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정부는 경상북도 성주군 주한미군 기지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잔여 발사대 4기를 배치 완료했다. 지난 7월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응해 사드 추가 배치를 지시한지 40일만이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북한의 ICBM도발과 6차 핵실험 등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사드가 대한민국 영토 방어에 효용이 없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며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배치를 강행한 것은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함세웅 신부가 자신의 의견을 담은 글을 미디어오늘에 보내왔다. 이 글은 ‘사제들을 위한 강론 길잡이 115권, <선포와 봉사> 서론’에 담긴 글이다.<편집자 주>

민족의 얼과 생기를 되새겨야

저는 7월23일-8월4일까지,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시베리아 횡단 6,500km 철도 순례에 함께 했습니다. 바이칼 호수 산정에서는 남북의 화해와 일치, 세계 평화를 위한 공동체 기도를 올리고 카자흐스탄 알마티 대학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학술 모임으로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두 주간의 순례는 평화와 기억, 다짐과 활력, 단절과 비약을 체험하고 재현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러시아 문학 작품에서 읽고 상상했던 자작나무 숲 벌판을 가로 지르며 쉴 틈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기차 속에서 80년 전 고려인들이 끌려갔던 고난의 여정을 떠올리며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인 3500여 년 전, 히브리 인들이 이집트의 노역과 그 억압을 뚫고 나온 모세의 해방 여정도 되새기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이역만 리 이곳 시베리아 벌판에서 오로지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항일선열들을 생각했습니다.

아침에는 햇반을, 점심에는 식당 칸에서 러시아 음식을, 저녁은 라면 등을 먹으면서 한 기차 칸에서 4명이 함께 한 과정도 옛 신학교 생활의 조별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를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힘들고 불편했지만 죽음의 행진을 거쳐간 고려인 선조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여행은 보장 받은 아주 화려한 여정이었습니다. 여러 역을 거치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과 과정 그리고 민족의 고비고비를 생각하며 산상에 오르는 구도자의 발길과 숨결을 재현했습니다.

▲ 함세웅 신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함세웅 신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리즈돌 노예역에서 우리는 순례의 첫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1937년 9월9일, 고려인들의 첫 강제이주자 수백여 명을 화물칸에 싣고 떠난 역, 이 역을 우리는 ‘통곡의 역’이라 부릅니다. ‘통곡의 역’에서 우리는 고려인 선조들, 항일 순국선열들을 마음에 모시고 묵념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갈라진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을 이루자! 통일을 이루자!’를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부르며 하느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고려인들의 고난의 과정에서 새삼 뜨거운 ‘민족애’를 확인하며 연해주의 높은 하늘을 응시했습니다. 1862년 함경도 지방의 첫 12가족이 찾아와 일군 개척의 땅 연해주, 이곳이 바로 남북의 일치와 화해를 위한 이정표이며 길잡이 임도 확인했습니다.

첫날 저녁 블라디보스톡 고려인 문화센터에서 우리는 고려인들의 아리랑 노래와 부채춤 등 선조들의 귀중한 삶과 문화를 대면하며 민족 공동체를 새롭게 확인했습니다. 최재형, 이상설, 안중근 등 애국지사, 독립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리고 대한민국 첫 임시 정부가 태동한 ‘한인촌’을 둘러보면서 선열들의 130여 년 전의 뜨거운 숨결을 확인했습니다.

이튿날 저녁 우리 일행은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험난한 옛 여정을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하늘의 징표였습니다. 이 첫 여정이 바로 고려인들의 고난의 길, 그 재현이고, 독립선조들의 발길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바롭스크, 치하 등을 거쳐 3일 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습니다. 시베리아의 빠리라는 별칭을 지닌 이 도시가 바로 러시아 저항적 지성인들이 유배당했던 곳, 그리고 1921년에 우리 선조들이 고려 공산당을 창설한 현장입니다. 선열들의 숨결을 되새기고 조국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던 우리 선조들이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 등으로 나뉘어, 공산당 주도권 다툼으로 2000여 명의 무장 독립군들이 서로 싸워 목숨을 잃은 슬픈 사건, ‘자유시 참변’ 얘기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무섭게 찢었습니다. 결국 소련 공산군이 개입해 상해파와 우르쿠츠크파 모두를 전멸시켜 끝냈다는 이 사건으로 항일독립 무장 부대의 시대가 마감되었다는 가슴 아픈 얘기입니다.

