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 이후 5년 만에 파업이 현실화됐다. ‘PD수첩’을 시작으로 MBC 보도국·시사제작국·콘텐츠제작국 기자·PD들과 영상기자회 소속 카메라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200여명이 넘는 인원이다. 5년 전 패배를 경험한 기자·PD들은 5년 전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 속에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이제 ‘파업이 언제 시작되느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파업이 어떻게 끝나느냐’가 중요하다.

MBC경영진은 급하게 경력기자 채용공고를 냈다가 채용절차를 취소했다. 언론계에서는 MBC경력채용에 지원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나왔다. 5년 전 파업 당시는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였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높아 김재철 체제도 ‘도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언론적폐청산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 첫 해이며 MBC경영진을 지지하는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지지율은 지리멸렬하다. 김장겸 체제의 퇴진은 시간문제다.

▲ MBC 보도국 소속 취재 기자 81명이 11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제작 중단 기자회견을 열고 김장겸 MBC 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및 문호철 보도국장 등 보도책임자들의 사퇴를 촉구한 모습. ⓒ이치열 기자
▲ MBC 보도국 소속 취재 기자 81명이 11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제작 중단 기자회견을 열고 김장겸 MBC 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및 문호철 보도국장 등 보도책임자들의 사퇴를 촉구한 모습. ⓒ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사장. ⓒ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사장. ⓒ이치열 기자
최근 ‘결사항전’을 선언한 오정환 보도본부장의 글은 역으로 김장겸 체제의 ‘불안’을 반증하고 있다. 가장 표면적인 불안요소는 안광한 전 MBC사장으로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안 전 사장은 한 때 박근혜정부 비선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정윤회와 만났고 이 자리에서 정윤회가 보도협조를 요청했다는 TV조선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했지만 정윤회가 스스로 안광한 사장을 만났다고 인정한 뒤 오히려 무고혐의로 수사대상이 됐다. 처지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현 검찰은 안광한 전 사장에게 수사력을 집중하며 2014년 당시 정윤회 문건으로 불거졌던 일명 비선실세 국정농단사건을 들춰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과정에서 정윤회의 아들 정우식씨가 MBC 드라마에 일곱 편이나 출연하며 특혜를 받았다는 내부의 의혹제기에 대해서도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안광한 전 사장은 최근 시사인이 단독 보도한 ‘장충기 문자’에서 삼성 측의 인사 청탁을 들어준 정황도 나오고 있어 이 부분도 수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최승호·박성제는 이유 없이 해고했다”는 대목이 등장하는 ‘백종문 녹취록’에 드러난 부당해고 논란에 대해서도 2012년 해고 당시 인사위원장이었던 안광한 전 사장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안 전 사장 수사과정에서 현 MBC경영진 또한 수사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당장 정윤회-안광한 만남 건과 관련해 MBC는 지난 1월 메인뉴스에서 TV조선과 미디어오늘 보도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김장겸 사장은 조만간 검찰에서 당시 보도의 근거를 소명해야 할지 모른다.

▲ 김민식 MBC PD. ⓒ이치열 기자
▲ 김민식 MBC PD. ⓒ이치열 기자
또 하나의 불안요소는 김민식PD가 만들어낼 ‘균열’에서 감지될 것이다. 경영진은 곧 김민식PD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해야 한다. 사내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를 켜고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강성’ 조합원에 대한 징계수위는 풍자 웹툰을 그린 PD를 해고했던 전례에 비춰보면 ‘해고’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예능과 드라마 분야를 오가며 후배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갖고 있는 김PD를 해고할 경우 베스트셀러가 된 김PD의 책에 추천사까지 썼던 ‘무한도전’ 김태호PD를 비롯한 예능·드라마PD들의 제작거부 동참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예능·드라마 부분으로의 제작거부 확대는 경영진도 반드시 피하고 싶은 국면이다. 여론이 MBC에 집중될수록 경영진의 퇴진압박은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PD를 해고하지 않는다면 ‘경영진이 노조에 밀려 수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인식이 등장하며 김장겸 체제 내부가 동요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최근 불거진 ‘MBC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한 내부폭로나 추가적인 부당노동행위 관련 폭로가 나올 수 있어 경영진으로선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당장 16일 MBC본부를 통해 공개된 고영주 이사장 등 방문진 이사들과 권재홍·김장겸 등 경영진의 사장 면접 속기록은 사내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어서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앞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후보자 청문회에서 “MBC의 블랙리스트 작성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며 엄중 조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MBC 특별근로감독 결과도 8월 중 나올 가능성이 높아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아온 MBC경영진으로서는 앞길이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YTN·EBS사장이 자진 사퇴하고 YTN노사가 해직기자 복직에 합의하며 현 경영진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올해 대법원에서 MBC해직언론인 복직 판결까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점도 MBC경영진에게는 ‘악재’다. 현 경영진이 물리적으로 최대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기가 끝나는 2018년 8월까지지만 김장겸 체제에 남아있는 기자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적극적 동조자’에서 ‘무비판적 방관자’로 경영진과 거리두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2일, 페이스북 영상 속 김민식PD의 외침은 외로워보였다. 하지만 75일이 지난 지금, 이제 김민식PD의 옆에 수많은 동료들이 함께하고 있다. 드라마PD 김민식이 써내려간 ‘공정방송 드라마’는 기적적으로 5년 만의 파업 국면을 이끌어내며 ‘김재철 체제의 끝’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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