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 파업이 13일 차로 접어드는 가운데 방송 제작에 참여하는 비정규 노동자들도 파업 지지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신분 특성 상 파업을 적극 지지하며 제작 거부를 할 수도 없는 불안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을’인 이들은 파업 앞에서 딜레마에 처한다.

지난 11일 한국독립PD협회는 성명을 내고 “언론노조 KBS본부와 MBC본부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는 지지성명을 냈다.

프리랜서 신분인 MBC 라디오 리포터 12명도 11일 실명으로 성명을 내고 “비록 프리랜서이지만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지난 40년 간 리포터 선배들이 지켜온 정론직언의 신념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각자의 위치는 다르지만 모두 MBC의 정상화를 간절히 염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MBC 뉴스AD 5명도 지난 11일 발간된 언론노조 MBC본부 노보에서 “파견계약직이라고 해서 생각없이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존재가 아니다”며 “공정성을 잃은 MBC뉴스에 더 이상 일조하기 싫다”며 퇴사선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이들의 선언은 특히 방송 제작 환경 속에서 ‘을’ 지위에 처한 이들이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 방송계 비정규 인력들은 자칫하면 아예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위치에 서있기 때문이다.

▲ 게티이미지뱅크.
▲ 게티이미지뱅크.
방송계 프리랜서와 독립PD, 독립제작사 등은 신분 특성 상 파업 기간에도 정규직 제작진이 빠져나간 제작 현장을 고스란히 지켜내야 한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파업 지지 선언도 어렵게 결심해야 하는 것이지만 제작 거부에 동참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한 독립PD A씨는 “YTN 해직기자들은 9년 만에 복직이 됐지만 우리는 9년이 아니라 프로그램 하나 끝나면 그 다음 일을 받을 수 있을지, 혹은 이대로 쉬어야 할지도 알 수 없다”며 “심정적으로 파업을 지지하지만 공식적으로 제작 거부 선언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지위 때문에 파업으로 빠진 방송사 내부 인력 자리에 이들이 자연스럽게 투입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다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명확히 방송 제작 업무가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이들이 실제로 파업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지를 가늠할 경계 또한 매우 모호하다.

이런 모호한 경계 탓에 실제로 과거 파업 때는 이들의 신분을 악용해 방송사 일각에서 암암리에 독립PD나 독립 제작사 소속 외부 인력을 파업 대체인력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A씨는 “과거 파업 때도 상황이 해결되면 결제 처리 해준다며 일단 (독립제작사나 독립PD들에게) 추가 물량을 맡겨놓고는 정작 파업이 끝나면 인사이동으로 책임질 수 없게됐다며 어영부영 넘어가는 일들도 있었다”고 귀띰했다.

방송작가협회 소속 B씨는 “방송작가들의 경우 원고만 쓰는 것이 아니라 기획과 제작 등 방송제작 과정을 PD와 하고 있다”며 “파업 기간 동안 밖에 대놓고 말할 수는 없어도 어쩔 수 없이 방송 제작에 필요한 부분은 일부 도와주게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제작비보다 턱없이 적은 제작비만 받으면서 일하는 고충을 겪어온 독립PD와 독립제작사들의 현실은 두 방송사 파업 상황에서 딜레마를 한층 더 키운다.

독립제작사협회 소속 C씨도 “파업으로 피해가 있기도 하지만 방송 제작 물량이 외주로 더 넘어오는 상황은 솔직히 할 일이 늘어나는 거니까 좋을 수 밖에 없다”며 “일단 기회가 더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서 실제로도 MBC 사측에서 프리랜서 계약직 라디오뉴스 진행자에게 TV 관련 업무를 맡기는 등 파업 인력 대체를 요구하고 실행하려 했다는 증언이 공개된 바 있다.

<관련 기사: [단독] MBC 프리랜서 뉴스진행자 “나는 파업 대체인력 아냐”>

현재로서는 당장 외부 인력에 방송 물량 떠넘기기가 현실화되진 않은 상황이다. 언론노조 KBS본부와 MBC본부 양측에 따르면 초반에는 사측이 일부 프로그램에서 파업 이후 외부 대체인력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현재까지는 실제로 외부 인력이 파업에 참여한 인력을 대체해 투입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측은 “사측에서도 파업 대체인력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 같다”며 “김장겸 사장도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이번에는 최대한 내부 인력을 활용하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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