주도권 다툼으로 결국 함께 죽어간 무장 독립군들,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에서 저는 탐욕이 바로 분열의 뿌리임을 새삼 깊이 생각했습니다. 주도권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 주도권 때문에 항일 독립 투쟁의 큰 가치를 놓쳤을까 하는 생각으로 온 몸이 저려왔습니다. 남북 분단의 현실도 한가지입니다.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갈등으로 서로 헐뜯고 죽이는 이 분단의 현실이 바로 100여 년 전 항일 독립군들이 서로 죽이고 갈라져 결국 소련 공산군에게 전멸 당했다는 과거의 사건의 재현임을 생각하고 더욱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 남북이 제 정신을 찾지 못할 때, 미국이 또는 중국이 제 3국이 무력으로 남북 공동체 모두를 전멸시킬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바이칼 호수 산상에 올라 남북의 일치와 화해,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제를 올리고 샤머니즘의 본산지인 이곳에서 조상들의 옛 문화, 우리의 뿌리를 확인했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레닌 동상 앞에서 우리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의 과정과 진전 사항을 생각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버스로 고려인들의 첫 도착지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도착해 추모제를 가졌습니다. 두어 시간의 추모제에서 우리는 조상들을 기억하며 특히 80여 년 전의 고려인들을 기리며 민족의 역사를 마음에 품고,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을 칭송하며 은총의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민족사적 진한 체험과 교훈 그리고 꿈을 안고 고향에 돌아오니 온통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만이 그득해, 시베리아 순례 체험에서 축적한 생기로, 다시 투쟁의 여정을 설정해야 할 때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2000년 남북 공동선언을 기초로 화해와 대화를 우선해야

북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습니다. 그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3-4배가 된다고 합니다. 온통 방송과 신문은 북의 핵 실험 소식으로 ‘그득’차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 청와대 관계자들은 연일 모임과 강한 발언을 쏟아내고 트럼프 아베 등은 북을 규탄하고 있고 중국도 발끈하고 있습니다. 북의 계속된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에 온 나라가 아니, 온 세계가 떠들썩합니다.

