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가 1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발언을 오역했다. 대가는 컸다. 청와대가 1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역 보도한 언론에 공개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시할 만큼 사건은 커졌다. 청와대가 언론보도 브리핑을 자청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통화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I spoke with President Moon of South Korea last night. Asked him how Rocket Man is doing. Long gas lines forming in North Korea. Too bad!”라고 적었다. 이승우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은 트럼프의 트윗을 소개하며 ‘Long gas line forming’이란 표현을 두고 “긴 가스관이 북한에 형성 중이다. 유감이다”라고 해석해 보도했다.

‘Long gas lines forming’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사용하던 수사로, 기름을 구하기 위해 주유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이 섰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가스관은 보통 ‘Gas Pipe’로 표현한다. 문제는 오역보다 오역에 따른 해석이었다. 연합뉴스는 트럼프의 트윗을 두고 “이는 문 대통령이 지난 6일 러시아 방문을 통해 한국과 북한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사업 구상을 밝힌 부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라고 보도했다.

▲ 9월17일 연합뉴스 트윗.
▲ 9월17일 연합뉴스 트윗.


▲ 9월17일 연합뉴스 기사.
▲ 9월17일 연합뉴스 기사.
연합뉴스는 “미국 정부가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맞서 전방위 경제 제재를 통해 돈줄 죄기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의 우방인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는 점을 비판한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라고 보도했다. 오역을 바탕으로 트럼프 트윗을 ‘러시아 가스관 사업 구상에 대한 문재인 정부 비판’으로 엉뚱하게 해석한 대목이다. 더욱이 해당 트윗이 문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 올린 것이어서 파장은 커졌다.

연합뉴스 오보는 확산됐다. KBS YTN 조선일보 뉴시스 한겨레 서울신문 매일경제 문화일보 등 많은 언론이 연합뉴스 보도를 받아썼다. KBS는 연합뉴스의 오역을 바탕으로 “한국이 북한의 우방인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점을 비판한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라고 보도했다. 뜻하지 않게 문재인정부 외교라인이 ‘의문의 1패’를 당한 장면이다.

해당 연합뉴스 기사는 현재 <트럼프 “북한서 주유하려고 길게 줄서”>란 제목으로 수정됐다. 이 기사는 트럼프가 “북한에서 주유하려고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딱하다”라고 말했으며 “이는 유엔의 강화된 대북 제재로 인해 북한이 석유 공급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비유”라고 보도했다. 현재 이 기사에는 1000여건의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오역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기자들은 베끼기에 급급했고, 정작 독자들이 오보를 잡아낸 셈이다.

한 누리꾼은 연합뉴스의 이번 오보를 두고 “전형적인 기자의 뇌내 망상이다. 아무 근거도 없는 주장을 ‘풀이된다’, ‘지적이다’ 이런 식으로 멋대로 갖다 붙여서, 새로운 논란거리를 하나 창조하려던 셈”이라고 비판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트럼프 트윗 오역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킨다고 오해받을 뻔했다”며 “오역한 언론들은 문 대통령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 KBS는 연합뉴스 기사의 오역이 드러나자 본문을 수정했다. 하지만 미처 제목을 바꾸지 못했다.
▲ KBS는 연합뉴스 기사의 오역이 드러나자 본문을 수정했다. 하지만 미처 제목을 바꾸지 못했다.
연합뉴스는 18일 오전 사고를 내고 “오역으로 인해 잘못된 사실과 해석이 보도됐다”며 “28분 후 고침기사를 송고하고 틀린 내용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의 외교·안보와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과 관련된 사안에서 사실관계를 틀리게 보도해 혼선을 빚은 점을 고객사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오보를 낸 한겨레도 18일 ‘바로 잡습니다’를 내고 사과문을 올렸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금 현재 (외교안보) 상황이 매우 엄중하고 민감한 시점”이라며 “일부 언론의 보도가 어떨 때는 너무 아슬아슬하고, 외국과 관계가 꼬일 수 있게 하는 지점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우려하며 정확한 보도를 당부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