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010년 작성하고 청와대에 보고한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방안’ 문건이 공개됐다. 문건에 따르면 ‘좌편향’ 간부들은 반드시 퇴출하고 간부급 기자·PD의 성향을 사찰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당시 이명박정부가 전방위적으로 KBS 인사에 관여하려 했던 정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가 18일 공개한 국정원의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 보고서에는 ‘좌편향’ 간부는 반드시 퇴출해야 한다는 표현이 적시돼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언급과 함께 2010년 6월4일에 예정된 조직개편을 언급하며 이때 면밀한 인사검증으로 부적격자를 걸러낼 것을 언급했다.

해당 보고서는 2010년 5월 당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의 지시로 국정원이 2010년 6월3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 라디오 주례 연설 중인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 라디오 주례 연설 중인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실제로 당시 단행된 조직개편을 통해 구성원 반발을 무릅쓰고 ‘추적60분’ 등 PD가 제작하는 시사프로그램을 보도본부로 강제로 이관하는 조치가 있었다. 이에 대해 구성원 일각에서는 제작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는 개편이었다는 반발이 쏟아진 바 있다.

또한 보고서에는 국정원이 KBS 사찰을 통해 ‘좌편향’ 기자와 PD를 솎아내 퇴출을 유도한 구체적 정황도 드러난다.

국정원은 ‘사원행동’,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 ‘편파방송 했던 자’ 등을 언급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배제할 것을 주문하는 등 사실상 인사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원행동’은 현 언론노조 KBS본부의 전신 격인 임의 단체로, 2008년 정연주 전 사장 해임 반대를 위해 모였던 KBS 구성원 모임이다.

보고서에서는 구체적으로 일부 KBS 기자·PD 실명을 언급하고 그 이유도 함께 적시했다. 실명 언급된 용태영 당시 취재파일 4321부장에 대해 보고서에서는 “정연주 전 사장 추종하는 인물로 새노조를 비호하고 반정부 왜곡보도에 혈안(이)”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소상윤 라디오국 EP는 “사원행동 출신, 과거 편파방송 자성없고 좌파 세력 비호”를 했다는 이유로, 이강현 드라마국 EP는 “PD협회장 출신, 여전히 좌편향 PD들과 연계하며 편파방송 꾸밈, 작년부터 반미 종북 시각의 드라마 제작 추진”을 이유로 낙인찍혔다.

‘추적60분’을 제작했던 윤태호 PD를 지목한 보고서에서는 “사원행동, 불법행위 주도, PD들 편파방송 방치, 노무현 특집, 천안함 좌초 의혹 제기”라는 이유를 함께 거론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꼽힌 인물은 김영신·이상요 PD이며, 최춘애 KBS아메리카 당시 사장은 “현지에서 정부 정책 비판, 안보불안 부추기고 좌편향 언행”을 한다며 지목당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좌편향’이 아니더라도 MB 정부에 적극 동조하지 않는 간부 역시 ‘무소신 간부’로 분류돼 관리대상이 됐다.

‘무소신간부’로 거론된 인물 중 한 사람인 임창건 당시 보도국장에 대해 보고서는 “시사기획 쌈 출신, 편파방송 탈색 주력했지만 보도책임자 자질 미흡, 천안함 사건, 노무현 1주기 등 수동적 업무 자세”라고 평가했다. 오진산 당시 기획국장은 “이원군 전 부사장 쪽 사람으로 좌파 눈치 보기 체질화돼있어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고 적시했다.

국정원이 KBS 고위간부 인사에 관여한 듯한 흔적도 드러난다. 국정원은 부사장과 본부장 인사를 두고 “김인규 사장과 협의해 처리”한다고도 표현했다. 비리에 연루된 간부는 “신상필벌, 기강 문란 행위 엄단”을 해야 한다고도 적시했다. 김인규 당시 KBS사장 ‘최측근’ 간부 5인에 대해서는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내용도 있다.

새노조는 이에 대해 “정부가 언론사인 KBS를 정부 기관처럼 직접 관리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새노조 측은 국정원이 당시 문건을 만들게 된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구성원 성향을 꼼꼼하게 분류할 수 있을 만큼 정보를 얻기 위해서 KBS 내부 협조자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새노조는 고대영 현 사장을 지목하며 “당시 보도국 실세였던 고대영 현 사장이 청와대-국정원 방송 장악 공작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협조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KBS새노조는 오후 1시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원 보고서에 언급된 당사자들이 직접 피해 사례를 증언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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