▲ 지난 4월15일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진=노동신문
▲ 지난 4월15일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진=노동신문
일제의 침략과 억압을 거치고, 6.25의 비극을 겪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 역대 수구 독재자 정치인들의 탄압과 거짓 음모에 맞서 싸워온 우리에게는 글쎄, 내공이랄까 타성이랄까, 눈앞에 폭탄이 떨어져야만 전쟁이 터졌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의 여유와 힘이 있습니다. 방송과 신문, 정치인과 시민, 전문가 등 우리는 모두 할 것 없이 나름대로 일가견은 갖고 있지만 어쨌든 속수무책이라 답답한 상황에서 의지적으로 덤덤한 자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글쎄, 주일미사에 오는 착한 교우들에게 사제들은 성경말씀을 어떻게 풀이하여 무슨 강론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합니다. 바로 지금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진지하게 여쭙고 그 답을 얻어 기도하며 교우들에게 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새삼 칼 바르트의 가르침을 떠올립니다. 설교란 바로 성경과 신문을 번갈아 읽으며 그 안에서 세상의 문제점을 포착해 하느님의 말씀으로 녹여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미사 때마다 우리는 평화를 염원하고 평화의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평화! 그렇습니다. 평화를 확신하고 평화를 신념으로 평화를 복음으로 크게 아주 크게 외쳐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와 같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라”(2,4) 는 말씀을 더 크게 외쳐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 사제들도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평화를 크게 외치지도 않고 평화에 대한 확신도 의지도 뚜렷하지 못합니다. 재의 수요일, 요엘 예언서의 말씀대로 바로 오늘 우리는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심장’을 찢어야 합니다. 회개의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9월6일 경향신문 30쪽에서 이대근 논설 주간은 “여섯 번째의 실패로 충분하다”는 칼럼에서 북이 여러 차례 핵 실험하는 동안 미국과 한국이 무엇을 했는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우리 남한은 미국 식민지 처지와도 같다는 것입니다. 이대근 논설주간은 남북 관계의 근원적 개선을 위해 남북 양자회담과 함께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여러 차례 대화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이 외면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언행이 바로 북보다는 늘 미국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지난 6월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사드 철회 평화행동’ 집회에 성주 주민들이 사드 철회 촉구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6월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사드 철회 평화행동’ 집회에 성주 주민들이 사드 철회 촉구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우리는 우선 미국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과 미국이 대화하도록 우리가 나서서 도와줘야 합니다. 어느 분이 신문 칼럼에서 북 핵은 결코 북이 포기할 수 없는 심장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심장을 떼어버리면 죽는데 어떻게 그 심장을 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인정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제안에 정치인들과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아쉬운 점은, 국방부 관계자들이 사드 배치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도 누락한 채 거짓 보고를 했으니,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조사하고 철저히 그 과정을 밝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거짓 과정은 오간대가 없고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비록 임시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사드 4기를 추가 배치하기로 한 것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모순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를 실로 묶어서는 안됩니다.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는 결단의 지혜를 지녀야 합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를 진지하게 되물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를 속이고 역사와 민족을 결과적으로 배신했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늘 초심을 되새겨야!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에서의 취임사를 되새깁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소박한, 그러나 눈물을 자아낸 감동적 선언이었습니다. 그에 앞서 그는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을 방문했습니다. 그 초심과 그 감동을 문재인 대통령이 5년 내내 재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취임사 전문을 다시 읽고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제로서 첫 마음을 간직하고 첫 미사 때 감동을 늘 되돌아보며 기도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여론은 초반 87%에서 성주의 사드를 배치 한 이후 9월8일 현재 69%로 떨어졌습니다. 69% 지지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이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보다 훨씬 잘해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런데 사드배치를 지켜보는 지금은 불안할 뿐 아니라, “이것은 아닌데!” 라는 근원적 회의와 함께 깊은 좌절에 빠져있습니다. 이에 더 기도하고 혹시 누가 문 대통령에 대해 지적을 해도 열심히 변명하고 또 함께 걱정하면서 고민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시베리아 철도 순례 중에 7월말 북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뒤에 문재인 대통령이 당황했었는지 또는 북에 대해 실망했었는지 어쨌든 그는 임시라는 단어를 붙이며 사드를 전면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선언했고 9월 6일에는 기습적으로 사드 6대를 모두 다 배치했습니다. 큰일입니다. 사드배치 과정에서 국방부와 청와대의 관계자들이 대통령을 속이면서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사안을 끝까지 조사하고 나서 응분의 조치를 취한 뒤에 결정했어야 할 일을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느닷없이 북에 제안한 대화를 취소한 꼴이 되었으니 더욱 걱정이고 중국과의 관계도 더 꼬이고 있으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특히 블라디보스톡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 나눈 대화는 더욱 씁쓸합니다. 동족인 북을 끝까지 껴안아야 하는데 북에 대해 원유공급을 하지 말라는 요청을 했으니 형제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저는 이에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미국 등 큰 나라들만 핵을 보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왜 북은 자신의 방위를 위해 핵을 가질 수는 없는가? 또 유엔에서도 모든 나라들이 평등해야 되는데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5개국이 상임이사국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은 민주주의, 평등의 원리에 어긋납니다. 이렇게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며 자주와 평등을 지향하는 아름다운 민주공동체를 이룩했으면 하는 꿈을 꿉니다.

이에 고승우 민언련 이사장은 사드배치논란의 핵심이 바로 1953년 10월에 남북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던 바로 그 시절, 당시 미국 중심으로 체결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있음을 지적하며 그 4조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드에 대한 고승우 민언련 이사장의 핵심적 주장

지구촌이 주시하는 사드 배치가 추진된 근거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입니다. 이 조항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 방위에 필요할 경우 자국 무기나 병력을 한국에 배치할 ‘권리’를 수용하고 한국은 양허하게 되어 있습니다. 군사적으로 수십 년 묵은 대미 종속은 1953년 10월 체결된 이 조약의 4조에 따른 것입니다.

이 조약에 따르면 한국은 군사적으로 미국과 동등한 주권국가가 아닙니다. 미국은 슈퍼 갑이고 한국은 반대가 거의 불가능한 을에 불과합니다. 심각한 군사적 종속관계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 4 조는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국의 육군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합니다.(영문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로 되어 있습니다.

제 4조의 영문 표기를 보면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미군의 한반도 방위에 필요한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하면서 미국은 이 권리를 수용(accept)하고 한국은 수락(grant)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accept와 grant 단어는 대가없이 받거나 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외교적 단어에 의해 한국의 군사주권에 대해 미국이 사전에 협의하나거나 동의를 구하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복잡할수록 원칙이 최선입니다. 이제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공론화 시켜 사드는 물론 한미군사 불평등관계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방을 포함한 전반적인 자주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 우방이니, 혈맹이니 하는 시대착오적 기계적 표현을 넘어서야 합니다.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선언을 우리는 모두 가슴 깊이 되새기고 남북 8천만이 온 세계를 향해 크게 외쳐야합니다.

2017년 9월 8일

성모님 성탄 축일에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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