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간첩조작 사건 등을 규명해야 하는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국정원 개혁위)가 조사권한을 부여받지 못해 국정원 내부의 감찰조사 결과에 의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의 국정원 개혁위원들은, 참여정부의 국정원 개혁 당시와 달리 지금은 조사권한이 없어 개혁위가 직접 조사가 불가능하다며 ‘시스템 문제로 (적폐청산이)쉽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6월19일 국정원 개혁위를 발족해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위원장) 등 8명의 민간위원과 5명의 전·현직 국정원 관계자 5명을 참여시켰다. 또한 개혁위 산하에 ‘적폐청산TF’와 ‘조직쇄신TF’ 등 두개의 테스크포스팀을 설치해 적폐 사건을 규명하고 조직혁신 방안을 만들도록 했다.

그러나 외부적인 기대와는 달리 국정원 적폐청산의 소임을 맡은 국정원 개혁위에는 국정원 내부 자료에 대한 접근 등 조사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국정원 내부 감찰기구 등을 통한 감찰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에 대한 심의·자문을 하는데 그 역할이 한정돼 있다.

개혁위의 A위원은 “국정원 직원들만이 감찰조사 형식으로 진행하고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받으니까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며 “결과를 보고 받은 후 그동안 시민사회나 언론에서 제기됐던 여러 의혹들을 더 보완하라거나 지적을 해주면 이를 반영해서 추가조사 하거나 이런 형식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4월1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국정원 수사 촉구 기자회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4월1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국정원 수사 촉구 기자회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B위원은 “참여정부 때와 달리 국정원 내부자료에 대한 접근은 우리도 안 되는 상황”이라며 “정치개입 국정농단 사건처럼 진상이 드러나 있는 사안은 오히려 쉬운데, 유우성 씨(간첩조작) 사건이나 세월호는 (규명이)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국정원 개혁위의 민간위원들에게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주어지는 한계는 뚜렷하다. 우선은 국정원 내부 자료에 대한 접근이 안되기 때문에 이미 밝혀진 ‘적폐’ 이외에 드러나지 않은 ‘적폐’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국정원 감찰실이 박근혜 정부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회의 녹취록 중 핵심 발언들을 삭제하는 등 재판 증거물을 위조해 제출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국정원 내부자들이 스스로 새로운 혐의를 드러내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A위원은 ‘새로운 적폐를 찾아낼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민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는 프로세스가 있다”며 “전혀 없다고 보긴 어렵다”고 답했다.

두번째 문제는 이미 드러난 적폐의 경우에도 국정원 내부에서 개혁위를 설득가능한 수준으로 무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A위원은 “한계가 있다. 시스템적으로 미진하다”며 “어떻게든 민간조사관들을 특별채용해서 공무원 신분을 부여해서 적폐 청산을 해야 좀 더 공정하고 설득력이 있을텐데, 그건(현재의 시스템이) 이미 우리(개혁위원들)가 들어가기 전에 세팅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감찰조사의 대상이 국정원 현직 직원들에 국한된 것도 시스템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벌어진 국정원 적폐 사건과 관련한 많은 당사자들이 퇴직한 상황에서 이들 퇴직자들은 국정원 감찰조사의 대상이 아니다. 퇴직자들에 대해선 명백한 혐의가 드러날 경우에만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할 수 있는데, 조사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혐의를 찾아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엔 개혁위원회에 자문과 심의 뿐 아니라 조사권한까지 두어서 국정원 개혁을 위한 광범위한 조사가 가능했었다.

위원들 가운데는 현재의 권한이 적당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C위원은 “기구 자체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기구”라며 “국정원 내부의 얘기들은 대부분 보안사항이니, 국정원 자체 TF가 하는게 좋고 개혁위는 발전방안 쪽에 중심을 두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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