)나 방송인 김미화씨가 사찰 대상으로 부각됐지만 MB 정부 국정원은 현재 ‘친박’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을 사찰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김재원 한국당 의원이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을 받지 못했던 김 의원은 그해 10월 BBS(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원의 아침저널’을 진행했다. 국정원은 ‘김재원의 아침저널’에 대해 “진행자가 박근혜 캠프 출신으로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 등 편파 방송을 한다”고 문제 삼았다.

실제 김 의원은 2007년 박근혜씨가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캠프 대변인과 기획단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당 내에서도 대표 친박으로 꼽힌다. 미디어오늘은 김 의원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그는 문자만 읽을 뿐 답변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맡았던 KBS 기자 출신 민경욱 한국당 의원도 사찰 당하긴 마찬가지였다. 민 의원은 기자 시절 KBS 라디오 ‘열린토론’ 진행자였는데 국정원은 “진행자 민경욱씨가 중량감이 떨어져, 발언 시간 배분에만 급급해 일방적 정치공세를 방치한다”고 혹평했다.

민 의원 역시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하고 있지 않지만 자신의 페이스북에는 “정치적 편향성이 없이 토론자들에게 고르게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은 토론 진행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 이석우 자유한국당 디지털정당위원장. 사진=김도연 기자
▲ 이석우 자유한국당 디지털정당위원장. 사진=김도연 기자
PBC(평화방송) 보도국장 출신인 이석우 한국당 디지털정당위원장도 MB 국정원 사찰을 피할 수 없었다. 국정원은 그가 진행한 PBC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의 오아무개 PD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좌편향 종교인들의 발언을 부각해 보도한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4월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 강효상 한국당 의원과 우익단체 ‘바른언론연대’가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김재철 전 MBC 사장의 경우 MB가 뒤를 받치고 있어 본인 소신이 관철됐다. KBS 사장은 이에 비하면 약하다”며 언론을 권력 쟁취 수단으로 간주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이들이 소속된 자유한국당은 MBC를 상대로 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과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관리·감독 조치를 ‘문재인 정부의 언론장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민 의원의 경우 한국당 ‘방송장악저지 투쟁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김장겸 MBC 사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원세훈 원장 시절 국정원의 언론 장악 시도와 전 방위적 사찰이 드러났고 현 한국당 소속 정치인들도 사찰 피해자라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한국당의 방송 정상화 ‘발목잡기’ 명분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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